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순신 유적 엉뚱 '삽질'"…남북기금 퍼준 박원순 서울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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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 유적을 엉뚱한 곳에서 발굴하는 데 10억원 가까운 서울시 남북교류협력기금이 쓰였다. 이 기금은 사용 목적과 동떨어진 ‘노벨평화상 수상자 세계정상회의’로 흘러가거나 탁구 대회 업무 협약 체결 하루 전날 만든 업체가 받기도 했다. 서울시가 지난 2월부터 최근까지 남북교류협력사업 추진실태를 특정감사한 결과다.

이번 감사는 2018년 1월부터 올해 초까지 약 5년간 남북기금으로 추진된 사업의 적정성과 기금 집행 과정 등을 확인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기금 운용 부적정 등 15건을 적발했으며 대부분 박원순 시장 때 추진한 사업에 집중됐다.

서울시가 2019년 12월 8일 민간단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순신 장군 유적 발굴 조사에 나선다고 발표하면서 공개한 추정지역 위치도. 사진 서울시

서울시가 2019년 12월 8일 민간단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순신 장군 유적 발굴 조사에 나선다고 발표하면서 공개한 추정지역 위치도. 사진 서울시

이순신 유적 발굴 사업 ‘허탕’

8일 국민의힘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 서범수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와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A사단법인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때인 2019년 7월 서울시에 남북교류협력사업 일환으로 ‘나선-녹둔도 이순신 장군 유적 남·북·러 공동 발굴조사 사업’을 제안했다. 나선은 북한 함경북도, 녹둔도는 러시아 연해주 접경지역을 말한다. 이순신 장군이 과거 활약한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사업 제안 때 명시한 조사 지역이 아닌 ‘골라산’이란 곳에서 3년간 발굴했다. 당초 제안한 곳에서 12㎞가량 떨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유적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기금 9억9700만원을 낭비한 꼴이 됐다.

이 사업은 심의 단계부터 문제가 있었다. 기금을 받기 위해선 우선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거꾸로 A법인과 서울시 사이에 예산 지원 협약부터 체결했다. 선(先) 협약, 후(後) 심의가 이뤄지다 보니 조사비용 산정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마저도 서면 심의 등 형식을 갖추는 데에만 급급했다는 게 감사위 판단이다. 매년 엉뚱한 곳을 파는데도 시는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았다. 감사위는 “사업내용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고, 당초 계획과는 다르게 조사가 진행됐다”고 판단했다.

서울시가 2019년 12월 8일 민간단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순신 장군 유적 발굴 조사에 나선다고 발표하면서 공개한 러시아 측 조사단의 사전조사 모습. 사진 서울시

서울시가 2019년 12월 8일 민간단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순신 장군 유적 발굴 조사에 나선다고 발표하면서 공개한 러시아 측 조사단의 사전조사 모습. 사진 서울시

전임 시장 지시에 거꾸로 심의

2019년 12월 서울시가 대대적으로 홍보에 나선 ‘2020 세계 노벨평화상 수상자 정상회의’ 사업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사업도 남북협력위 심의 전에 유치가 결정됐다. 박 전 시장 지시로 절차가 급박하게 이뤄졌다고 한다. 심의 과정에선 기금 목적에 부합되는 사업인지 의문이 제기됐다. 투자심사위원회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투자위 회의록을 보면 한 위원이 “일은 다 끝내 놓고 거꾸로 맞춰나가는 식으로 접근하다 보니 이게 사실 투자 심사를 하는 게 의미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해당 사업엔 남북기금 7억원 정도가 배정됐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실제 행사가 열리지는 않았다. 기금은 ‘불용’ 처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9월 '2020 노벨평화상 수상자 월드서밋' 행사가 취소됐음을 알리는 서울시 문서. 사진 서울정보소통광장 홈페이지 캡처

2020년 9월 '2020 노벨평화상 수상자 월드서밋' 행사가 취소됐음을 알리는 서울시 문서. 사진 서울정보소통광장 홈페이지 캡처

공정성 의심…관리·감독도 부실

서울시 남북기금은 2004년부터 조성했다. 규모는 지난해 기준 650억여원이다. 대부분 서울시 예산이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330억여원이 쓰였는데, 지난 5년간 230억원이 집중적으로 집행됐다. 다시 230억원 중 160억원이 보조금 예산으로 민간단체에 흘러갔다.

특히 2018~2022년까지 5년간 공모를 거치지 않은 일반사업 방식으로 58개 사업, 40개 단체에 102억원이 집행됐다. 이 돈 가운데 절반 정도는 특정 5개 단체에 몰렸다. 이 때문에 감사위가 기금 운용 공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남북교류위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47차례 회의를 열었는데 29차례가 서면으로 지원 여부가 결정됐다. 단순히 O, X만을 묻는 심의도 있었다.

관리·감독 역시 제대로 안 됐다. 2019년 동북아 국제친선 탁구대회 땐 민간사업자와 시가 업무협약을 맺기 바로 하루 전 설립한 대행업체가 행사 준비 등을 맡는다며 1억4600만원을 받았다. 이 업체는 탁구대회가 끝난 이후 폐업했다. 감사위는 “(폐업으로) 실제 견적서대로 썼는지 확인이 불가하다”라고 밝혔다.

서울시청 청사. 연합뉴스

서울시청 청사. 연합뉴스

제도 개선 등 권고…“적극 개선해야”

감사위는 공정성과 투명성을 갖춘 남북기금 편성·운용 방안을 마련하고, 협력위 심의가 내실 있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라고 서울시에 권고하기로 했다. 인건비 등 점검과 허위실적 등을 통해 지급된 것으로 파악된 돈은 환수한다. 이상욱 서울시의회 의원(국민의힘)은 “이번 감사 결과는 그간 남북기금이 제대로 쓰이지 않았고, 이를 심의하는 협력위도 제 역할을 못 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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