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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문 열렸다" 벌써 학대사망 5명…출생미신고 조사 후폭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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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수사가 제일 괴로워요. 빛도 얼마 못 본 애들이 무슨 죄인지….”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달 30일, 생후 5일된 신생아의 시신을 찾아 거제 고현동 야산을 이틀간 샅샅이 수색한 현장 경찰은 이런 속내를 털어놨다. 시신 유기범으로 지목된 친부 A씨(26)와 친모 B씨(34)는 지난달 29일 긴급체포 당시 “지난해 9월 태어난 아이가 자고 일어나니 죽어있어 거제 야산에 묻었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그러나 사흘 뒤인 2일 “아이 목을 졸라 죽인 뒤 하천에 버렸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A씨와 B씨는 살인·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이날 구속됐다.

거제 영아 암매장 시신 수색 모습. 사진 경남경찰청

거제 영아 암매장 시신 수색 모습. 사진 경남경찰청

지난달 28일부터 시작된 정부의 출생미신고 아동 전수조사 이후, 전국 곳곳에서 감춰졌던 영아살해·학대치사 사건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지난달 21일 수원 장안구의 한 아파트 냉장고에서 약 4~5년 전 친모에게 살해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된 게 시발점이었다. 이후 거제·수원·과천에서 각각 2022년생, 2019년생, 2015년생 신생아를 살해하거나 방치·유기해 사망케 한 사건이 추가로 3건 확인됐다. 경찰은 3건 모두 출생미신고 아동의 친부모를 살인·아동학대치사 등의 혐의로 긴급체포했지만, 오래 전 발생한 사건인 만큼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정부 전수조사가 7일까지 예정된 만큼, 영아 학대사망 사건은 5건보다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감사원은 지난달 22일 2015~2022년생 출생미신고 아동이 2236명에 이른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고, 보건복지부는 이들 중 2123명을 다시 추려 전수조사를 진행 중이다. 2123명 가운데 79건은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자체가 1차 조사 후 연락이 안 닿거나 출국한 경우 등 소재 파악이 어려우면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한다”고 말했다. 수사 중인 출생미신고 아동을 지역별로 보면 경기남부(29건)가 가장 많고, 대전(14건)·인천(7건)·부산(7건)·충북(6건)·전남(4건) 등 순이다.

아동권 전문가들은 “지옥문이 열린 것 같아 두렵다”(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 “향후 더 많은 영아살해·방치 등 학대 범죄가 드러날 수 있다”(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고 말했다. 경찰들 사이에서도 충격이란 반응이 적지 않았다. 수사에 착수한 출생미신고 아동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경기남부 지역의 경찰 관계자는 “처음 2236명 발표됐을 때 설마설마했는데 계속 사건 배당이 늘고 있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경기남부청에서는 “8년 전, 4년 전 발생한 사건이라 증거 확보도 쉽지 않은데 부모도 자꾸 진술을 번복해 미치겠다”는 반응도 나왔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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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반응 역시 비슷했다. 14년간 베이비박스를 운영해온 이종락(69) 주사랑공동체 목사는 “얼마나 더 많은 영아 사체가 쏟아질지 마음이 괴롭다”며 “2015~2022년 8년치만 조사한 게 이 정도다. 그 전에는, 또 올해는 얼마나 소리 없이 떠난 아이들이 많겠나”며 눈물을 삼켰다. 직장인 김모(34·과천 별양동)씨는 “우리 동네(과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니 더더욱 충격”이라며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죽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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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위기임신·아동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익중 원장은 “다시는 이런 일 일어나지 않으려면 가장 중요한 건 위기임신 지원”이라며 “주민과 밀접한 동사무소부터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낙태죄 위헌 결정 이후 추가 입법이나 제도 등 적절한 대응이 없었던 것도 문제를 키웠다”(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양육이 어려울 때 아동학대·방임 위험이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사각지대 부모들에 대한 전문 상담·의료·경제 지원이 필요하다”(박명숙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등의 진단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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