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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제대를 미뤘다… 포탄에 1m 깎인 734고지 유해 발굴 위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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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2호 06면

SPECIAL REPORT - 철원군 김화지구 유해 발굴 현장 가보니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육군 제15사단 장병들이 지난달 31일 강원도 철원 734고지에서 발굴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최기웅 기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육군 제15사단 장병들이 지난달 31일 강원도 철원 734고지에서 발굴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최기웅 기자

“아, 나왔습니다.”

M1 소총 실탄이 1.2m 땅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M1은 한국전쟁 당시 국군의 주력 개인 화기였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단장 이근원 이사관) 소속 임하늘 병장이 실탄을 조심스럽게 손 위에 올리자 배성재 상병이 수첩에 유품 목록을 추가했다. 그러고는 호미로 흙벽을 1㎝씩 긁어 나갔다. 지난달 31일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민간인 통제선(민통선) 내 734고지에서였다. 734고지는 한국전쟁 때 김화지구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19세 정채환 이병부터 47세 유덕수 주임원사까지 육군 제15사단 50여단 2대대 장병 120여 명도 삽과 호미·전지가위 등을 손에 들고 고지를 훑고 있었다. 국유단과 2대대는 지난달 24일부터 734고지에서 한국전쟁 유해 발굴을 진행 중이다. 강예린 중사는 이를 ‘작전’이라고 표현했다.

지난달 31일 오후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민통선 내 734고지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소속 임하늘 병장(오른쪽)과 배성재 상병이 '발굴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이들은 호미로 흙벽을 1cm씩 긁으면서 세심하게 발굴을 이어 나갔따. 최기웅 기자

지난달 31일 오후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민통선 내 734고지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소속 임하늘 병장(오른쪽)과 배성재 상병이 '발굴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이들은 호미로 흙벽을 1cm씩 긁으면서 세심하게 발굴을 이어 나갔따. 최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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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이한 올해,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못한 참전 장병들이 있다. 무려 12만1879명에 달한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 전사자는 총 16만2394명이었다. 이 중 국립현충원 등에 안장된 전사자는 2만9203명이고 미수습 전사자 및 실종자는 13만3193명에 이른다. 현재까지 발굴된 유해는 총 1만1347구로 전사자 대부분이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들이 남긴 치아 하나, 발가락뼈 하나라도 찾아내 가족의 품에 안겨 주려는 유해 발굴 작전은 2000년 시작됐다. 3년 한시적이었지만 시간제한을 없애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하루 앞두고 한낮 기온이 30도 가까이 올랐던 이날 734고지에는 또 다른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밖에서

“빠르게, 하지만 정확하게 선배님들을 찾아야 합니다. M1 소총 탄피 하나, 박격포탄 파편 하나 찾을 때마다 선배님들에게 다가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지난달 31일 오후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734고지에서 벌어진 유해 발굴 작전 중 육군 제15사단 50여단 2대대 강예린 중사가 박겨포탄 파편과 M1 소총 탄두를 수습하고 있따. 최기웅 기자

지난달 31일 오후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734고지에서 벌어진 유해 발굴 작전 중 육군 제15사단 50여단 2대대 강예린 중사가 박겨포탄 파편과 M1 소총 탄두를 수습하고 있따. 최기웅 기자

2000년 유해 발굴 사업이 시작될 즈음에 태어난 강예린 중사는 박격포탄 파편 하나를 찾아내며 이렇게 말했다. 채 쏘지도 못한 M1 실탄과 탄창에 완전한 형태로 끼어 있는 ‘완탄’ 등 이곳에서는 하루 500~800발의 ‘탄’들이 발굴된다. 지난 일주일간 진행된 유해 발굴 작전 중 M1 소총탄만 5000여 발이 발굴됐다. 한국전쟁 때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진 곳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강 중사는 “한국전쟁 당시에는 735고지(해발 735m)였는데 격전이 벌어지면서 1m가 깎여 734고지가 됐다”고 설명했다.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민통선 내 734고지에서 발굴한 정강이뼈 유해. 지난해 1차 발굴 작전 때는 25구를 찾았고, 지난달 24일 시작한 2차 발굴 작전 중에는 3구가 발견됐다.최기웅 기자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민통선 내 734고지에서 발굴한 정강이뼈 유해. 지난해 1차 발굴 작전 때는 25구를 찾았고, 지난달 24일 시작한 2차 발굴 작전 중에는 3구가 발견됐다.최기웅 기자

이름도 없이 높이가 이름이 된 산, 이름도 남기지 못한 70여 년 전의 장병들은 왜 이곳에서 산화했을까. 50여단 2대대장인 윤호영 중령은 “이곳 김화지구는 철원·평강과 함께 철의 삼각지대로 불리는 중부전선의 요충지”라며 “734고지 전투가 벌어진 때는 1951년 8월이었는데 당시 진행되던 휴전 협상 중 한 치라도 더 수복하기 위한 전투가 치열했다”고 전했다.

윤 중령 뒤로 북쪽이 보였다. 남쪽 GP(Guard Post·소초)와 북쪽 소초 사이가 600m에 불과한 곳이다. 『6·25전쟁 60대 전투』라는 책에는 당시 상황이 이렇게 적혀 있다. “중공군 제20군 대신 제27군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됐다. 중공군은 국군 제2사단 17연대 진지 약 2㎞앞 734고지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했다. 8월 2일 06시 아군 포병과 유엔 공격 편대의 지원 등으로 공격했다. 다음날 14시50분경 734고지를 점령했다.”

하지만 중공군의 반격은 9월까지 이어졌고, 당시 32연대 7중대 중대장 김영국 중위와 대부분의 중대원이 전사하면서 끝까지 734고지를 지켰다. 이곳에서 진행된 지난해 1차 발굴 때는 유해 25구와 유품 2만5000여 점을 찾았고 올해도 유해 3구가 발견됐다.

정강이뼈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된 지점 근처에서 양민재(21) 병장이 조심스레 발굴을 이어가고 있었다. 고지 하단에서 상단으로 토양층 색깔이 바뀌는 지점까지 80~120㎝씩 파며 1㎝씩, 1㎝씩 발굴하는 식이다. 남궁탄 국유단 발굴팀장(상사)은 “땅속 색깔이 바뀌는 지점 밑으로는 이미 한국전쟁 이전에 변화된 토양이라 발굴 의미가 없다”며 “철모·군화 정도로는 어렵고 명찰이나 이름이 적힌 수첩이 유골과 함께 나오면 한층 수월해지지만 결국엔 유전자 감정이 이뤄져야 신원이 확실히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양 병장의 큰할아버지 양성규씨도 ‘돌아오지 못한 장병’이다. 1950년 당시 열 살이었던 양 병장의 할아버지가 덜컥 입대 신청을 하자 아홉 살 위인 형 성규씨가 대신 참전했다. 그는 2년 뒤인 1952년 10월 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사했다. 보지도 못한 손자 나이와 같은 21세였다. 양 병장은 “큰할아버지와 함께한 전우들도 꼭 찾아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오후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민통선 내 734고지에서 유해 발굴 중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육군 제 15사단 50여단 2대대 장병들. 앞줄 왼쪽이 유해 발굴을 위해 전역을 미룬 양원식 병장, 오른쪽이 한국전쟁 백마고지 전투에서 큰할아버지를 잃은 양민재 병장이다. 최기웅 기자

지난달 31일 오후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민통선 내 734고지에서 유해 발굴 중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육군 제 15사단 50여단 2대대 장병들. 앞줄 왼쪽이 유해 발굴을 위해 전역을 미룬 양원식 병장, 오른쪽이 한국전쟁 백마고지 전투에서 큰할아버지를 잃은 양민재 병장이다. 최기웅 기자

또 다른 양 병장인 양원식(21) 부대원은 유해 발굴을 위해 전역까지 미뤘다. 그는 “6월 26일 전역 예정인데 30일까지 이어지는 발굴 작전에 끝까지 남고 싶었다. 전역 전에 한 분이라도 더 찾아드리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강현준(22) 상병도, 박동원(25) 일병도, 김진우(22) 이병도 “작전이 빡세지만 땀을 흘릴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며 함께 웃었다. 최근 육군과학화전투훈련(KCTC)을 마치고 짧은 위로 휴가를 다녀온 뒤 곧바로 유해 발굴에 투입된 이들. 우리나라 MZ세대 특유의 긍정적 가치가 이곳에서도 빛나는 것일까. 양원식 병장 뒤로 그가 발굴했다는 유골이 보였다.

#안에서

“글쎄요. 양원식 병장이 찾은 유골은 육안으로 유전자 분석 성공 여부를 추정하기는 힘듭니다.”

박정현 국유단 유전자 분석 과장은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양 병장이 발굴한 유골은 팔뼈 중 팔뚝 밑의 ‘지뼈’로 추정된다. 길이 10㎝, 두께 1㎝ 정도다. 유골이 일부분씩 떨어져 나가고 갈라져 있다. 국유단은 이곳 주변에서 추가 유골 발굴을 진행 중이다.

이렇게 수습된 유골은 오동나무관에 모셔진 뒤 태극기로 감싸는 ‘관포’ 의식을 거쳐 국유단으로 옮겨진다. 발굴된 유해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만1313구(유엔군 유해 포함 1만1347구)에 달한다. 그중 국유단에서 감식과 유전자 분석을 거쳐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지난달까지 210구다. 1.8% 정도다. 국방부 조사본부 유전자과를 국유단 소속으로 바꾼 뒤 속도가 붙었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61구의 신원을 확인해 유가족 품으로 모셨다. 최신 유전자 분석 기법인 SNP(단일염기다형성) 검사가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박 과장은 “SNP 기법 확립을 통해 신원 확인율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발굴된 유해ㄹ는 오동나무 관에 담은 뒤 태극기로 감싸는 관포 의식을 거쳐 국립서울현충원 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으로 운구된다. 최기웅 기자

발굴된 유해ㄹ는 오동나무 관에 담은 뒤 태극기로 감싸는 관포 의식을 거쳐 국립서울현충원 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으로 운구된다. 최기웅 기자

734고지의 유해가 중공군일 수도 있는 만큼 중국에도 인도적 차원에서 유해를 송환하고 있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913구가 중국으로 돌아갔다.

문제는 시간이다. 시간과 유전자 감정 기술 발전이 같은 속도로 나아갈지는 미지수다. 시간이 흐를수록 발굴한 유해의 시료 채취가 점점 힘들어질 수 있다. 게다가 유족들도 고령화하고 있다. 강예린 중사가 “시간이 없다”고 말한 이유다.

지금도 국유단 유해 보관실에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1만800여 구가 모셔져 있다. 신원 확인을 위한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는 전사자의 8촌까지 가능하다. 지난 2월까지 유가족의 유전자는 8만7367개가 확보된 상태. 이렇게 19세 고창기 하사가 돌아왔다.

#만나서

한국전쟁 때 수습되지 못한 전사자의 유해의 신원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유전자 검사실에서 확인한다..유전자 감정은 통상 한 달이 걸린다고 한다. 최기웅 기자

한국전쟁 때 수습되지 못한 전사자의 유해의 신원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유전자 검사실에서 확인한다..유전자 감정은 통상 한 달이 걸린다고 한다. 최기웅 기자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연구원들이 6.25 전사자 신원 확인을 위한 유전자 감정을 하고 있다. 최기웅 기자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연구원들이 6.25 전사자 신원 확인을 위한 유전자 감정을 하고 있다. 최기웅 기자

“형님을 만나서 슬픈지, 기쁜지 참 묘하네요. 눈물이요? 70여 년이 흘러서 그런지 눈물도 말랐지요. 그래도 가슴엔 기쁨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고창기 하사의 동생 영찬(82)씨의 목소리엔 회한이 묻어나왔다. 고 하사는 1950년 12월 제1훈련소에 입대한 뒤 이듬해 4월 20∼25일 강원도 화천 사창리 전투에 참전했다 19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서울 종로에 살던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맏아들을 어머니는 잊지 못했다. ‘행방불명’에서 ‘전사’로 통지서 내용이 바뀌었어도 어머니는 믿지 못했다. 영찬씨는 “어머니는 1976년 돌아가실 때까지도 형님이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고 하사의 유골은 2009년 처음 발굴됐다. 이후 2017년과 2019년 추가로 수습됐다. 고영찬씨는 이미 2011년 유전자 시료를 제공했지만 유해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 별 소득이 없었다. 하지만 유전자 감정 기술의 발달로 올해 드디어 형님을 품에 안게 됐다. 210번째 신원 확인이었다. 734고지 발굴이 한창이던 지난달 30일 고씨는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형님 귀환식에 참석했다. 그는 “고맙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734고지 유해 발굴 작전 중 오전에만 발견된 탄두와 탄창 등 전사자들의 유품. 쓰지도 못한 채 탄탕에 그대로 있는 M1 소총 실탄(완탄)도 보인다. 이런 실탄과 탄두, 탄피 등 '탄' 관련 유품은 하루 500~800발 나온다. . 최기웅 기자

지난달 31일 734고지 유해 발굴 작전 중 오전에만 발견된 탄두와 탄창 등 전사자들의 유품. 쓰지도 못한 채 탄탕에 그대로 있는 M1 소총 실탄(완탄)도 보인다. 이런 실탄과 탄두, 탄피 등 '탄' 관련 유품은 하루 500~800발 나온다. . 최기웅 기자

현재 강원도 철원을 비롯해 경기도 파주와 경남 밀양 등 전국 9곳에서 유해 발굴이 진행 중이다. 격전지였거나 시신을 수습하기 힘들었던 패전지역 위주다. 올해도 100여 구가 수습됐다. 강예린 중사와 정채환 이병처럼 유해 발굴에 나서는 장병은 10만여 명. 그들은 오늘도 1㎝, 1㎝씩 유해 발굴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강 중사의 말처럼,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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