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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농장 거짓말쟁이" 北 욕먹던 이화영…김성태가 구한 전말

중앙일보

입력

 “거짓말쟁이.”
2018년 11월 말 중국 선양. 쌍방울그룹 관계자들과 만난 김성혜 조선아태평화위원회 실장은 이화영(60)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경기도가 기금으로 스마트팜을 지원해준다고 해서 인민들을 모아 놨는데, 소식이 없다” “닭XXX처럼 닦아 먹었다” 등 원색적인 비난을 했다는 것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쌍방울그룹 관계자들의 진술이다.

김성혜는 왜 이 전 부지사를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을까.

지난 6월11일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김성혜 북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이 성 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와 만나기 위해 싱가포르 리츠칼튼 밀레니아호텔로 들어서고 있다. 김성혜는 2006~2007년 19대 국회의원이었던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만나 1만마리 규모 돼지농장 지원을 약속 받았다고 한다. 연합뉴스

지난 6월11일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김성혜 북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이 성 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와 만나기 위해 싱가포르 리츠칼튼 밀레니아호텔로 들어서고 있다. 김성혜는 2006~2007년 19대 국회의원이었던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만나 1만마리 규모 돼지농장 지원을 약속 받았다고 한다. 연합뉴스

국회의원 시절 방북해 '돼지농장' 약속 

검찰은 수사의 참고자료로 들여다 본 책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출신의 대북사업가 권오홍씨(사망)가 2007년 6월에 낸 대북 접촉 비망록 『나는 통일 정치쇼의 들러리였다』가 그 참고서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17대 국회의원이던 이 전 부지사는 2006년 10월 20일 중국 베이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함께 북한 대남공작기관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이호남을 만나면서 대북 접촉의 물꼬를 텄다. 이들의 만남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출신의 대북사업가 권오홍씨(사망)가 주선했다. 권씨는 이 전 부지사가 자신의 책에 언급한 ‘2006년 12월 평양 단신 방문’도 주선·동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 전 부지사는 2006년 11월 중국 등을 오가며 북한 측과 “1만 마리 규모의 돼지농장을 지어주겠다”고 협의했다. 한달 뒤 홍콩과 중국 베이징을 거쳐 평양에 들어간 이 전 부지사는 김성혜 등 북한 인사들을 만나 특사 및 정상회담 제의·진행방안을 협의하고 ‘돼지농장 추진 합의’ 등을 체결한다. 권씨는 책에 “김성혜의 관심은 ‘돼지농장’에 쏠려 있었다. 그 사업이 ‘(윗선의) 방침’이라는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이 사업을 들고 오지 않았다면 이화영은 (북측과 이야기할)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오른쪽). 2006년 5월 열린우리당 남북경제교류협력추진단으로 방북했을 때 김영남 당시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회동을 했다. 도서출판 다락방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오른쪽). 2006년 5월 열린우리당 남북경제교류협력추진단으로 방북했을 때 김영남 당시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회동을 했다. 도서출판 다락방

‘방정환재단 = 쌍방울’ 16년 전과 비슷한 경협 합의

권씨의 책에는 두 사람이 돼지농장 사업에 대해 상의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이 전 부지사는 권씨에게 “(노무현)대통령이 돼지농장을 잘 해보라고 했다. (사업 추진·지원을) 한국방정환재단으로 하라신다”고 말했다. 방정환재단은 당시 이 전 부지사가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기관이다. 

권씨는 “방정환재단이 평양과 계약을 체결해 기증요청서를 받고, 통일부에 요청해 남북협력기금을 받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방정환재단이 지정한 중국회사와 자문 계약도 체결하고 관련 기관과 업무협약을 맺자. 실무적 방문할 때도 이들과 같이 움직이자”고 제안했다. 이 전 부지사는 “그럼 문제가 없겠다. 편리하게 할 수 있겠다”고 승낙한다. 권씨는 이후 돼지농장 사업 관련 자료를 모으고 북한과 의견을 조율하는 등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을 비공식 라인으로 추진한다”는 비난이 제기되면서 돼지농장 프로젝트는 흐지부지됐다. 

경기도가 하루 만에 아태평화교류협회의 대북지원사업 계획을 승인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 계획 중에는 묘목 사업도 포함됐다. 북한으로 보낼 묘목장을 찾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 사진 아태협

경기도가 하루 만에 아태평화교류협회의 대북지원사업 계획을 승인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 계획 중에는 묘목 사업도 포함됐다. 북한으로 보낼 묘목장을 찾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 사진 아태협

스마트팜 사업 무산 위기에서 김성혜가 이 전 부지사를 ‘거짓말쟁이’라고 지칭한 것도 이전 ‘돼지농장 프로젝트 불발’과 연결된다.

이 전 부지사와 김 전 회장의 공소장에 따르면 이 전 부지사는 2018년 10월 북한 평양에서 김성혜를 만나 6개 남북교류협력에 합의한다. 그중 하나가 농림복합형 농장인 스마트팜 개선 비용 500만 달러 지원이다. 이후 김성혜는 이 전 부지사에게 스마트팜 비용 지급을 수회에 걸쳐 독촉했다.

김성혜는 2019년 11월 김 전 회장 등을 만난 자리에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이 전 부지사를 비난했다고 한다. 방용철 쌍방울그룹 부회장은 지난달 3일 재판에서 “김성혜가 ‘이화영이 노무현 정무 시절에도 지원을 약속했는데 그때도 약속이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복수의 쌍방울 관계자들도 법정에서 “김성혜가 이화영을 언급하며 화를 내자 당시 술에 취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우리 형(이화영) 욕하지 마라. 내가 대신 주겠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그룹이 김성혜와 만난 사실을 확인한 뒤 김 전 회장에게 “경기도 지원 아래 대북사업을 진행하라”고 권유하며 경기도의 스마트팜 비용 대납을 요구했는 게 쌍방울 대북사업 관계자들의 진술이다.

그동안 쌍방울그룹의 대북사업이 이 전 부지사가 앞장선 경기도의 대북사업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을 입증하는 데 주력해 온 검찰은 최근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쌍방울의 직접 연결 고리를 찾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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