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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32) 용맹함만 믿다 죽은 손책, 진중한 손권이 강동을 물려받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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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술로부터 독립한 손책은 강동(江東)에서 나날이 세력을 키워 드디어 강동의 패자(覇者)가 되었습니다. 조조는 손책이 강성해지자 ‘사자새끼와는 싸우기 어렵게 됐다.’며 탄식했습니다. 이에 조인의 딸을 손책의 막내 동생인 손광과 혼인시켜 인척이 되게 했습니다. 손책은 대사마(大司馬)가 되길 원했지만 조조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손책은 원한을 품고 허도를 기습할 때만 노리고 있었습니다. 오군태수(吳郡太守) 허공이 눈치를 채고 조조에게 밀서를 보냈습니다.

강동의 호랑이 손책. [출처=예슝(葉雄) 화백]

강동의 호랑이 손책. [출처=예슝(葉雄) 화백]

‘손책은 날래고 거세어 항우와 같습니다. 조정에서 적당히 높은 벼슬을 내리고 수도로 불러들이십시오. 외지에 두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입니다.’

편지를 전하려던 사자가 손책의 부하에게 잡혔습니다. 손책은 편지를 보고 대로해 사자와 오군태수를 죽였습니다. 허공의 식구들은 모두 뿔뿔이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허공의 문객(門客) 세 사람이 허공의 원수를 갚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손책이 군사를 거느리고 사냥을 나갔습니다. 손책은 사슴 한 마리를 잡기 위해 급하게 말을 달려 산으로 올라갔는데, 숲속에 세 사람이 창과 활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창과 활로 손책을 찌르고 쏘며 소리쳤습니다.

우리는 허공의 문객이다. 주인의 원수를 갚으려고 일부러 왔다!

세 문객은 장렬하게 죽었습니다. 손책은 부하들의 도움으로 겨우 빠져나왔습니다.

손책은 지혜와 용기가 강동에 뛰어났지만 孫郞智勇冠江湄
산속에서 사냥하다 궁지에 몰렸다네 射獵山中受困危
허공의 세 문객이 죽음으로 의리를 지키니 許客三人能死義
예양의 살신도 기이하다고 할 것이 아니네 殺身豫讓未爲奇

모종강도 세 문객의 의로움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예양은 다리 밑에 숨고 측간에서 기다리고 불덩이를 머금고 온 몸에 옻칠을 하면서도 조양자를 조금도 해치지 못하고 그의 옷을 살짝 베었을 따름인데, 이 세 사람은 손책의 몸을 직접 화살로 쏘고 창으로 찔렀다. 그들이 한 일은 예양이 한 일보다 훨씬 후련하고 더욱 장렬했다. 비록 그들의 성명은 전해지지 않았지만 본보기로 삼아 후세에 임금을 잊어버리는 신하들이 부끄러운 줄 알게 됐으면 좋겠다.’

손책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화타를 불렀지만, 그는 중원에 가고 없었기에 그의 제자가 대신 치료했습니다. 독화살의 독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반드시 백일 동안 안정을 취하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하지만 성질이 불같은 손책은 당장에 낫지 않는 것을 원망했습니다. 겨우 20일을 참고 지냈을 때, 허도에 있는 그의 부하 장굉이 보낸 사자가 왔습니다. 조조 측에서는 모두가 손책을 무서워하고 존경하는데 유독 곽가만이 무시한다는 전갈이었습니다. 손책이 그냥 넘길 수 있는 성격이 아니지요. 망설이고 있는 사자를 꾸짖어 사실대로 고하게 했습니다.

곽가는 조조에게 주공을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주공이 경솔하고 준비성 없으며 성급하고 꾀도 적다했고, 필부(匹夫)의 혈기일 뿐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주공이 훗날 반드시 소인(小人)의 손에 죽을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하찮은 놈이 어찌 감히 나를 머저리 취급한단 말이냐! 내 맹세코 허도를 쓸어버리겠다!

장소가 급히 말렸습니다. 백일도 지나지 않은 위중(危重)한 몸으로 출정은 어렵다고 말입니다. 이때 원소가 보낸 사신 진진이 도착했습니다. 원소와 동오가 손을 잡고 조조를 쳐부수자는 것이었습니다. 손책은 크게 기뻐하며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연회가 한창 무르익을 때, 도인(道人) 우길이 나타나자 모두 그에게 존경심을 표하며 절을 했습니다. 이를 본 손책은 ‘요망한 것’이라며 그를잡아들이게 했습니다. 모두가 나서서 모독하지 말 것을 청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요망한 짓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자는 살려두어선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우길이 말했습니다.

빈도(貧道)는 낭야궁(瑯琊宮)의 도사입니다. 약을 캐러 산에 들어갔다가 백여 권의 신서(神書)를 얻었는데 제목은 태평청령도(太平靑領道)로 거기에 적혀 있는 것은 모두가 사람의 병을 다스리는 방술이었습니다. 빈도는 이것을 얻은 이후 오직 하늘을 대신해 덕을 펴고 멀리 만민을 구하려 힘썼을 뿐 털끝만큼도 남의 물건을 받은 적이 없는데 어찌 사람들을 현혹하겠습니까?

우길이 아무리 설명하고 장소와 여러 관리가 말려도 손책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손책의 어머니인 오태부인까지 나서서 만류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손책은 오로지 ‘요망한 이를 죽이는 것은 개돼지를 죽이는 것과 같을 뿐’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때, 가뭄이 한창이니 비를 내리게 해 그의 능력을 본 후에 용서해주자고 여범이 제안 했습니다. 우길은 정해진 시각에 단비를 내리게 했습니다. 그래도 손책은 우길을 죽이고 싶었습니다.

날이 개고 비가 오는 것은 천지의 정해진 이치다. 요망한 것이 우연히 그런 기회를 이용한 것인데 너희들은 어찌 이렇게 갈피를 못 잡고 소동이냐?

손책은 결국 우길을 죽였습니다. 그 뒤로 손책은 우길의 환영(幻影)에 시달렸고, 결국 몸져눕고 말았습니다. 손책은 자신의 아우인 손권에게 전권(全權)을 넘겼습니다. 내치(內治)는 장소가, 외치(外治)는 주유가 도와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러 아우를 불러 유언했습니다. 그때 손책의 나이는 26살이었습니다.

손책에게서 인수를 물려받는 손권. [출처=예슝(葉雄) 화백]

손책에게서 인수를 물려받는 손권. [출처=예슝(葉雄) 화백]

내가 죽거든 너희들은 모두 손권을 도와야 할 것이다. 우리 집안에서 감히 딴마음을 품는 자가 생긴다면 여럿이 힘을 모아 죽이도록 하라. 같은 피붙이라 해도 반역을 한 자는 선영에 묻지 말라.

손견과 손책은 모두 단명했습니다. 모종강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에 손견은 30여 기만 이끌고 경솔하게 나갔다가 죽었고, 이번에 손책은 혼자 말을 타고 경솔하게 나갔다가 다쳤다. 경솔하고 예비를 하지 않았다가 나라를 키우지 못하고 도적놈들에게 죽은 것이다. 만승(萬乘)의 지중한 몸도 용맹한 사람들은 가벼이 여긴다. 손견과 손책이 제왕으로 거듭나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다.’

손권과 한 침상에서 대화하는 노숙. [출처=예슝(葉雄) 화백]

손권과 한 침상에서 대화하는 노숙. [출처=예슝(葉雄) 화백]

손책 사후 대임을 물려받은 손권은 주유의 제안에 따라 천하의 인재를 모았습니다. 노숙, 제갈근, 고옹 등을 초빙해 장차 도래할 삼국시대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손권은 제갈근의 계책을 듣고 손책이 정했던 ‘원소와 협동해 조조를 친다’는 전략을 거절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원소는 마침내 자신이 직접 70여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조조를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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