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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방사능 피폭 질병 입증 어렵다|원전 안전한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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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영광 원자력발전소 입구 성산리 파출소 앞.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숫자 표시의 디지틀 감시 기가 우뚝 서 있다. 발전소의 환경방사능을 감시하는 계기다.
지난 21일 낮12시 현재 이감시기에 나타난 수치는 자연방사선 수준인 0·012밀리 렘.
그러나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기형아 출산으로 문제가 됐던 영광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공포증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들이다.
무뇌아 출산사건 이후 주민들의 요구로 설치된 이 감시 기는 영광군청과 발전소가 들어서 있는 홍농 읍사무소 앞에도 세워져 있지만 원전에서 방사능이 유출된다는 의심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주민 불신 여전>
영광 핵발전소 추방연합회 장우선 의장(33)은『군청 앞의 감시 기는 지난8월 4일 동안이나 0을 나타낸 일도 있었다』면서『발전소 측에서는 고장이라고 말했지만 지금의 수치도 믿을 수 없다』는 불신감을 드러내 보였다.
원전에 의한 방사능 오염논쟁은 경북 고리와 전남 영광원전 주변에서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영광원전은 이곳에서 근무했던 인근주민 김익성씨(32)의 부인이 88년과 89년 두 차례에 걸쳐 무뇌아를 유산한 사실이 지난해 7월 밝혀지면서 작업인부의 과다피폭 시비를 불붙였다.
같은 해 8월에는 인근 주민 김동필씨(25)가 자신도 86년 영광원전 방사선 관리구역에서 작업할 때 방사능에 피폭돼 발목이 기형으로 뒤틀린 딸을 낳았다고 주장했다.
두 김씨는 서울대병원의 정밀검사 결과 무뇌아 및 기형아 출산이 방사능 피폭과 관련됐다는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판정을 받았다.
또 지난 86년부터 4년간 영광원전에서 오염된 방사선 방호 복 세탁을 해 온 김 철씨(56)가 하반신 감각마비·전신무력·피로감등의 증세를 보여 가족들이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전남대병원 진료결과 디스크와 비 만성 뇌 위축 증으로 판명됐다.

<병인 딴 데서 찾아>
고리원전의 경우 87, 88년 2년간 방사능 관리구역에서 일했던 김종관씨(32)가 지난해 8월 목과 가슴부위에 붉은 반점이 돋고 백혈구부족·무기력증세를 보여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질병이 아닌가 여겨졌다.
김씨는 그러나 서울대병원의 정밀조사결과 백혈구가 정상수치인 입방mm당 5천9백 개로 나타났고 피부의 발진은 만성 간염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외에도 상당수의 방사선피폭으로 인한 질병발생 주장사례가 있으나 의료기관들의 검사결과 이들 질병이 방사선 피폭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진 사례는 아직은 한 건도 없다.
또한 이들 작업자들이 법정규제 수치인 연간 5천 밀리 렘을 넘는 과다한 방사선에 피폭됐다는 한전 측의 기록은 전혀 없다.
한전 측은 이에 대해 방사선 피폭 량이 0에서 최대 1천80밀리 렘의 사이에 있을 뿐 이상을 일으킬 만한 과다피폭은 없었다는 자체 방사선 관리 기록을 제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과다피폭과 방사선 질병의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한전 측이 방사선 기록을 측정 관리하는데 따른 불신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원전은 모두 자체적으로 방사선 관리부에 보건 물리 실을 두고 개인작업자에게 열 형광 선량 계와 포킷 도시메타 등의 방사선 피폭 선량 계를 착용시켜 수거한 후 컴퓨터 등 선량 판독 기기를 사용, 1개월에 한번씩 점검하고 있다.
문제는 이 판독을 과다피폭으로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 하는 한전이 자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은 피폭자 14만>
우리나라의 방사선 관련 작업 종사자는 9기의 원전에 5천명에 달하지만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한지 13년 동안 단 한 건의 과다피폭자도 없었다는 것이 한전 측의 기록이다.
선진국인 일본만 해도 50만 명의 방사선관련 종사자중 14만2천명이 과다 피폭 기록을 갖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한 건도 없다는 것은 기록을 조작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간다는 지적이다.
박익수 원자력 발전 민간협의회 회장은『하자가 발생하면 책임을 져야 할 한전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방사선 피폭 판독결과를 그대로 남겨 두겠는가』라고 반문하고『이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두는 격이며 판독업무만은 신뢰성을 가진 제3의 공공기관이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문제된 환자의 질병이 방사선 피폭에 의한 것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진단을 의료기관이 내린 경우에도 이것만으로는 방사선이 무죄라는 근거로 볼 수 없다는 더 근본적인 불신도 있다.
서울대 의대 황상익 교수(생리학)는『방사선이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인과관계와 과정은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고 특정질병이 방사선에 의한 것인 지의 여부는 더욱 입증하기 어려워 현재까지의 조사결과만으로 안심할 수 없다』면서『예를 들어 방사선 피폭으로 무뇌아가 발생했다는 기록이 없지만 영광주변의 경우가 최초의 사례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원자핵 공학과의 강창순 교수는『원자력 작업종사자는 연간 5천 밀리 렘, 일반대중 2천 밀리 렘이라는 현행 피폭 허용치는 낡은 기준』이라며 지난 2월 국제방사선 방어위원회가 발표한 작업자 2천 밀리 렘, 일반인 1천 밀리 렘이라는 새 권고 안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전주변 환경의 방사능 오염은 기형가축과 물고기의 발생이 문제가 됐다.
기형가축의 경우 영광원전과 인접한 전북 고창군 상하면 자룡리·석남리 일대에 개·소등 기형가축이 잇따라 출생해 방사능 오염시비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기형 소의 경우 가축 위생 시험소 측은 바이러스 질환에 의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개의 기형에 대해서는 명확한 원인을 지적하지 못하고 있다.

<오염시비 가속화>
영광원전 건설반대 고창군 투쟁위원장 노연업씨(53)는『87년 원전 가동 후부터 원전인근 마을에서 그전에는 거의 없던 기형가축 출산이 급증, 기형 소·개·돼지 등 30여 마리가 태어났다』면서『원전의 방사능 누출이 아니라면 갑자기 기형가축이 잇따라 태어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원전주변 환경이 방사능에 오염됐다는 주장에 대해 과기처와 한전 측은『원전주변 반경 30km까지 10곳 이상의 방사선 감시 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발전소 운영으로 나오는 방사선은 측정결과 연간 1밀리 렘 이하』라고 반박한다.
이들은『자연적으로 일반인이 받는 방사선이 연간 1백∼2백40밀리 렘인 것을 감안하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반 핵 단체들은 이에 대해 일본과 같은 민간 방사능 감시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전 측의 일방적인 측정만 믿을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 핵 단체들은 또 2백50여만 개의 부품으로 이뤄지는 원전은 아무리 다중의 안전장치가 되어 있다 해도 고장과 사고가 일어나게 마련임을 미 스리마일 사고가 보여주고 있다며 원전자체의 안전성을 불신하고 있다.

<고장은 2백12건>
원전의 고장은 운전의 불시정지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원전의 불시정지는 78년 4월 고리1호기 상업운전 이래 지난 7월까지 모두 2백12건이다.
불시정지 원인을 보면 기기 고장이 l백39건으로 가장 많았고 운전 원과 보수 원 등의 인적실수에 의한 것이 29건, 태풍 등 외부요인에 의한 기타원인이 44건이었다.
원자로 1기 당 고장 건수는 고리원전 1기만 운행되던 82년까지는 연간 9·8건에 이르렀으나 차츰 줄어들어 88년과 올해엔 1·6건, 지난해엔 1·4건을 기록했다.
한국과학기술원 핵 공학과의 장순흥 교수는『국내원전의 설비가 설계와 시 공상 결함이 많아 불시정지를 자주 일으킬 뿐 아니라 실적위주의 무리한발전소 운전으로 기계의 노후화가 가속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원전에 대한 원자력 안전기술원의 정기 검사결과는 해마다 1백여 건의 지적사항을 나타내고 있어 안전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원자력 안전기술원이 지난해 8기의 원전을 대상으로 안전검사를 한 결과 울진1호기 27건,고리1호기 24건 등 모두 1백37건의 지적사항이 드러났다.
울진1호기의 경우 탄산가스 소화계통과 소 화용 물 공급계통을 점검하지 않는 등 안전점검에서 커다란 문제점을 드러냈다.
원전자체의 사고방지 대책과 관련해서 장순흥 교수는『우리나라의 원전은 발전소 형태 및 상황에 맞는 적절한 모의실험(시뮬레이터)이 갖추어지지 않았고 시뮬레이터 훈련의 내용에 노심이 녹는 등의 중대사고가 포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영광=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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