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사망신고 동시에 한 다온이…학대율 79%, 숨져야 알았다 [그림자 아이들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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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아이들 : 존재할 권리] ②

 2013년 태어나 돌잡이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은다온(가명)군의 출생신고는 사망신고와 함께 이뤄졌다. 그나마도 다온이의 죽음이 친부와 계모의 학대의 결과라는 재판이 확정된 2017년에야 가능했다. 다온이 사망 이후 사후조사를 맡았던 탁지혜 초록우산 전남아동보호전문기관 사회복지사는 지난 1일 “부모는 학대 사실을 들킬까 봐 아이들(다온이의 이복형제들)을 어린이집에 일부러 안 보냈고 주소지도 1년에 20번씩 바뀌는 등 불안정한 생활을 했다. 친부의 폭력에 동조했던 계모도 가정폭력 피해자였다”며 “출생미신고 아동(‘그림자 아동’)들의 죽음의 배경은 학대의 굴레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 2021년 1월에도 인천지검과 미추홀구청이 친모에게 살해당한 8세 혼외 여아의 출생신고와 사망신고를 동시에 진행하는 일이 있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그림자 아동 사례 분석에 따르면, 재단이 확인한 현재 또는 장기간 미등록 상태였던 33명 중 79%가 아동학대를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3월 31일~4월 14일 보름간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 등 재단의 사업·협력기관 17곳을 조사한 결과다. 33명 중 26명은 방임·유기·신체학대·인신매매 등에 대한 신고 과정에서, 나머지 7명은 주거비·보육비·의료비 등 기본적인 생활지원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유형별로는 방임(14명)·유기(8명)를 겪은 아동이 많았다. 연령별로는 0~4세(19명)가 가장 많았고, 5~9세(6명)가 뒤를 이었다. 경찰은 지난 22일 8년간 그림자 아동이 최소 2236명에 이른다는 감사원 발표 이후 이들 중 11명의 학대 의심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진행중이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출생신고만 79일 걸린 ‘하루’…“법적 절차 개선을”

 학대의 위험에선 벗어났더라도 그림자 아동이 출생신고를 마치는 길은 산 넘어 산이다. 지난 3월 태어난 장하루(가명)군의 출생은 79일이 지난 뒤(지난달 30일)에야 신고될 수 있었다. 하루는 친모 장아영(가명)씨가 처자식을 버리고 떠난 전남편과 이혼 절차를 밟던 도중 태어났다. 생부는 장씨 폭행 등의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중이었다.

시설수급자인 장씨는 하루에게 주민등록번호를 주기 위해 석 달 넘게 유전자 검사와 ‘남편의 친자녀가 아님’을 증명하는 각종 법적 절차와 씨름해야 했다. 민법상 혼인 중이나 이혼 300일 내에 출생한 아이는 법률상 남편의 자녀로 추정하기 때문에, 혼외자의 출생신고는 이를 부인하는 재판(친생부인의 소, 친생자관계부존재의 소 등)에 시간과 비용을 쏟은 뒤에나 가능하다.

지난 22일 만난 장하루(가명·1)군의 친모 장아영(가명)씨는 79일 만에 하루의 출생신고를 마칠 수 있었다. 사진은 장씨가 “출생신고 완료만을 기다리며 한장 한장 넘겼다”던 달력. 사진 장아영씨

지난 22일 만난 장하루(가명·1)군의 친모 장아영(가명)씨는 79일 만에 하루의 출생신고를 마칠 수 있었다. 사진은 장씨가 “출생신고 완료만을 기다리며 한장 한장 넘겼다”던 달력. 사진 장아영씨

 지난 22일 만난 장씨는 “아이가 아픈데 병원에 이름도 주민번호도 댈 수 없어 불안했다”며 “형편이 어려워 기저귀·분유 살 돈도 넉넉치 않은데 유전자 검사는 15만원이 들지, 주민센터의 육아지원 사업은 출생신고가 되어있지 않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하지, 외롭고 고달픈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같은 조사에서 출생미신고 이유는 장씨처럼 ‘혼외자(23명)’인 경우가 많았다. 뒤로는 미혼모(6명), 미혼부(1명), 부모 수감(2명), 출생신고 미인지(1명) 순이었다.

박정연 초록우산 아동옹호본부장은 “그림자 아동의 부모가 혼외자나 미혼자녀를 드러낼 결심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복잡한 출생신고 절차와 비용에 겁을 먹고 중도포기하는 경우도 많다”며 “의료기관이 출생을 통보하게 하자는 출생통보제는 최소한의 사각지대를 막는 출발점일 뿐, 실질적 지원이 이뤄지려면 신고 절차 개선과 비용 지원 등 세밀한 복지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찰·지자체 직권 신고 활성화 필요”

 그림자 아동 관련 사건을 수사하던 검사나 그림자 아동을 발견한 지방자치단체가 나서면 출생미신고로 인한 피해자를 지금보다는 줄일 수 있다. 천하늘(가명·2)양은 검사가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갖게 해준 경우다. 홍민유 광주지검 인권보호부 검사(45·변호사시험 1회)는 지난 2월 2021년생 하늘이의 출생신고를 하고 이름을 지어줬다. 대구에서 하늘이를 낳은 친모는 출산비용이 없을 정도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가 출산 전 네이버 지식인을 통해 아이를 매매한 혐의로 지난해 4월 검찰에 송치됐다. 홍 검사는 하늘이를 보호하고 있던 광주 빛고을아동보호전문기관의 요청에 따라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가족관계등록법 46조는 아동의 복리가 위태로울 경우 검사·지자체장이 직권으로 출생신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해당 조항을 알고 활용하는 실무자는 많지 않다.

홍민유 검사가 직권 출생신고 전날인 지난 2월 27일 광주영아일시보호소에서 천하늘(가명·2)양을 만나고 있다. 사진 광주지검

홍민유 검사가 직권 출생신고 전날인 지난 2월 27일 광주영아일시보호소에서 천하늘(가명·2)양을 만나고 있다. 사진 광주지검

 홍 검사는 “검사 생활 10년 만에 처음 해보는 업무였다. 담당 주민센터 직원도 대리 출생신고는 처음 해본다며 당황했다”며 “최근 사례를 찾아봐도 공익소송전담팀을 운영하는 광주·부산·대구지검을 통틀어 2년간 1건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출생통보제 도입 전이라도 직권 신고가 활성화된다면 공백을 줄일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한다. 의료기관에 출생신고 의무를 부여하는 출생통보제가 도입되더라도 베이비박스 등 병원 밖 출생 아동들의 위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는 만큼, 직권 신고제도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홍 검사는 하늘이의 진짜 이름에 ‘아픈 과거는 다 잊고, 평생 행복하게 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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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붙은 출생통보제에 ‘익명출산제’도 패키지로 통과?

‘그림자 아동’의 실체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국회 논의가 출생통보제·익명출산제 동시 도입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출생통보제·익명출산제의 동시 도입을 추진하는 건, 출생통보제가 부를 부작용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출생통보제는 아이가 태어난 의료기관이 출생정보를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통보하게 하는 제도다. 그림자 아동에 대한 해결책으로 오랜 기간 주목 받았지만, “사각지대 산모들의 병원 밖 출산 가능성이 커진다”(의협 관계자)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친모를 호적에서 숨겨주는 이른바 익명출산제가 떠오르면서 동시 도입이 추진되는 것이다.

국회 논의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출생통보제는 법제사법위원회, 익명출산제는 보건복지위에 각각 계류 중이다. 우선 출생통보제와 관련해서는 “양당 원내대표가 해야된다고 했으니 27일 소위 논의에서도 큰 이견이 없을 것”(법사위 소속 여당의원)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같은날 복지위 법안소위가 예정돼있는 익명출산제는 상황이 다소 다르다. 복지위 관계자는 “과거 야당 일부 의원들이 반대한 적이 있기 때문에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 복지위 관계자도 “당내 의원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 출생통보제 내용에 따라 법안 내용을 논의해야 하는 만큼, 법안 처리가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익명출산제가 더 변수가 많은 건 출산통보제에 비해 논쟁 지점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명칭도 부모의 ‘숨겨질 권리’에 포커스를 맞춘 보호출산제·비밀출산제·신뢰출산제 등으로 다양하다. 국회에도 ‘보호출산’을 사용하는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안’(김미애 국민의힘 의원)과 ‘익명출산’을 사용하는 ‘위기임산부 및 아동 보호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조오섭 민주당 의원)이 각각 발의돼있다. 두 법안 모두 임산부가 익명 출산을 원할 경우 위기임산부 지원센터나 상담센터에 접수하면, 의료기관이 센터에 출생 사실을 통보하고 이후 센터가 지자체에 출생신고를 대신해주는 똑같은 방식이지만 명칭은 서로 다르다.

익명출산제가 임산부의 양육 포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희진 민변 아동청소년위원회 변호사는 “보호출산제는 아이를 키우기 힘들면 기록을 남기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라며 “태어난 아이의 미래를 전혀 생각해 보지 않는 아동 권리 침해적 사고”라고 지적했다. 반면에 신옥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본적으로 출산하는 여성을 지원하는 정책”이라며 “여성들에게 선택지를 다양하게 열어두는 것이 복지국가 차원에서는 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김현서 디자이너

김현서 디자이너

출생 아동이 자신의 부모에 대한 ‘알 권리’를 침해당한다는 점도 논쟁거리다. 이 때문에 독일과 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선 출생통보제를 기본으로 익명출산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운영 방식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프랑스는 비밀로 출산하는 산모의 정보에 대해 접근을 철저히 제한한다. 아이가 성년이 되거나 미성년자일 경우 후견인이 출생 근원에 대한 정보 열람을 신청할 수 있지만 생모가 원치 않으면 절대 공개할 수 없다. 반면 ‘신뢰출산제’라는 이름으로 익명 출산을 보장하고 있는 독일은 아이가 만 16세가 되면 혈통에 대한 문건을 열람할 수 있게 한다. 부모가 이를 반대할 경우 가정법원 재판에 따라 열람 여부가 결정된다.

출생통보제는 법무부가 2017년부터 법제화를 추진해온 만큼, 익명출산제에 비해선 논란이 덜한 편이다. 국회 법사위에도 정부안을 포함해 김미애(국민의힘)·신현영(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 10여건이 계류 중이다. “법안을 만들 때부터 복지부, 행안부, 법원행정처, 지방자치단체가 모여 합의해 만든 법안(법무부 관계자)”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의료계는 “국가의 책임을 민간에 떠넘긴다”며 반대하고 있다.

김현서 디자이너

김현서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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