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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척박한 국내 팹리스 환경에서 탄생한 유니콘 기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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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시스템 반도체 업체 파두가 스타트업 투자 빙하기 와중에 유니콘 기업에 올랐다. 파두 직원들이 주력 제품인 SSD 컨트롤러의 기능과 신뢰성을 테스트하는 장면. [사진 파두]

시스템 반도체 업체 파두가 스타트업 투자 빙하기 와중에 유니콘 기업에 올랐다. 파두 직원들이 주력 제품인 SSD 컨트롤러의 기능과 신뢰성을 테스트하는 장면. [사진 파두]

파두, 투자 빙하기 속 1조800억원 가치 인정받아

반도체 핵심 인재 확보할 생태계 구축 전력해야

미국이 독식해 온 팹리스(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국내 첫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기업)이 탄생했다. 서울대 공대 출신 연구원들이 주축이 돼 2015년 설립한 시스템 반도체 업체 파두(FADU)다. 파두는 최근 프리 IPO(상장 전 투자 유치)에서 120억원의 신규 투자를 유치해 1조800억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파두의 이번 유니콘 등극은 한국이 유독 취약했던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시스템 반도체는 최근 가파르게 성장하며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하지만 메모리 반도체에 치우친 한국에선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팹리스 분야는 미국은 물론 대만·중국보다도 한참 뒤떨어진 1%대 점유율에 불과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파두는 잠재력을 넘어 이미 사업 성과를 내고 있다. 설립 1년 만에 주력 제품(SSD 컨트롤러)군에서 선두를 달리는 인텔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이를 기반으로 메타(구 페이스북) 등 주요 빅테크 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해 지난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경기 침체로 국내 스타트업계에 투자 빙하기가 이어지는 와중에 당초 예상의 20%를 상회하는 투자를 끌어낸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한국의 취약한 시스템 반도체 환경에서 파두가 이룬 이번 성취는 반도체산업 지형뿐 아니라 인재 확보 측면에서도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파두는 같은 연구실 출신 박사 5명을 포함해 10여 명의 핵심 인재가 쌓아 온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처음 만들어졌다. 설립 후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에서 10년 이상 경험을 쌓은 베테랑 반도체 엔지니어들이 속속 합류하며 기술력을 탄탄히 했다. 유기적인 반도체 생태계가 구축된 덕분에 파두의 성공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열한 국제 경쟁 속에 반도체 강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우리로선 반도체 인재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육부는 어제 반도체 인재를 키우는 대학에 올해 540억원을 집중적으로 지원해 매년 최소 400명의 반도체 인재를 배출한다는 ‘반도체 특성화 대학 재정지원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반도체 인재 확보의 선순환 구조 구축 정책을 내놓은 것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2023학년도 대학 정시모집에서 삼성전자 취업과 연계된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10명 모집에 최초 합격자 전원이 등록을 포기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의대 쏠림 광풍의 해소 없이는 인재 확보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대학 정원 늘리기식 지원을 넘어 이공대 대우 등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만들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