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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앞 방화벽" 불리는 남자...2전2승 이화영 '모르쇠 작전'

중앙일보

입력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운데). 그는 2006년 2월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청년 정당인 대표로 평양을 방문해 환영 공연을 관람했다. 도서출판 다락방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운데). 그는 2006년 2월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청년 정당인 대표로 평양을 방문해 환영 공연을 관람했다. 도서출판 다락방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을 수사중인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 김영남)는 이화영(60)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입을 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이재명 지사 시절 경기도 대북사업을 총괄 지휘자였던 이 전 부지사가 쌍방울 측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경기도가 내야할 돈을 대납한 경위와 그 과정에서 이 대표에게 보고하고 지시받은 내용을 진술해야 불법 대북송금의 책임을 이 대표에게 묻기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전 부지사는 이 대표 이야기는커녕 “나도 쌍방울의 송금 사실을 몰랐다”고 버티고 있다.

검찰은 지난 15일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이 전 부지사를 소환 조사하던 중 김성태(55) 전 쌍방울그룹 회장, 방용철(55) 쌍방울 부회장, 안부수(58)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을 불러 4자 대질신문을 진행했다. “20년을 알고 지냈는데, 형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는 등 분통을 터뜨리는 김 전 회장을 앞에 두고도 이 전 부지사는 “모르는 일”이라고 일관했다고 한다.

“이화영은 정치자금 전문가”…檢 칼끝 두 번 피해

  이 전 부지사를 아는 정치권 인사들은 “경험칙에서 나오는 모르쇠 전술을 깨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미 두 차례 검찰의 집중 수사를 받고도 기소를 피하거나 무죄를 받아낸 전력을 두고 하는 말들이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캠프에서 대선자금 집행의 실무 책임자인 업무조정국장으로 일했던 이 전 부지사는 2002년 말 불법 대선자금 모금 혐의에 연루돼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았지만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2012년엔 이 전 부지사가 김동진 전 현대차그룹 부회장과 유동천 전 제일저축은행 회장 등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등 총 1억여원의 뒷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2015년 9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한 민주당계 정치인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화영은 정치자금을 문제없이 다루는 데 손꼽히는 회계 전문가”라고 말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오른쪽). 그는 2006년 5월 열린우리당 남북경제교류협력추진단으로 방북해 김영남 당시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회동을 했다. 도서출판 다락방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오른쪽). 그는 2006년 5월 열린우리당 남북경제교류협력추진단으로 방북해 김영남 당시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회동을 했다. 도서출판 다락방

이화영, 2019년 전후 2차례 방북…7차례 北 접촉

 그러나 검찰은 이 전 부지사를 상대로 한 수사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이미 이 전 부지사가 쌍방울그룹의 대북송금 과정을 알고 있었다는 점을 입증할 정황 증거와 진술을 다수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1월 중국 선양의 한 호텔에서 쌍방울과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가 남북협력사업 합의서를 체결할 당시 찍은 사진 2장이 대표적이다. 그 중 한 사진에는 이 전 부지사와 김 전 회장, 송명철 조선아태위 부실장 등이 마주 앉은 모습이 담겨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이 전 부지사는 김 전 회장이 경기도를 위해 800만달러를 불법 송금한 것으로 지목되는 2019년 전후로 2차례 방북(방북승인 기준)했고, 총 7차례 북한 주민을 접촉했다고 신고했다. 이 전 부지사와 김 전 회장의 관계가 각별하다는 점은 2011년 10월~2017년 3월 쌍방울 고문, 그 직후~2018년 6월 쌍방울 사외이사를 지낸 것만으로도 부인하기 어렵다.

김 전 회장의 대북사업 과정을 잘 아는 지인은 “기업사냥에 주력해 온 김 전 회장이 이 전 부지사가 아니라면 달리 북측 인사들과 신뢰를 쌓을 경로와 방법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대북사업 브로커인 안부수씨를 김 전 회장에게 소개한 것도 이 전 부지사라고 파악하고 있다.

그에 비교하면 이 전 부지사는 자타공인의 ‘북한통’이다. 그가  2007년 12월 펴낸 『한반도 평화경제공동체 구상과 전략』의 저자 소개에는 “이화영은 17대 국회의 대표적인 북한통이자 대륙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고 적혀 있다. 이 전 부지사는 2006년 12월 홀로 평양을 방문해 남북 최고위층의 메신저 역할을 수행했다. 그 두 달 전엔 북한이 핵실험을 했는데, 당일 북한 고위당국자로부터 “이번 핵실험은 협상용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고 이 전 부지사는 책에 적었다.

“17대 때 (국회에서) 일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에 왔다갔다 하라’고 하셔서 평양에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거든요. 그 중에 한 명이 그 당시 실세인 김성혜라고 통일전선실장이었고, 그 위가 김영철 위원장이어서 평양에서 만났어요.”(2020년 2월 24일 유튜브 ‘이동형TV’ 인터뷰)

 김영철과 김성혜는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과정에서도 북측의 주요 파트너로 등장하는 인사다. 김 전 회장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에 관한 공소장에는 이 전 부지사가 2018년 10월 북한 대남기구인 조선아태위 김성혜 실장을 만나 “북한의 낙후된 협동농장을 농림복합형 농장인 ‘스마트팜’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경기도가 북한에 500만달러를 지원해주겠다”는 취지로 약속했다고 돼 있다.

그 다음 달엔 김성혜는 김 전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경기도에서 경기도 기금으로 스마트팜을 지원해준다고 해서 그 말을 믿고 다 준비를 해놨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어 큰일이다”라고 말했고, 이후 이 말을 전해 들은 이 전 부지사가 “쌍방울이 경기도를 대신해 스마트팜 비용을 북한에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게 김 전 회장 등 쌍방울 관계자들의 진술 취지다.

검찰 일각에선 “이번엔 이 전 부지사가 모르쇠로 버틸 수 없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 측으로부터 법인카드 등을 통해 3억 2000만원의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돼 중형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자칫 대북송금과 관련된 처벌도 혼자 덮어쓸 수도 있는 기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평화부지사가 되기 전까지 이 전 부지사와 이 대표는 특별히 가까운 관계는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며 “끝까지 이 대표 앞에서 방화벽 기능을 하려 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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