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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불 켜놨어""반려견 밥주려"…비행기 내린다는 황당 사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달 중순 일본 하네다공항을 출발해 김포공항으로 향하려던 항공기 기내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승객 한 명이 뛰쳐나오면서 “다른 나라로 보내달라”고 횡설수설했고, 스스로 항공기에서 내리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항공사는 어쩔 수 없이 해당 승객을 내리도록(하기·下機) 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안전을 위한 보안 절차에 따라 다른 승객들도 비행기에서 전원 내린 후 항공기에 대한 보안 검색을 했다. 결국 출발은 두 시간가량 늦어졌다. 비행기의 예상 도착 시각은 김포공항의 운항 제한시간인 오후 11시가 넘게 돼 인천공항으로 기수를 돌려야 했다. 때문에 다른 승객들은 자정이 넘은 시간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큰 불편을 겪었다.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30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항공 업계가 코로나19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나 공급을 늘리며 정상화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승객들의 자발적 하기 또는 탑승 수속 후 미탑승 사례가 지속해서 발생해 운항에 차질을 빚고 있다. 보안 규정상 같은 비행기를 탄 승객들에게도 피해가 갈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의 경우 올해 들어 이달 말까지 42건의 자발적 하기가 발생했다. 2021년과 2022년에는 각각 94건, 138건의 자발적 하기가 발생했다. 항공기 운항이 정상화될수록 자발적 하기 건수도 더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다.

사실 승객이 자발적 하기를 요구할 경우, 항공사는 해당 승객을 내려줄 수밖에 없다. 가족의 사망이나 본인 건강 악화 등 갑작스러운 사유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는 ‘가족의 코로나19 감염’ 등을 이유로 하기를 요청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문제는 갑작스레 비행기에서 내리기 원하는 승객들이 요청 사유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항공 업계에 따르면, “집에 가스 불을 켜놓고 왔다”라거나, “반려견 식사를 챙겨야 한다”는 등의 이유를 대는 이들도 있다. '갑작스러운 공황장애' 등도 주요 하기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자발적 하기 발생시 다른 승객도 전원 내려 보안 검색해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자발적 하기는 항공기 탑승 직후나 항공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이동하는 도중에도 발생한다. 이 경우 공항 및 항공사의 보안 프로그램에 따라 항공기는 탑승구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다른 승객들 역시 모두 각자가 들고 있는 수하물을 들고 내려야 한다. 이후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비해 하기를 요청한 승객 좌석 근처를 중심으로 검색을 하고, 이상이 없을 경우에 승객들의 재탑승이 이뤄진다. 보안 검색 과정은 1~2시간 걸린다. 다른 승객 입장에선 그만큼 목적지에 늦게 도착하게 된다. 항공사 역시 재운행을 위한 추가 급유는 물론, 승객과 수하물의 재탑승을 위한 지상 조업 등을 추가로 해야 한다. 대형 항공기의 경우 1000만원 가까운 비용이 든다. 항공 업계 관계자는 "자발적 하기뿐 아니라 탑승 수속을 마친 뒤 정작 비행기에 타지 않는 이들도 문제"라고 말한다. 개인 사유 등을 이유로 탑승 직전 갑작스레 취소하는 경우 역시 항공기 운항에 차질을 준다.

황당한 이유로 내려도 처벌 규정 없어

하지만, 이와 관련한 이렇다 할 처벌 규정은 사실상 없다. 현재 항공보안법상 항공기에 탑승했던 승객의 하기와 관련한 명확한 근거 규정이 없어서다. 항공사들은 자체적인 이용 약관 등을 통해 위약금을 물리고는 있지만, 사실상 ‘솜방망이 처벌’에 가깝다. 대한항공의 경우 출국장 입장 후 탑승을 취소하는 승객들에 25만~32만원의 위약금을 물리는 게 전부다. 아시아나항공은 30만원의 위약금을 물린다. 한 국내 항공 업계 관계자는 “다른 승객들과 항공사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무분별한 하기 요청 승객에 대한 법적 규제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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