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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소연의 시인이 사랑한 단어

최승자 ‘일찍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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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소연 시인

김소연 시인

나는 누구일까. 이 세계에서 나는 어떤 생을 살아야 할까. 이런 질문이 문득 엄습할 때가 있다. 이 엄습에 대처하는 저마다 비결 하나쯤은 있으리라 생각되는데, 나는 최승자의 ‘일찍이 나는’에서 비결을 빌리곤 한다. 최승자의 첫 시집 『이 시대의 사랑』(1981)을 펼치면 첫 번째로 등장하는 시이다.

이 시는 최승자의 출사표인 셈인데,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로 시작하여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로 끝을 맺는다. 이 시의 첫 행을 해석하는 시선은 너무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자기부정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태도로 해석되는 것이 다반사지만, 읽기에 따라 이 문장은 그저 ‘리셋’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내가 나를 바라보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 광활한 우주를 내려다보는 시선이라면 이 말은 과학적 사실을 전달하고 있는 문장이 되기도 한다. ‘일찍이’라는 말로 이 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옛날부터’라는 뜻으로 쓰이진 않았다. 그랬다면 시인은 ‘옛날부터’라 표현했을 것이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이 ‘일찍이’라는 시어는 전생의 전생까지를 굽어보는 시선일 수도 있다. ‘나’를 ‘천 년 전에 죽은 시체’라고 표현에서 ‘죽은 시체’보다 ‘천 년 전에’에 조금 더 더 눈길을 준다면 더더욱 그렇다. 윤회적 상상력이 아니어도, 그만큼의 시간의 두께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색의 일환인 것만은 분명하다. 3연은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라는 표현으로 시작된다. 이 표현이 존재하기에 광활한 우주의 스케일로 이 시를 읽는 일에 합당함이 생긴다.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문장은 시대에 따라, 읽는 이의 심정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뜻으로 되살아나는 문장이다. 멀지 않은 날, 우리 인류가 진작에 합의하고 받아들였으면 가장 좋았을 문장으로 부활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