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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회의는 춤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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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진회숙 음악평론가

진회숙 음악평론가

‘오스트리아의 빈’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아마 왈츠일 것이다. 빈은 자기 도시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왈츠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매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빈 신년음악회의 프로그램이 왈츠 일색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과거에 신년음악회만큼이나 빈 왈츠가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1814년에 개최된 빈 회의였다.

나폴레옹이 엘바섬으로 유배된 지 4개월이 지난 1814년 9월, 전쟁에서 승리한 프로이센·러시아·오스트리아·영국은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전쟁으로 흐트러진 유럽의 질서를 재건하기 위한 회의를 열었다. 오스트리아의 외무장관 메테르니히의 주도 아래 장장 10개월 동안이나 계속된 이 회의에는 90개 왕국과 53개 공국 대표들이 참석했다. 회의가 열리는 동안 회의장으로 쓰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궁전인 쇤부른궁은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메테르니히는 이 호화로운 바로크 양식의 궁전에서 매일 최고급 와인과 흥겨운 왈츠를 곁들인 초호화판 무도회를 열었다. 10개월 동안 연인원 10만 명이 이곳을 들락거리며 흥겨운 왈츠와 달콤한 와인에 취해 야릇한 향락의 밤을 보냈다.

음악으로 읽는 세상

음악으로 읽는 세상

회의에 참가한 나라들은 모두 나름대로 꿍꿍이속이 있었다. 그럼에도 회의 분위기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화기애애했다. 참가자들은 매일같이 흥겨운 왈츠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회의장이 무도회장으로 변해버리고 만 것이다. 이렇게 메테르니히의 무도 외교에 놀아나고 있는 회의장을 보고 오스트리아의 장군 폰 리뉴가 한 말이 있다.

“회의는 춤춘다.”

빈 회의에서의 왈츠는 회의의 실체를 잊게 만드는 일종의 눈속임이었다. 왈츠 선율은 경쾌하고 달콤하지만 정치는 전혀 경쾌하고 달콤하지 않다. 무대 위에서는 웃으며 함께 술잔을 기울이지만 그 뒤에 전혀 다른 얼굴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진회숙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