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갇혀 산 13년 세월"…살아남은 아이도 그림자가 됐다 [그림자 아이들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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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아이들 : 존재할 권리] ①

 감사원은 병원 출생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는 되지 않은 ‘그림자 아동’이 지난 8년간 2236명이라고 밝혔다. 사진 셔터스톡

감사원은 병원 출생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는 되지 않은 ‘그림자 아동’이 지난 8년간 2236명이라고 밝혔다. 사진 셔터스톡

지난해 3월 경남 창원에서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생후 76일 여아 ‘별하(태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구급대원이 “뼈만 남아있었다”고 할 만큼 깡마른 상태였다. 친모는 출생신고를 안한 점에 부담을 느껴 아픈 아기를 병원에 한번도 데려가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친모 구모(25)씨는 올해 3월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별하처럼 병원 출산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출생미신고 아동’은 지난 8년간(2015~2022년) 최소 2236명에 이른다. 매년 280명이 존재할 권리조차 허락받지 못한 ‘그림자 아동’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들은 살아남은 상태에서도 방임 등 각종 학대에 노출됐다. 중앙일보가 접촉한 그림자 아이들은 “학교·병원을 가는 건 물론,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통장조차 개설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13년을 그림자처럼”…지옥 같던 19세 우주의 청소년기 

지난달 31일 경기 송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출생미신고 아동 출신 전우주(가명·19)씨. 김정민 기자

지난달 31일 경기 송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출생미신고 아동 출신 전우주(가명·19)씨. 김정민 기자

올해 성인이 된 전우주(가명·19)씨는 자신이 출생신고가 안된 그림자 아이란 걸 13살 때 처음 알았다. “‘학교는 왜 못 다닐까’ ‘유튜브 계정을 못 만드는 이유가 뭘까’ 같은 의문이 그때 풀렸다”고 그는 말했다.

이부(異父)형제인 11살 위의 형 등 4남매, 친모·외할머니와 함께 보낸 청소년기는 지옥 같은 기억으로 남았다. “엄마와 할머니가 매일 소리 지르며 싸웠다. 물건 부수는 소리에 조용할 날이 없었다. 6살 동생이 형한테 받은 용돈을 엄마가 뺏어간 적도 있다”고 그는 기억했다. 집 밖으로 탈출하기도 어려웠다. “엄마가 집 밖에 나가는 걸 싫어했다. 현관에는 신발과 우산도 없었다. 집안이 세상의 전부였는데, 어른들이 그 공간에서 싸우니 위기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고 전씨는 말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학교에 다녀본 적 없는 우주는 학교밖청소년센터를 통해 지난 2019년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사진 전우주군

태어나서 한 번도 학교에 다녀본 적 없는 우주는 학교밖청소년센터를 통해 지난 2019년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사진 전우주군

전씨는 학교를 가본 적도 없다. “기본적인 한글이나 수학은 누나가 알려준 덕에 문맹이 되진 않았다”는 전씨는 2017년 초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형이 자신의 친부에게 “동생들을 호적에 올려주지 않으면 연을 끊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끝에 그해 출생신고도 마쳤다. 가족관계등록법상 출생신고가 가능한 사람은 부모, 동거 친족, 의사·조산사, 검사·지자체장 등 타인 뿐이다. 본인은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그는 13세 때 그림자 아동에서 벗어난 뒤, 학교밖청소년센터와 연계해 카페·돈가스집에서 돈벌이를 할 수 있게 됐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전씨의 모친은 이듬해(2018년) 아동방임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전씨는 “당시 판사에게 엄마가 형을 최대한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며 “엄마가 더 이상 사고 치지 말고, 각자 알아서 잘 살면 좋겠다”고 말했다.

2년째 출생신고 못한 샛별이, 시설 찾는데만 6개월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강샛별(가명·2)군은 2021년 11월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직후 뇌출혈·발작으로 두달 간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주민센터에선 ‘검색되지 않는 아이’다. 2년째 출생신고를 못하고 있어서다. 샛별이의 친모는 “성폭행으로 임신한 아이라 호적에 올리고 싶지도, 키우고 싶지도 않다. 기억에서 지우고 싶다”고 말한 뒤 자취를 감췄다. 결국 아동방임 신고를 받은 경찰과 지자체가 샛별이를 아동보호기관에 인계했다.

샛별이가 현재 머무는 경북 구미의 장기보호시설까지 가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맡길 곳을 찾는 데 6개월이 넘게 걸렸다. 부모급여·양육수당·아동수당 지급을 위해 정부가 아이의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2022년 출생 이후 취약계층 아동에게 지급되는 첫만남이용권(200만원)도 출생신고 없이는 받을 수 없다. 샛별이를 돌봤던 사회복지사는 “나라에서 지원을 받기가 힘들다보니 받아주겠단 시설이 없었다. 출생지 근처는 물론 경기도 전체에도 없어서 경상도까지 내려가야 했다”고 말했다.

샛별이의 출생신고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친모의 법적 남편이 샛별이의 친부가 아니다’라는 재판의 결과가 나와야 아동보호기관이 “지자체나 검사가 대신 출생신고를 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데, 친모가 행방불명 상태라서다. 주민번호가 없는 샛별이는 국가아동학대정보시스템 사례로도 등록되지 못했다.

국가기관 251곳 모두 ‘나 몰라라’…행정공백 비극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그림자 아이들은 문제가 생기기 전까진 발견되지 않는다. 전씨와 샛별이도 부모가 아동방임으로 신고가 된 뒤에야 출생미등록 사실이 알려졌다. 지난 21일 수원의 한 아파트 냉장고에서 발견된 영아 시신도 최근 감사원의 정기감사에 이어 경찰 수사가 진행되기 전까지 4년 7개월 간 방치돼있었다.

출생 관련 업무를 하는 부처·기관은 광역자치단체 17곳과 기초자치단체 226곳을 포함해 251곳에 이르지만, 그림자 아이들은 사실상 행정공백 속에서 방치된 것과 다름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의 최근 5년간 ‘18세 미만 아동종합실태조사’, ‘영유아 종합검진’에서 발굴된 출생미신고 아동은 0명이었다.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의 ‘위기아동 조기발견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 출생신고 완료자만을 대상으로 조사하기 때문이다. 법원도 출산 한 달이 지나도록 신고를 하지 않은 부모에게 과태료(5만원)를 부과하지만, 이 역시 출생신고를 하러 온 부모만을 대상으로 한다.

최근 그림자 아이 2236명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나긴 했지만, 추가 사각지대가 존재할 거란 우려도 나온다. 최윤철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감사원 감사도 결국 병원 출생기록이 근거다. 집이나 화장실에서 몰래 낳은 아이, 애초에 국내 출생신고가 불가능한 외국 국적 아동을 포함하면 그림자 아이들의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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