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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용병에 무기 줬더니 러로 총구 돌렸다…꼬여버린 北의 침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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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24일(현지시간) 무장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텔레그램 영상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모습. 콩코드그룹 제공 영상 캡처. AFP=연합뉴스

지난 24일(현지시간) 무장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텔레그램 영상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모습. 콩코드그룹 제공 영상 캡처. AFP=연합뉴스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프리고진이 일으킨 반란이 하루 만에 일단락됐지만 그간 바그너 그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한 몸으로 보고 무기 등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던 북한이 적잖이 당황했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러시아를 지지하며 '반미(反美) 연대'에 가세했는데 바그너 그룹이 예측하지 못했던 변수가 됐다.

바그너에 무기 주며 밀착 

한때 푸틴의 '살인 병기'로 불렸던 바그너 그룹과 북한의 대표적인 연결 고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된 '무기 거래' 정황이다. 앞서 지난 1월 백악관은 북한이 바그너 그룹에 지난해 11월 보병용 로켓과 미사일을 전달하는 정황이 담긴 위성 사진 두 장을 공개했다. 북한은 "미국의 자작 낭설"이라며 부인했지만 별다른 반박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이후에도 북·러 접경 지역에서 열차 통행 움직임이 재차 포착됐다. 이에 러시아 정부와 유착 관계였던 바그너 그룹을 통한 북·러 간 무기 거래가 물밑에서 꾸준히 이뤄졌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지난 1월 백악관이 공개한 러시아와 북한의 철도를 찍은 위성사진. 왼쪽 사진의 5량 짜리 러시아 열차가 지난해 11월 18일 러시아를 출발했으며, 다음날 오른쪽 사진과 같이 북한에 도착해 컨테이너(무기 추정)를 싣고 다시 러시아로 향하는 모습이 담겼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월 백악관이 공개한 러시아와 북한의 철도를 찍은 위성사진. 왼쪽 사진의 5량 짜리 러시아 열차가 지난해 11월 18일 러시아를 출발했으며, 다음날 오른쪽 사진과 같이 북한에 도착해 컨테이너(무기 추정)를 싣고 다시 러시아로 향하는 모습이 담겼다. 로이터. 연합뉴스.

최근에는 바그너 그룹의 수장이자 이번 반란의 주역인 프리고진이 돌연 "러시아가 북한처럼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그는 친러 성향 블로거와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몇 년간 북한처럼 살아야 한다. 국경을 닫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며 "계엄령과 동원령을 발표하고 일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투입해 탄약 생산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교 소식통은 "프리고진이 강경파로서 러시아의 병영 국가화를 주장하기 위해 북한의 사례를 끌어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와 한 참호에 서 있을 것"

이처럼 북한은 그간 바그너 그룹과 특수 관계를 유지하며 러시아를 지지해왔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1월 담화에서 "우리는 로씨야 군대와 인민과 언제나 한 전호(참호)에 서 있을 것"이라고 천명한 게 대표적이다.

이후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미·러 간 대립 사안에 대해 부지런히 러시아를 편들며 반미 연대에서 존재감 확보를 시도했다. 지난 9일 조선중앙통신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 벌어진 카호우카 댐 파괴에 대해 "러시아에 인도주의 재난의 책임을 씌우기 위해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공모 결탁한 또 하나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고, 25일에도 서방의 대러 금융 제재를 비판하며 "'제재 압박'이란 미국제 도끼가 미국의 발등을 찍고 있다"고 했다.

 2019년 4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를 찾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하며 리셉션에서 건배하는 모습. Valery Sharifulin/TASS. 연합뉴스.

2019년 4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를 찾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하며 리셉션에서 건배하는 모습. Valery Sharifulin/TASS. 연합뉴스.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바그너 그룹의 반란으로 북한이 당혹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원하던 시나리오는 미ㆍ중 경쟁이 격화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 반미 연대가 공고해지는 것이었는데, 현재는 이와 딴판으로 미ㆍ중 갈등이 대외적으론 조정 국면으로 들어가고 러시아는 전장에서 밀릴 뿐 아니라 내부 반란까지 일어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19일 조선중앙TV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전원회의 확대회의가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당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열렸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TV. 연합뉴스.

19일 조선중앙TV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전원회의 확대회의가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당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열렸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TV. 연합뉴스.

친러시아 기조 지속 전망

북한이 최근 국제 정세 판단에 말을 아끼는 모습도 이와 무관치 않다. 북한은 지난 16~18일 진행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 국제 정세와 관련해 "복잡하고 심각하게 변화하고 있다"고만 평가했다. 그간 자주 쓰던 '신냉전', '다극화' 등 표현은 사용되지 않아 눈길을 끌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연설 보도도 사상 처음으로 없었다.

북한이 당장은 정세를 면밀히 관찰하되 '친(親) 러시아 기조'는 계속 이어갈 전망이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애초에 러시아와 전략적 유대 관계 강화가 목적이었으니, 현재의 북ㆍ러 유착 구도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9일 노동신문은 학생들에게 '조국해방전쟁'(한국전쟁) 위훈담을 들려주는 전쟁노병(참전군인)에 관해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지난 19일 노동신문은 학생들에게 '조국해방전쟁'(한국전쟁) 위훈담을 들려주는 전쟁노병(참전군인)에 관해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한편 북한은 25일 프리고진의 반란 관련 별다른 보도나 입장 없이 자신들이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르며 기념하는 6·25전쟁 73주년을 맞아 대미 적개심 고취를 시도했다.

이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미제는 이제 명실상부한 '전략국가'를 상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만일 지난 조선전쟁(6·25전쟁)서 교훈을 찾지 못하고 끝끝내 '제2의 조선전쟁'을 도발한다면 미국 자체의 종말로 이어질 것"이라고 위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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