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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형 어떻게 이래" 김성태 격정 토로…이화영은 눈만 꿈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800만 달러+α’를 북한에 건넸다는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과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를 대신해 대북송금을 김 전 회장에게 요청했다는 의혹을 받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진실게임이 점입가경이다. 검사를 앞에 두고 수원지검 조사실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김성태, “나라 위해 한 일 아니냐” 설득

800만달러 불법 대북송금 의혹의 핵심 인물로 8개월 동안 해외 도피생활을 이어왔던 김성태 전 회장이 지난달 17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로 귀국하고 있다. 공항사진기자단.

800만달러 불법 대북송금 의혹의 핵심 인물로 8개월 동안 해외 도피생활을 이어왔던 김성태 전 회장이 지난달 17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로 귀국하고 있다. 공항사진기자단.

 25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2일 오후 3시 이뤄진 두번째 대질심문에서 김 전 회장은 “과정이야 어찌됐든 (대북송금은) 나라를 위해 한 일 아니냐. 말 못 할 것이 뭐가 있느냐”는 취지로 이 전 부지사를 설득했다고 한다. 지난 15일 1차 대질조사에서 김 전 회장은 “쌍방울의 대북송금은 모르는 일”이라는 이 전 부지사의 모르쇠에 분통을 터뜨렸지만 이날은 비교적 차분하게 설득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날 김 전 회장은 “형님, 잘 생각해보라”, “내 주변 사람들이 다 구속됐다. 우리 오랜 인연 아니냐”는 등 인정에 호소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1시간 가량 이어진 2차 대질에서도 이 전 부지사는 모르쇠 전략을 접지 않았다. 대신 임플란트 치아가 빠지는 등 심한 치통을 느낀다고 호소해 대질 상황을 예정보다 일찍 벗어났다. “아무래도 김 전 회장이 (스마트팜 사업비 500만 달러 대납 요구 등에 관한)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으니 이 전 부지사가 부담을 느끼는 눈치였다”는 게 대질 상황을 전해들은 김 전 회장 주변 인사들의 말이다.

“아버지·동생…내가 참 많이 울었다”

2018년 10월 25일 방북 결과를 발표하는 이화영 당시 경기도 평화부지사. 그는 당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해 조선아태평화위원회 김성혜 실장을 비롯한 북측 고위관계자와 남북교류협력 사업에 대해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논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경기도.

2018년 10월 25일 방북 결과를 발표하는 이화영 당시 경기도 평화부지사. 그는 당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해 조선아태평화위원회 김성혜 실장을 비롯한 북측 고위관계자와 남북교류협력 사업에 대해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논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경기도.


 그에 비하면 1차 대질 조사는 김 전 회장의 격정 토로의 장이었다. 첫 대면하는 순간에는 “웃지마라”, “쳐다보지 말라”며 이 전 부지사에게 날을 세우기도 했지만 조사가 시작되자 “내가 어제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참 많이 울었다”는 등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다고 한다. 2019년 모친상을 당한 김 전 회장은 홀로된 부친과 함께 조사받는 친동생 이야기도 꺼냈다. 그러면서 김 전 회장은 “20년을 알고 지냈는데 형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느냐”며 “우리 쪽 사람 10명이 넘게 구속됐고, 회사도 망하게 생겼다. 우리 식구들은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호소했다. 그러다가 “나 (감옥에) 들어갔다 나오면 70세다”며 “왜 형 입장만 생각하느냐, 우리 입장도 생각해달라. 왜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셨는데 어떻게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의 갖은 설득에도 이 전 부지사는 요지부동이었다. 한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이 전 부지사가) 말을 안하고 얼굴만 보고 1시간 동안 눈만 꿈뻑꿈뻑하고 있는 게 참기 힘들다”고 말했다. 당시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이 대북사업을 안부수 아태협 회장을 끼워넣어 북한과 협약서를 쓴 것 아니냐”며 경기도의 대북송금 요청을 부인했고 “형”이라고 부른 김 전 회장에게 “회장님”이라고 경칭을 쓰며 거리를 뒀다고 한다.

상호 인식 양해…李 제3자뇌물 법리 가다듬는 檢

 대북송금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22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근무한 경기도청에 대해 압수수색에 나섰다.   압수수색 대상은 이 전 부지사가 근무했던 경제부지사실(옛 평화부지사), 비서실, 평화협력국, 도의회 사무처 등 7~8곳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청사 내에서 압수수색하는 검찰 관계자. 연합뉴스.

대북송금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22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근무한 경기도청에 대해 압수수색에 나섰다. 압수수색 대상은 이 전 부지사가 근무했던 경제부지사실(옛 평화부지사), 비서실, 평화협력국, 도의회 사무처 등 7~8곳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청사 내에서 압수수색하는 검찰 관계자. 연합뉴스.

 진실게임이 되어버린 두 차례 대질심문은 검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제3자뇌물제공 혐의 입증에 필수적인 청탁 현안에 대한 ‘상호 인식과 양해’를 뒷받침할 진술 증거를 보완하기 위해 시도였다. 이미 쌍방울이 800만 달러를 조직적으로 중국으로 반출해 북측에 전달했다는 것과 김 전 회장이 대북사업에 걸었던 기대와 그에 따른 청탁 현안이 존재했다는 것에 대한 증거는 이미 충분한 상태다. 김 전 회장이 북측에서 받은 800만 달러에 대한 ‘령수증’과 2019년 5월 김 전 회장이 이 전 부지사를 대동한 자리에서 체결한 북한과 경협 합의서 등을 모두 확보했기 때문이다.

남은 입증과제는 이 대표가 김 전 회장 또는 쌍방울그룹 측에 이같은 현안이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북측에 경기도의 스마트팜 사업비를 대납하고 이 대표의 방북 비용을 송금하도록 지시했거나 묵인했는지 여부다. 이미 상당한 수준의 객관적 정황을 확보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 대표와 김 전 회장이 3~5회 직접 통화하고 모친상에 서로 대리 조문을 하는 등 접촉이 있었다는 진술 등이 그런 맥락에서 의미있는 팩트라는 것이다.

검찰은 쌍방울이 2019년 1월 북한 관계자들에게 “경기도와 함께 사업을 하기 때문에 남북협력기금을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는 점 등도 경기도지사였던 이 대표의 ‘인식과 양해’ 없이는 쌍방울의 대북사업 시도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정황이라고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경기도와 쌍방울이 컨소시엄을 만들면 경기도의 하도급사(대리인)처럼 동시에 사업이 가능해진다”며 “경기도 역시 쌍방울을 껴서 남북교류협력기금을 지출해 대북사업을 하려던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이 전 부지사의 진술 태도 변화를 압박하는 데 공을 들이는 것은 보다 이 대표와 김 전 회장 사이의 다리 역할을 했던 이 전 부지사의 자백만큼 ‘부정한 청탁’의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두 차례 대질신문에도 이 전 부지사가 이 대표로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는 ‘방화벽’ 역할을 고집하자 수원지검은 22~24일 연달아 경기도 평화부지사실, 행정1부지사실과 이 전 부지사가 수감된 구치소까지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회장이 이 전 부지사에게 추가 뇌물을 줬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대장동과 성남FC 사건이 법리 싸움이라면, 대북송금 의혹은 증거 싸움”이라며 “검찰 입장에선 대북송금 사건에선 앞선 사건들보다 훨씬 뚜렷한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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