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동사상 연구-진정염·임기전 지음 이성규 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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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이성규교수(서울대 동양사학과)가 이번에 진정염 (천정옌)·임기전 (린치탄)의 "중국고대 대동사상 연구"(1985년·상해)를 번역 출간한 "중국 대동사상 연구"는 일단 종래의 「유물론-유심론」의 획일적 대결도식을 지양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들에게 우선 매우 신선한 감을 주고 있다.
"대도가 일단 실행될 때에는 천하는 공유가 된다. 현덕과 재능 있는 사람을 뽑아서 일을 맡기니 대화가 진실하여 속임이 없고 행동은 친애하여 화목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의 부모만을 친애하거나 자기의 자식만을 사랑하지 않는다. 또한 노인들은 편안히 인생을 마칠 수 있고, 젊은이들은 자기 능력을 발휘할 곳이 있으며, 어린이들은 모두 양육되고, 처자 없는 노인·남편 없는 노파·부모 없는 아이·자녀 없는 노인 및 병들고 불구가 된 사람은 모두 봉양을 받는다…. 밖에 문은 있으나 잠그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다함께 하는 「대동」의 사회이다."
유가의 공양학파들에 의해 편찬되었음직한 유명한 "예기" 「예운」편의 내용이다.
이러한 「대동」, 즉 「모든 것을 함께 하는」사회의 이상은 중국에서는 이미 토지의 사유 제가 기본이 되어 자경농가들의 생산기반 위에 거대한 관료국가가 등장하는, 특히 기원전 3세기 송한 제국시대의 성립 이래로 농민들의 경지부족과 그로 인한 경제적 파탄이 가장 큰 사회문제로 부상하면서 유가적 지식인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런 내용들이 과학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과거의 경직된 중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공상적·허구적」환상 이상의 대접을 받지 못했다면 이제 이 책의 출현은 중국의 전 역사시기를 통해 중국의 「대동」사상의 이념을 통사적으로 파악해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보고 싶다.
그러나 이 책은 저자들이 가진 자유스런 관점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이후 중국의 근·현대사 시기 이전까지 4천여 년의 중국 역사를 다만 「고대 사회」로 단일하게 파악함으로써 과거 중국역사 발전에 따른 시대 발전적·역동적 면모가 단지 「왕조 변천사」형식으로만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대동사상」각각의 시대사적인 실질적 의미와 다양성이 충분히 제시돼 있지 못한 한계점을 안고 있다.
특히 중국의 전통사회 내에서 기존 사회체제의 붕괴와 새로운 사회로의 변혁으로 꼽을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변환시기, 즉 춘추전국시대에서의 법가의 「사회 발전론적」입장에서 제기되었던 법가적 유토피아와, 그리고 명 말의 봉건사회의 해체와 자본주의 양식의 맹아형성기에 나타난 왕부지의 사회 발전론 적 역사이상과도 구별되는 그 당대의 「대동사상」의 의의나 문제점 등이 함께 비교·고찰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번역자의 능숙하고 화려한 문체와 총체적인 해설, 그리고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흥미로운 내용들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이상세계에 대한 안목을 열어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지식 산업사 판·4백3쪽·8천원 <송영배 서울대 교수·중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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