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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셀카 찍고 떠났다...푸틴 굴욕 준 '도살자'의 반란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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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씻을 수 없는 굴욕을 안긴 '푸틴의 해결사'.

24일(현지시간) 하루 동안 무장 반란을 주도한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62)은 푸틴 대통령이 키운 인물이다. 교도소 출소 후 핫도그 판매상, 레스토랑 사장을 거친 프리고진은 푸틴의 권력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해 5만 명의 용병을 이끌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기에 이르렀다.

바그너그룹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오른쪽)이 24일(현지시간)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의 한 거리에서 러시아 남부군 사령부 지역을 떠나기 전 군용 차량 안에 앉아 한 남성과 셀카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바그너그룹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오른쪽)이 24일(현지시간)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의 한 거리에서 러시아 남부군 사령부 지역을 떠나기 전 군용 차량 안에 앉아 한 남성과 셀카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수족처럼 부리던 측근의 배신에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큰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디언 등에 따르면 프리고진은 점령 중이던 러시아 남부 도시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철수하며 시민들로부터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프리고진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담은 영상에서 시민들은 그에게 악수를 청하거나 함께 셀카를 찍기도 했다. 프리고진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잔혹성으로 악명을 떨쳤지만, 러시아 내 급진 세력 사이에선 인기를 얻고 있다.

크렘린궁은 프리고진의 벨라루스행을 보장하겠다고 밝혔으나 프리고진의 현재 소재에 대해선 "모르겠다"는 모호한 입장을 전했다. 러시아 당국은 프리고진과 반란에 가담한 바그너 용병들을 처벌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CNN 모스크바 지국장을 지낸 질 도허티는 "푸틴은 반역자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며 추가 보복이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프리고진이 내세운 이번 반란의 목적은 자신과 갈등을 빚어 온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등의 축출이었다. 크렘린궁은 프리고진의 철수를 대가로 어떤 거래를 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지난달 25일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우크라이나군으로부터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 바흐무트에서 철수하는 부대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지난달 25일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우크라이나군으로부터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 바흐무트에서 철수하는 부대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다만 더타임스는 "쇼이구 장관이 해임됐다는 설이 돌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언론은 소식통을 인용해 푸틴이 철수 조건으로 프리고진에 거액을 제공했을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프리고진이 이번 반란을 일으킨 배경엔 개인사도 작용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푸틴의 다른 측근인 체첸공화국의 수장 람잔 카디로프는 "프리고진의 딸이 원하는 토지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당국이 제공하지 않자 프리고진이 격분해 이번 일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프리고진이 이끄는 바그너 용병은 전 세계가 경악한 우크라이나 부차 민간인 학살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이외에도 프리고진은 시리아·리비아 내전 개입, 크림반도 강제 병합, 미국 대선 개입 등 러시아가 국제적 문제를 일으킨 사건마다 '악당'으로 등장했다.

때문에 그는 "푸틴의 일은 더러운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프리고진에 동병상련 느낀 푸틴 

프리고진과 푸틴의 인연은 1996년 시작됐다. 당시 프리고진은 '콩코드 케이터링'이란 회사를 세우고 모스크바 등지에 고급 레스토랑을 열었다. 98년부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선상 레스토랑 '뉴 아일랜드'도 운영하기 시작했다.

과거 러시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프리고진은 "96년부터 푸틴(당시 대통령 총무실 부실장)을 포함한 러시아의 고위 관리들이 내 식당을 자주 방문했다"고 말했다.

2011년 11월 11일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의 레스토랑에서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운데)와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음식을 서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11년 11월 11일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의 레스토랑에서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운데)와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음식을 서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때까지만 해도 푸틴은 프리고진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대통령이 된 후인 2001년 당시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와 '뉴 아일랜드'를 찾았을 때 그를 눈여겨보게 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푸틴은 가난을 딛고 부자가 된 프리고진의 성공 스토리에 매료됐다"고 전했다. 푸틴은 프리고진을 "소년"이라고 부르며 애정을 드러냈다고 한다. 쥐가 들끓는 아파트에 살며 배고픈 유년 시절을 보낸 푸틴이 일종의 동병상련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듬해 프리고진은 푸틴의 생일과 크렘린궁 연회 음식의 케이터링도 맡아 그에겐 '푸틴의 요리사'란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정작 프리고진 자신은 "요리를 할 줄 모른다"며 자신을 '푸틴의 도살자'로 불러야 한다고 했다.

프리고진은 1961년 푸틴의 고향이기도 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WP에 따르면 그는 유년 시절 크로스컨트리 스키 챔피언을 꿈꿨다. 하지만 81년 사기·절도·매춘 등의 혐의로 감옥에서 9년간 복역하며 인생이 달라졌다.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010년 9월 20일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에게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의 학교 급식 공장을 보여주고 있다. AFP=연합뉴스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010년 9월 20일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에게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의 학교 급식 공장을 보여주고 있다. AFP=연합뉴스

출소 후 무일푼이었던 그는 노점에서 핫도그 장사를 해 많은 돈을 모았다. 이후 그의 사업은 레스토랑을 열 정도로 번창했고, 푸틴과 인연을 맺은 후 날개를 달았다.

2010년부턴 러시아의 학교와 군대 급식 공급 계약을 따냈다. 그해 프리고진은 급식 공급 식품공장을 열었는데, 푸틴이 직접 개장식에 방문했을 정도로 애정이 각별했다. 러시아 비영리 단체 반부패 재단은 그의 회사가 정부 기관에 음식을 납품하며 손에 넣은 계약금만 최소 31억 달러(약 4조 672억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018년 기준 그의 재산은 공개된 것만 2억 달러(약 2624억원)로 실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의 딸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족이 소유한 전용 제트기와 호화 요트 등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20년 전 그림 동화책을 쓴 작가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1917년 러시아혁명 재발할수도"

프리고진이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은 건 2014년 바그너그룹이 생겨나면서다. 바그너그룹은 크림반도 강제 병합 당시 러시아군을, 돈바스에선 친러 세력을 도왔다. 이후 시리아·리비아 내전을 비롯해 수단·말리·콩고민주공화국·모잠비크·마다가스카르 등에서 내전·분쟁에 개입해 러시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득을 챙겼다고 외신은 전했다. 이 과정에서 바그너그룹은 학살, 고문 등의 잔혹 행위를 저질러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프리고진은 댓글 부대를 운영해 2016년 미 대선에 개입한 혐의도 받고 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한 혐의로 지난해 3월 예브게니 프리고진에 대한 수배령을 내렸다. 로이터=연합뉴스 .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한 혐의로 지난해 3월 예브게니 프리고진에 대한 수배령을 내렸다. 로이터=연합뉴스 .

프리고진은 러시아 죄수까지 용병으로 모집해 우크라이나 전장에 투입하고 일부 전과를 올리며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올 초부턴 이례적으로 러시아군 수뇌부의 관료주의와 무능함을 공개 비판해왔다. "우크라이나 비무장화는 실패했다" "이대로면 1917년 러시아 혁명과 같은 체제 전복이 일어날 수 있다"와 같은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프리고진이 푸틴의 권력에 도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와 러시아 정부가 그를 견제하기 시작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러시아군이 바그너그룹을 직접 통제하려고 하자 프리고진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의 철수를 시사하며 갈등은 극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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