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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선생님 반에 왕따 적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엄격한 선생님보다는 친구처럼 다정한 선생님이 운영하는 학급에서 이지메(집단 괴롭힘)가 일어나기 쉽다는 일본 연구조사 결과가 나왔다.

24일자 마이니치(每日)신문에 따르면 일본 야마나시현 쓰루(都留) 문과대 심리학과의 가와무라 시게오(河村茂雄) 교수팀이 교사와 학급의 상관 관계를 조사한 결과 교사의 학생 지도 방식과 학급의 특성이 이지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정다감한 '친구형' 교사의 경우 학급 아이들에게 휘둘려 이지메를 막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지메는 한국의 '왕따'와 같은 개념이다.

◆ '왕따' 대처에는 호랑이 선생님이 유리=가와무라 교수는 전국의 초.중생 5만 명을 대상으로 교사와 동급생의 관계를 묻는 심리검사를 했다. 조사팀은 교사의 유형을 아이들의 요구나 의견을 충분히 받아들이는 '친구형'과 아이들을 엄격하게 지도.감독하는 '관리형'의 두 가지로 나눠 각각 1998년과 2006년을 비교했다. 그 결과 조사 대상인 초등학교 4~6년(약 5000명) 중 "오랜 기간 이지메를 당해 힘들다"고 답한 학생의 절반이 '친구형' 담임을 두고 있었다. 반대로 담임이 '관리형'이었는데도 이지메를 당한 경우는 30%를 밑돌았다. 나머지 약 20%는 두 유형의 중간형 이었다.

보고서는 "'친구형' 학급에서는 처음에는 교사와 학생들의 관계가 원만하지만, 최소한의 규율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어 학생 간의 관계가 불안정해지고, 싸움이나 이지메가 발생하기 쉽다"고 분석했다. 이는 특히 교사들의 말투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하라"는 명령형에 비해 "~할까◆ ~해줘"와 같은 말투나 지시로는 상대적으로 학급의 규율이 서지 않고, 이는 이지메와 연결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가와무라 교수는 "아이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학생 개개인의 의견에는 귀를 기울이되 최소한의 규율을 정해놓고, 이를 어기는 학생에게는 예외없이 엄격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사 결과 지난 8년 사이 초등학교에서 '친구형' 교사는 2배로 늘어 전체 학급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관리형'교사는 절반으로 줄었다.

◆ 잇따른 이지메 자살로 일본열도 비상=이런 연구보고서가 나오게 된 데는 최근 이지메 피해 학생들의 자살이 열병처럼 번지는 일본의 사회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올 들어 5명의 초.중생이 이지메를 이유로 목숨을 끊었고, "이지메 때문에 자살하겠다"는 예고 편지가 문부과학성과 각 지역 교육위원회에 배달되고 있다. 지난달 초 문부과학성에 자살 예고 편지가 처음 배달된 이후 지금까지 문부과학성이 받은 편지는 총 36통이나 돼 최근 일본 국회에서 이 문제가 정치 쟁점이 되기도 했다.

박소영 기자

◆ 이지메=두 명 이상이 특정인을 집중적으로 괴롭히며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언어.물리적으로 폭력을 가하는 행위를 말한다. 일본에서 1980년대 기승을 부리다 최근 조금씩 줄고 있다. 문부성이 전국 공립학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5년 6만96건에서 2005년 2만143건으로 감소했다. 이지메를 이유로 자살한 사건은 95년 6건이었으며, 99~2005년에는 한 건도 없다가 올해 다섯 건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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