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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재인상 불가피” 충격 양분(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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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물가 한자리 수 억제에 자신감/“연내 불인상” 정부신뢰 큰 타격 등유와 휘발유값만을 조정한 정부의 이번 유가인상은 이미 충분히 예고돼 온 일이다.
정부는 중동사태 후 국제유가 오름세가 예상 외로 치닫자 당초 「연내 불인상」방침을 바꿔 국내원유도입가가 평균 25달러(9∼12월중 배럴당) 선을 넘어서는 시점에서 유가인상여부를 검토한다는 방침을 수차 밝혀왔었다.
따라서 이달중 도입평균가가 31달러,12월에 28달러 선으로 9월부터 연말까지 평균도입가격이 26달러 선에 이를 것이 확실시된 시점에서 연내 유가인상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이번 주말을 기습적인 인상시기로 택한 데는 그간 유가인상 결정의 최대변수로 맞물려온 연내 한자리 수 물가인상률 유지에 정부로서 여유가 생겼다는 판단이 선 데다 파다해진 인상임박설로 사재기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이번에 소비성 유류만을 손댐으로써 내년초 불가피해진 재인상 스케줄을 짜야 하기 때문에 이번 시기를 앞당기자는 계산도 깔린 듯하다.
인상대상을 등유와 휘발유에 국한한데도 상당한 고심의 흔적이 있다.
정부로서는 그 동안 거둬온 석유사업기금이 유가가 오를 때에 대비한 것이라고 설득해왔고 중동사태가 일어났을 때만 해도 이를 재원으로 연내 인상은 않겠다고 거듭 밝혀왔던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사실 이번 인상결정까지도 「연내 불인상 고수」의 목소리가 정부내에서조차 수그러들지 않는데도 이와 같은 대국민 약속 부담이 작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유와 휘발유가격 인상을 단행한 것은 최근 크게 늘고 있는 에너지소비행태 및 고유가시대에 걸맞은 소비절약이 필요하다는 여론의 공감을 구하기 쉬울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또 휘발유는 소비자물가지수 조사대상품목에서 빠져 있는 관계로 값을 올린다 해도 물가지수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도 감안됐다.
그러나 이번 인상으로 그 동안 정부가 줄곧 거둬온 석유사업기금의 효용성 문제가 다시 정치적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기금의 상당액은 석유비축사업 등에 쓰였으나 「유가완충자금」으로 지나치게 강조된 나머지 그 많은 자금 (5조4천6백75억원)을 어디에 다 쓰고 이제 또 석유류 가격을 올리느냐는 국민의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연내에는 유가를 인상치 않겠다」고 했다가 다시 「인상불가피론」을 펴 정부의 신뢰성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박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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