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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등 붉은 양귀비꽃 추모, 시민 자발적 참여 속 보훈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업그레이드 한국 보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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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2호 06면

SPECIAL REPORT 

디지털 포피배지.

디지털 포피배지.

영국과 미국·캐나다·프랑스 등 서방의 주요 국가들은 매년 현충일을 맞아 붉은 양귀비꽃(poppy)으로 참전 용사들을 추모한다. 영국과 캐나다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1월 11일을 현충일(Remembrance Day)로 지정해 각종 기념행사를 펼치고 있다. 매년 11월이 되면 길거리와 상점, 학교 등 거의 모든 공공장소에서 다양한 양귀비 장식을 접할 수 있다. 시민들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양귀비 브로치(사진)를 가슴에 달고 국가를 위해 희생한 자들의 넋을 기린다. 캐나다에서 매년 배포되는 양귀비꽃 장식만 2000만 개에 달할 정도다.

미국은 매년 5월 마지막 월요일을 현충일(Memorial Day)로 정해 전사자를 추모하고 있다. 이때가 되면 전국 곳곳에서 붉은 양귀비꽃을 활용한 추모 행사가 열린다. 워싱턴DC 내셔널몰에 설치되는 ‘포피 월(Poppy Wall)’이 대표적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등에서 전사한 미군 64만5000명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기 위해 2018년부터 벽 전체를 64만5000개의 인공 양귀비꽃으로 장식하고 있다. 뉴질랜드와 호주도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일 하루 전날인 4월 24일을 ‘포피 데이’로 지정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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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양귀비꽃은 언제부터 호국과 보훈의 상징이 됐을까. 그 시작은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의관으로 참전한 캐나다인 존 매크레가 당시 8만7000명이 전사한 벨기에 플랑드르 격전지를 둘러보던 중 들판에 피어 있는 양귀비꽃을 보며 추모시를 썼고, 이 시를 읽고 감동한 영국 시인 모이나 벨 마이클이 양귀비꽃을 상징으로 하는 추모 캠페인에 나선 게 시초였다. 이후 참전국 재향군인회 등이 적극 동참하면서 1922년부터 양귀비꽃이 공식적인 추모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됐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포피 캠페인이 지속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 덕분이었다. 시민들 스스로 매년 보훈의 날을 맞아 양귀비꽃으로 전사자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헌신을 기리는 게 하나의 문화로 정착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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