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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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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요즘 전 지구적으로 가장 유행하는 TV 장르는 리얼리티쇼다.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의 사전 각본 없는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다. 생존게임.오디션.짝짓기 프로가 대표적이다. 그외 외모 개선, 성격 개조 같은 사적인 문제에 카메라가 끼어들기도 한다. 몰래카메라는 가장 오래된 포맷이다. 리얼리티쇼는 그 효시인 1949년 미국의 '캔디드 카메라(Candid Camera)'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리얼리티쇼의 천국인 미국과 유럽은 물론이고 아시아.남미도 열풍이 거세다. 특히 미국에서는 1년에 30개 이상 리얼리티쇼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스티븐 스필버그, 오프라 윈프리에서 배우 애슈턴 커처, 수퍼모델 타이라 뱅크스 등 유명인들이 속속 제작자로 나설 정도다. 국내에도 케이블TV를 중심으로 리얼리티쇼 열풍이 불고 있다.

리얼리티쇼가 본격화된 것은 87년 미국 NBC '언솔브드 미스터리(Unsolved Mistery)'부터다. 시나리오 작가들이 파업에 들어가자 임시방편으로 각본 없이 만든 프로가 히트한 것이다. 이후 제작자들은 직업 배우와 각본이 필요 없어 제작비가 싸고, 프로그램 포맷을 수출할 수 있는 경제적 이점에 주목했다. 2000년대 와서는 글로벌 장르로 확실히 뿌리내렸다. 무인도 생존게임인 CBS '서바이버'는 전 지구적 TV 이벤트로 빅히트했고, 28대의 카메라가 24시간 참가자들을 관찰하는 '빅 브라더'는 15개국에 팔려나간 데 이어 온라인판까지 선보일 예정이다.

폭발적 인기 못잖게 비판도 거세다. 사생활.인권침해, 내용의 저급화, 관음주의.선정주의가 문제로 지목된다. 조작.연출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현실과 모방의 차이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냉소주의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있다. 이종수 한양대 교수는 "리얼리티 자체가 점점 카메라 의존적이 되고, 개인.사회적 삶이 점점 TV쇼처럼 포맷돼 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썼다.

리얼리티쇼 전반에 깔려 있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 구조도 문제다. 리얼리티쇼의 주류는 매회 탈락자를 정하며,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경쟁을 노골화하지 않더라도 깔려 있는 전제는 같다. 경쟁은 지고의 선이며, 그보다 더한 선은 승리라는 것이다. 언뜻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의 패러다임을 닮았다. 하필 리얼리티쇼가 글로벌 TV 장르로 우뚝 선 시점이 신자유주의 팽창기와 겹쳐지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