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회 대통령 선전포고권 논쟁 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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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의원 54명 헌법조항 내세워 제소/행정부선 “사법대상 안된다” 무시
미국 주도로 유엔안보리의 대 이라크 무력사용 결의안이 채택돼 전쟁 가능성이 어느때보다 현실감 있게 다가오자 미 내부도 동요하고 있다.
미 하원의원 54명은 대통령은 의회의 승인없이 개전명령을 내리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요지로 연방법원에 제소,그 첫 심리가 4일 개시됐다.
이와 때를 같이해 하원 민주당 의원총회는 개전에 앞서 대통령은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1백77대37로 채택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과 의회중 누가 전쟁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가져야 하느냐는 문제는 전통적 논란대상이다.
미 헌법이 대통령에게 군의 최고 통수권자로서의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동시에 『의회는 전쟁을 선포할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지방법원의 해럴드 그린 판사에 의해 심리가 개시된 민주당 의원들의 제소에 대해 부시 행정부는 아예 응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즉 헌법에 명기된 군 최고사령관으로서의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는 문제가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사법부가 판단할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백보 양보해 그것이 가능하다손 치더라도 대통령이 종합판단 결과 내린 명령을 국가안보에 대한 아무 정보도 가진 것이 없는 사법부가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 이같은 미 의회의 권한이 명목적으로나마 행사된 것은 단 한차례 뿐이었다.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직후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은 상·하원 합동회의에 나가 의회가 전쟁을 선포해 주도록 요청했었다.
이후 미국은 한국전·월남전 등 굵직한 전쟁이외에도 파나마·그라나다 침공,리비아공습 등 크고 작은 전쟁을 수많이 치렀으나 한번도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한 적이 없었다.
말하자면 정식절차를 거쳐 전쟁을 시작한 경우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의회 일부에서는 헌법조항을 들어 이의를 제기하고 불평도 했었으나 단 한차례도 군통수권자로서의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거나 전쟁을 중단시킨 경우가 없었다.
월남전이 최악의 상태에 달했던 73년 닉슨 대통령시절 미 의회가 단한차례 대통령의 전쟁권한을 제한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으나 닉슨 이후의 모든 대통령들은 그같은 결의안이 군통수권자로서의 대통령 고유권한을 침해한 위헌적인 내용이라며 수용하기를 거부했다.
닉슨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도 불구하고 의회가 다시 통과시킨 의회의 이 「전쟁권한 결의안」은 ▲대통령이 적대가능 지역에 군대를 파견할 경우 사전에 의회와 협의를 거쳐야 하며 ▲상황이 위급해 먼저 파병했을 경우도 48시간 이내에 그 이유등을 의회 지도자에게 보고해야 하고 ▲의회가 60일 이내에 전쟁선포를 안할 경우 파견병력을 철수하도록 되어 있다.
물론 이번 페르시아만 파병때도 부시 대통령은 이같은 의회의 결의안을 준수치 않았다.
미 행정부는 이 결의안 자체를 위헌조항이라며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미군의 페르시아만 파견 후 60일을 훨씬 지나 벌써 1백10일이 넘고 있어 이 조항에 따르자면 지금까지 의회의 전쟁선포가 없었기 때문에 병력을 철수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의회가 헌법의 전쟁선포 권한 조항에 매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조항은 어디까지나 의회의 상징적인 권한만을 규정한 만큼 대통령이 행동을 취하기 전 의회도 할 얘기는 해야하며 그같은 권한이 있다는 정도의 수준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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