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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평 하우스공사 곧 마무린데 불"...청년 귀농인 발만 동동[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산림청 공중진화대원들이 8일 오후 경남 합천군 용주면 월평리 산불 현장에서 진화 작업을 펼치고 있다. 뉴스1

산림청 공중진화대원들이 8일 오후 경남 합천군 용주면 월평리 산불 현장에서 진화 작업을 펼치고 있다. 뉴스1

강풍에 삽시간에 번진 불

8일 오후 8시30분 경남 합천군 용주면 월평2구마을회관. ‘합천 산불’ 주민대피 장소 7곳 중 한 곳이다. 현재 이곳에만 주민 21명이 모여 있다. 주민들 얼굴엔 불안·초조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합천군에서 나눠준 응급구호 키트 속 담요를 두른 한 주민은 스마트폰으로 진화 소식을 검색하느라 눈을 떼지 못했다. 오후 10시 기준 진화율은 75%다.

대피소서 만난 이한권(74)씨는 산불초기 목격자다. 그는 이날 오후 1시40분쯤 아내와 함께 합천읍내에서 장을 보고 마을로 돌아오다, 뒷산에 피어로는 연기를 봤다고 한다. 이씨는 “아궁이 때우듯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처음엔) 뭐 태우나 싶었다”며 “그런데 20분도 안 돼 바람이 ‘쌩’하고 불더니 불길이 10m 높이로 치솟았다. 곧 산 위로 번졌다”고 말했다. 이씨는 곧바로 119에 신고했다. 오후 1시59분쯤 일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8일 오후 8시30분쯤 경남 합천군 용주면 월평2구마을회관에서 만난 마을주민이 산불이 난 마을 뒷산을 가리키고 있다. 안대훈 기자

8일 오후 8시30분쯤 경남 합천군 용주면 월평2구마을회관에서 만난 마을주민이 산불이 난 마을 뒷산을 가리키고 있다. 안대훈 기자

일부 주민들은 ‘화마’가 믿기지 않는 듯했다. 이모(80대)씨는 “이 마을에 태어나 평생 살았다. 이렇게 큰불은 처음 봤다”며 “TV에서나 보던 일이 우리 마을에서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냐”며 한탄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주민도 있었다. 전동휠체어를 탈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주모(80대)씨는 “인근에 살던 조카가 부랴부랴 (나를) 차에 태운 뒤 마을 대피소로 피신시켜줬다”며 “그 아이(조카)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고 했다.

8일 오후 8시30분쯤 경남 합천군 용주면 월평2구마을회관에 대피한 주민들이 구호물품으로 받은 에어베개에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안대훈 기자

8일 오후 8시30분쯤 경남 합천군 용주면 월평2구마을회관에 대피한 주민들이 구호물품으로 받은 에어베개에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안대훈 기자

첫 재배 앞둔 청년 귀농인 '한숨'

대구에서 살다 2년 전 합천으로 귀농한 김모(40·여)씨는 발만 동동 굴렀다. 그는 다음 달부터 포도농사를 시작할 참이었다. 군 지원비에 사비를 털어 2149㎡(650평) 규모의 포도 시설하우스를 짓기 시작했고, 현재 막바지라고 한다. 1억5000만원을 들인 하우스가 탄 건 아닌지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마음이 불안해 (더는) 대피소 안에 못 있겠다”며 “하우스에 불이 붙진 않았는지 걱정이다. 직접 가보려 했는데 통제하고 있어 못 갔다”고 답답해했다.

산림청 산불예방진화대가 8일 경남 합천군 산불 현장에서 야간 산불 진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림청 산불예방진화대가 8일 경남 합천군 산불 현장에서 야간 산불 진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첫 ‘산불 3단계’

합천 산불은 이날 오후 1시 59분쯤 발생했다. 정부가 이날 오전 10시 ‘산불방지 대국민 담화문’을 낸지 4시간쯤 지난 시점이다. 농지와 산이 인접한 월평2구 새터마을 끝쪽 야산 초입에서 불길이 시작, 순식간에 번졌다. 합천은 지난달 24일부터 이날까지 건조주의보가 내려져 있다. 바짝 마른 산림에 순간풍속 초속 12m의 강한 바람까지 불어 불길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산림청은 오후 5시 30분을 기점으로 산불대응 3단계를 발령했다. 3단계 발령은 올해 처음이다. 3단계는 피해 추정면적 100㏊ 이상, 평균 풍속 초속 7m 이상, 진화 예상 시간 24시간 이상일 때 발령된다.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도 합천지역에 한해 가장 높은 심각단계로 격상됐다. 이는 주불 진화가 완료될 때까지 유지될 예정이다.

박완수 경남지사가 8일 경남 합천군 산불 현장 인근에 마련된 상황실을 찾아 도 직원으로부터 산불 현황을 보고 받고 있다.   오른쪽부터 최만림 도 행정부지사, 박 지사, 남성현 산림청장. 연합뉴스

박완수 경남지사가 8일 경남 합천군 산불 현장 인근에 마련된 상황실을 찾아 도 직원으로부터 산불 현황을 보고 받고 있다. 오른쪽부터 최만림 도 행정부지사, 박 지사, 남성현 산림청장. 연합뉴스

지금까지 산림당국은 헬기 33대, 산불진화대원 1114명 등을 투입했다. 일몰 이후엔 사고위험 때문에 헬기는 투입하지 못하고 있다. 소방 당국은 현재 민가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방어선을 구축해 대응 중이다.

오후 10시 기준 산불영향구역은 162㏊, 잔여 화선은 1.2㎞로 추정된다. 이날 산불로 오후 6시 기준 합천군 안계마을과 장계마을, 관자마을 등에서 인근 6개 마을 주민 214명이 마을회관, 경로당, 보건지소 등 7곳 대피시설로 분산돼 있다. 인명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다.

산림당국은 불이 추가 확산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연기와 안개 등 큰 변수가 없으면 9일 오전께 큰불이 잡힐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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