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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성태윤의 이코노믹스

미국, 경기침체·금융위기 때마다 연체율 급증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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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가계부채 확대와 연체율 상승의 위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체감 고물가와 한·미 금리 역전에도 경기 부진 우려 때문에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올해 1월 3.5%로 인상한 이후 7월 금통위까지 4차례 연속 금리를 동결했다.

한은, 기준금리 4차례 연속 동결

경제지표를 살펴보면 한은이 금리를 동결한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7%지만, 통화정책에 주로 영향받는 근원 인플레이션율은 3.5%였다. 4월 4.0%보다는 낮아졌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특히 외식물가 상승률은 6.3%나 됐고, 그동안 인상요인 반영을 미뤘던 전기·가스·수도요금 상승률은 25.9%에 달한다.

한국 가계부채 세계 최고 수준
금리 동결에도 부채·연체 늘어
연체율 증가는 경제 위기 전조
부채 증가 침체 악순환 막아야

환율(원화가치)은 1달러당 1400원을 돌파하던 지난해의 사실상 외환위기 상황에 비하면 안정됐다. 물론 지난 10년간 달러당 원화가치가 강할 때 900원대, 통상적으로는 1000~1100원 수준이었음을 고려하면 최근 1200~1300원대도 원화가치가 크게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양국 간 금리 역전 상황을 고려하면 원화가치 불안은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런 측면들은 모두 금리 인상 요인이 된다.

그런데 최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 전망치를 기존 1.6%에서 1.4%로 하향 조정했다. 1%대 성장률은 경제위기 수준인데, 이마저도 낮춘 것이다. 하반기가 되면 경제가 좋아진다는 당국의 ‘상저하고(上低下高)’ 전망과 달리 경기 부진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준금리 인상은 고사하고 동결이 불가피한 처지다. 문제는 기준금리 동결과 경기 부진이 겹치면서 나타나는 가계부채 확대와 이에 따른 부채의 질적 저하다. 특히 연체율이 급증하면서 금융 위험이 커지고 있다.

한국 가계부채, 주요국보다 훨씬 높아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심각하다. 국제통화기금(IMF) 자료에 따르면 2022년 2분기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한국 104.8%로 미국 74.3%, 영국 86.6%, 캐나다 99.4%, 독일 55.3%, 프랑스 66.9%(21년) 등에 비해 훨씬 높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더구나 가계에서 세금 등 부담을 제외하고 실제 지출에 사용할 수 있는 소득을 의미하는 ‘순가처분소득’에 견줘보면 가계부채의 심각성이 더 분명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순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1년 기준 한국은 206%로, 미국 102%, 영국 148%, 캐나다 187%, 독일 102%, 프랑스 126%, 스페인 101% 등 주요 국가보다 훨씬 높다. 한국은 OECD 주요국 가운데 노르웨이, 스위스, 네덜란드, 덴마크, 호주에 이어 6번째다. 그런데 순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한국보다 높은 나라의 경우, 하나같이 복지 관련 지출이 많아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순가처분소득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다. 이를 고려하면 한국의 가계부채 상황을 세계적으로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평가해도 이상하지 않다.

더구나 기준금리를 동결한 와중에 대출 규제는 완화돼 가계부채 상승세가 가파르다. 4월부터 현재까지 3개월 연속 증가한 예금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6월 말 기준 1062조원으로 통계작성 이후 최대다. 월간 증가 폭 5조9000억원도 2021년 9월 이후 가장 크다. 금리동결이 계속되는 가운데 가계부채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은 부채축소의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이 필요한 시기에 오히려 부채가 증가하는 ‘레버리징(leveraging)’과 그에 따른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가계부채 규모 확대가 부담스러운 경우라 해도 질적으로 건전하게 관리하면 규모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문제는 부채의 질적 지표인 연체율이 급격히 높아지며 금융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가계부채의 양적 증가가 질적 악화를 초래하는 상황이다. 최근 새마을금고 사태도 이와 무관치 않다. 연체율 증가는 부실화 위험도가 높은 부채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로, 이후 경기침체나 금융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6월 말 새마을금고 평균 연체율은 6%대인데 그 자체가 이미 위기 수준이다. 10% 넘는 연체율을 보이는 금고도 존재한다. 제2금융권의 저축은행도 2021년까지 2.5% 수준이었던 연체율이 올해 1분기 5.1%에 이를 정도로 급증했다. 5대 시중은행 연체율은 4월 0.3% 정도로 수치 자체는 양호하나, 이 역시 작년 대비 2배 수준으로 급증한 것이어서 우려되는 상황이다.

금융위기 직전 미 은행 연체율 7%대

1985년 이후 미국은 주목할만한 경기침체 또는 금융위기를 4차례 겪었는데, 모두 연체율 급증 시기와 겹치거나 연관이 있다. 첫 번째가 1990~91년에 걸쳐 실업률이 치솟고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였던 침체기다. 두 번째는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로 불리던 정보통신 붐이 무너지며 경제가 어려웠던 시기로, 그 이전 4%대 GDP 성장률이 2001년 1%로 떨어졌다. 세 번째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로 평가받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인데, 2008년 0.1%, 2009년 -2.6%의 극심한 경기침체를 경험한다. 네 번째가 코로나19 사태로, 2020년 성장률이 -2.8%로 급락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그런데 비경제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한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면 경기침체와 금융위기 때마다 연체율이 급증했다. 1990년대 초반과 2000년대 초반의 경기침체는 직전 1년 기간 연체율 증가가 시작됐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직전 2년의 연체율이 이미 높아지기 시작했다. 즉 경제적 요인에 의해 발생했던 경기침체와 금융위기의 경우 그 전조현상으로 연체율 증가가 있었다는 뜻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상업은행의 연체율은 최고 7%대에 이를 정도로 악화했다. 최근 우리나라 새마을금고 연체율이 6%임을 고려하면 현 상황이 간단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2006년 1.5% 정도였던 미국 연체율이 3%로 급증한 후 위기가 본격화했다. 즉 연체율이 급증하거나, (연체율 절대 수치가 높지 않더라도) 감소하던 연체율이 반전해 증가하기 시작했다면 유의할 필요가 있다.

금리 인상 요인이 있음에도 경기 부진으로 기준금리를 계속 동결해야 한다면 가계부채 증가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또한 경기 부진 가운데 디레버리징이 아니라 부채 확대가 이루어지고 있다면 이는 건전성 악화 가능성을 의미한다. 결국 연체율 증가라는 질적 악화와 이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은 놀랍지 않다. 따라서 정부와 통화 당국이 적절한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

금융기관 부실 이슈 확산 차단해야

첫째, 한국은행은 시장 충격을 살피면서 기준금리 조정 요인을 선제적이면서도 점진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 금리를 올려야 할 상황인데도 이를 반영하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났다면, 지금 정말 금리를 낮춰야 하더라도 금리를 움직일 여력이 없게 된다. 기준금리 변경 요인이 부정적인 영향을 줄 압력으로까지 누적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통화정책의 원칙이다. 예를 들어 한·미 금리 역전이 있다고 바로 외환·금융 위기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금리 역전이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면 실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대응이 어렵다면 정부는 적절한 재정정책 구사로 경기 부진이 심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한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금리를 동결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마저 부진하면 부채, 특히 불건전한 채무가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재정정책을 통해 물가압력을 크게 높이지 않으면서 장기적으로 성장동력 마련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출사업을 선별적으로 발굴하고, 이를 통해 경기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셋째, 금융당국은 연체율 증가로 인한 개별 금융기관의 부실 이슈가 전체 금융시장으로 확산하지 않도록 차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적절한 감독과 위험관리에 기초한 금융기관 건전화 작업으로 신뢰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금융기관 이용자가 금융 안정성에 대해 우려하지 않도록 상황에 따라 선별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등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전통적으로 경기 진작을 위해 통화와 재정이란 양대 정책을 써왔다. 그런데 통화정책에 제약이 존재하는 환경에서 경기 개선을 위한 재정정책마저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경기 부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 경우 가계부채 확대와 연체율 증가는 불가피하고, 추가적인 경기 부진과 금융위험 확대의 악순환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부채 위험 관리에 경각심을 높여야 할 때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