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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민주당의 이탈표 사태, 자성과 혁신 없던 오만의 귀결이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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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지난달 27일 오후 이 대표의 모습. 동의안은 부결됐지만 민주당 내부에서 이탈표가 쏟아지면서 '가결만큼 아픈 부결'이란 해석이 나왔다. 김경록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지난달 27일 오후 이 대표의 모습. 동의안은 부결됐지만 민주당 내부에서 이탈표가 쏟아지면서 '가결만큼 아픈 부결'이란 해석이 나왔다. 김경록 기자

대선 지고도 ‘졌잘싸’, 민심 외면한 방탄이 부른 참사

반란은 국민 대신한 경고, 생존 책임은 이 대표에게로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후폭풍에 더불어민주당이 충격과 혼돈에 휩싸였다. 강성 지지층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탈표를 던진 의원들이 ‘반동분자’라며 색출 작업이 벌어졌다. 비이재명계 의원들의 이름을 적은 ‘낙선 대상’ 명단이 돌아다니고 있다. 해당 의원들에 대한 문자 폭탄도 쏟아졌다. 친이재명계 의원들은 “이탈표는 당권을 노린 기획투표” “여당과 보조를 맞추는 사람들은 당을 나가라”며 이런 기류에 올라탔다.

표결 전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 수사=야당 탄압’이란 주장은 국민 공감을 얻지 못했다. 이 대표 체포를 바라는 여론이 더 높았다. 이탈표는 국민 여론과 상식에 따른 양심의 선택이란 측면이 있는데, 이를 “배신”으로 모는 분위기는 경악스럽다. 민주당이란 이름의 정당에서 익명 표결에 대한 이탈자 색출이라니, 민주주의를 표방한다는 스스로의 이름에 먹칠하는 일이다.

‘찬성 139, 반대 138, 기권 9, 무효 11’의 충격적 결말은 사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자초한 일이다. 2023년 2월 27일 국회 본회의장의 한 컷 사진이 아니라 최근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동영상처럼 천천히 되돌려 볼 필요가 있다. 민주당은 3년 전 2020년 4월 21대 총선에서 위성 비례정당 의석을 합쳐 180석을 휩쓸었다. 팬덤의 영향도 있었지만 전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한국갤럽 기준)이 마지막까지 45%를 기록하는 등 집권 기반도 탄탄한 편이었다.

하지만 민주당 대선후보는 야당이 황급하게 영입한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에게 졌고, 5년 만에 정권을 내놓았다.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패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자성과 혁신의 길을 갔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0.73% 차의 석패라며 스스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무드에 취했다. 대선 때부터 사법 리스크에 휘청댔던 후보는 패배 두 달여 만에 연고는 없지만 이길 만한 지역구의 보궐선거에 나서 불체포 특권이 보장된 의원 배지를 손쉽게 달았다. 또 내친김에 대표 자리까지 거머쥐었다. 과거 대선에 진 후보들이 정치 행보에 쉼표를 찍고 성찰과 인내의 시간을 보냈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그다음 6개월은 대표와 당 전체가 사법 리스크 방탄에만 매달렸다. 결국 이번 이탈표 사태는 자성과 혁신이 전무했던  ‘이재명의 민주당’ 그들만의 리그에 비주류 의원들이 국민들 대신 던진 경고였다. 반성하지 않은 자책감,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봐야 한다.

‘개미 지옥’에까지 비견되는 민주당의 참혹한 현실을 누구보다 직시하고 반성해야 할 사람은 이 대표 본인이다. 압도적 부결을 자신했던 표결이 왜 역대급 반전을 낳았는지, 민주당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감내해야 할 정치적 결단은 없는지 숙고하라. 민주당 생존의 책임은 이제 그에게 넘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