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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二竪>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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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춘추시대 진(晋)나라 경공(景公)의 이야기다. 그가 어느 날 중병이 들어 용하다는 진(秦)나라 의사를 불렀다. 의사가 진맥하기 위해 부리나케 이동하고 있을 무렵 경공은 꿈을 꿨다. 그 꿈에 두 아이가 등장해 나누는 대화 내용은 대강 이랬다.

"이번에 오는 의사가 매우 용하다는데 어떡하지?" "그러면 황()하고 고(膏) 사이에 숨어 있자고. 아무리 의사가 용하다고 해도 그곳에 숨으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겠지."

꿈에서 깨어난 경공은 막 도착한 진나라 의사에게 진찰을 받았다. 의사에게서 "병이 이미 고황에 들어 있어 치료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과연 경공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말았다.

경공의 꿈속에 나타난 두 아이는 말하자면 병마(病魔)다. 이 둘이 명의가 곧 들이닥친다는 말에 고황으로 숨어 버린 것을 경공이 현몽(現夢)했고, 급기야 죽음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다.

'좌전(左傳)'에 나오는 '병이 이미 고황에 들다(病入膏)'라는 성어의 유래다. 이 성어는 경공의 꿈속에 나타난 두 아이를 가리키는 '이수(二竪)'라는 말로도 대용된다.

사람의 신체에서 '고'는 심장 끄트머리에 달려 있는 작은 지방(脂肪) 부위, '황'은 심장과 횡격막 사이에 있는 공간이다. 침을 사용해 치료하기에는 너무 깊숙하며 위험해 손을 쓰기 힘들고 약물로도 치유가 불가능한 곳이다.

고사를 들먹이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의 현실이 그와 흡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어지는 정부의 핵심적인 정책 방향을 보면 이제 정부의 국정 운영 수준은 웬만한 방법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대북 정책의 총괄자인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한국전쟁이 남침이냐 북침이냐를 묻는 질문에 "이 자리에서 규정하기 곤란하다"면서 넘어간 것은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다. 남침설은 북한의 맹방인 중국마저 인정하는 대목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연결되는 이 부분을 책임자인 장관이 모호하게 언급한다는 것은 경우가 한참 지나친다.

대통령은 한술 더 떴다. 해외 순방 자리에서 한국전쟁을 두고 '내전'이라고 발언해 버렸다. 북침설을 내세우는 좌파 학자들의 용어를 국가 원수가 쉽게 사용하면서 국민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부동산 등 민생 대책과 함께 대북 정책의 병이 깊어진다. 경공의 꿈속에 나타난 '두 아이'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들이 이미 고황 안으로 숨어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유광종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