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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차 기사에 구조된 공무원, 손 엉망돼도 3명 구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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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화물차 기사 유병조씨. 궁평지하차도 침수 당시 시민들의 목숨을 구한 유병조씨. 물이 차오르던 자신의 화물차 창문을 깨고 탈출한 뒤 3명을 구조했다. [SBS]

화물차 기사 유병조씨. 궁평지하차도 침수 당시 시민들의 목숨을 구한 유병조씨. 물이 차오르던 자신의 화물차 창문을 깨고 탈출한 뒤 3명을 구조했다. [SBS]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침수 당시 목숨을 걸고 시민들을 구한 ‘의인’들이 주목받고 있다.

16일 물이 빠지고 견인된 유병조씨의 트럭. [뉴시스]

16일 물이 빠지고 견인된 유병조씨의 트럭. [뉴시스]

지난 15일 오전 화물차 운전기사 유병조(44)씨는 궁평지하차도에 물이 차오르던 순간 앞에 있던 버스의 시동이 꺼진 것을 보고 뒤에서 추돌하며 버스와 함께 지하차도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유씨는 한 방송에서 “같이 탈출해 보려 처음에 뒤에서 박았는데, 안 밀리더라. 그 상태에서 제 차는 시동이 꺼졌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물이 계속 차오르자 유씨는 창문을 부숴 화물차 지붕으로 올라갔다. 그 순간 버스에서 휩쓸려 나온 20대 여성이 화물차 사이드미러를 붙잡고 버티는 것을 발견했다. 유씨는 “옆에 젊은 여성이 매달려 있더라. 손을 잡고 일단 화물차 위로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구조를 청하는 비명에 주변을 살피자 차량 뒤쪽으로 둥둥 떠 있는 남성이 보였다. 우선 난간을 붙잡게 한 뒤 또 다른 남성도 구했다. 유씨는 “남자 두 분은 물에 떠서 살려 달라고 저에게 얘기했다. 얼굴만 물 밖으로 딱 나와 있더라”고 회상했다. 여성 생존자의 부친은 사고 이후 유씨를 만나 “(딸이) 저는 힘이 없으니까 손 놓으시라고 했는데 끝까지 잡아서 높은 곳까지 올려줬다고 하더라. 자신도 힘들었을 텐데 포기하지 않고 구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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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투성이 된 정영석씨의 손. 증평군 공무원인 정영석씨는 유병조씨에 의해 구조된 직후 지하차도에 갇힌 3명을 구했다. 천장의 전선과 구조물을 잡고 지하차도를 빠져나오면서 상처투성이가 된 정씨의 손. [YTN]

상처투성이 된 정영석씨의 손. 증평군 공무원인 정영석씨는 유병조씨에 의해 구조된 직후 지하차도에 갇힌 3명을 구했다. 천장의 전선과 구조물을 잡고 지하차도를 빠져나오면서 상처투성이가 된 정씨의 손. [YTN]

생사의 갈림길에서 유씨의 손을 붙잡고 목숨을 구한 한 공무원도 다른 3명의 시민의 생명을 살렸다. 그날 지하차도에서 구조된 한 생존자는 방송 인터뷰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는데 네이비 색깔 티셔츠를 입은 남자분이 난간에서 제 손을 잡아줬다”고 말했다.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남색 셔츠 의인’이 화제가 됐는데, 그 남성이 증평군 상하수도사업소에서 일하는 정영석 팀장이었다. 정 팀장은 “스티로폼이나 판자 같은 걸 잡고 둥둥 떠 있는데 화물차 기사분이 저를 먼저 꺼내주셨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대피한 순간 아주머니 한 분이 못 올라오고 살려 달라고 하셔서 일단 아주머니를 끌어올렸다. 철제 뚜껑까지 쭉 붙어 있는 구조물을 잡고 나갔고, 뒤에 계신 분들은 전선을 잡고 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생존자들과 함께 밖으로 빠져나온 정 팀장의 손은 상처투성이가 됐다. 정 팀장은 “(유병조씨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어 연락처를 달라고 했는데 끝까지 안 주셨다”고 말했다.

오송 지하차도 생존자들, 이렇게 버텼다. 순식간에 침수된 궁평지하차도에 갇힌 유병조씨는 자신의 화물차 창문을 깨고 탈출한 후 화물차 사이드미러를 붙잡고 버티던 여성 1명을 먼저 구조했다. 이후 부유물에 의지해 물에 떠 있던 정영석씨를 포함한 남성 2명을 추가로 구했다. 4명은 난간에 매달려 필사적으로 버틴 끝에 구조됐다.

오송 지하차도 생존자들, 이렇게 버텼다. 순식간에 침수된 궁평지하차도에 갇힌 유병조씨는 자신의 화물차 창문을 깨고 탈출한 후 화물차 사이드미러를 붙잡고 버티던 여성 1명을 먼저 구조했다. 이후 부유물에 의지해 물에 떠 있던 정영석씨를 포함한 남성 2명을 추가로 구했다. 4명은 난간에 매달려 필사적으로 버틴 끝에 구조됐다.

9명의 희생자가 나온 747번 버스를 몰았던 운전기사 이모(58)씨가 승객들을 구한 뒤 남은 사람들을 다시 구하려고 버스로 돌아갔다가 변을 당한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이씨의 구조 활동은 당시 버스에 탑승했던 20대 여성 사망자가 친구와 나눈 마지막 통화 내용에서 알려졌다. 여성의 외삼촌은 지난 16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통화한) 친구 말을 들어보니 버스 기사가 당시 물이 들어오니까 ‘손님 빨리 탈출하세요. 창문 깨트릴 테니까 탈출하세요’라고 했다는데, 그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버스에 물이 찬 순간 이씨가 승객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창문을 깼다는 증언이 속속 이어졌고, 그의 도움으로 승객 4~5명이 구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 소속 운수회사 홈페이지에는 “승객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애쓰신 기사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는 애도의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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