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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믹스' 저무나…일본은행 총재, 비둘기파 가고 중도파 온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가 10년 만에 물러난다. 저금리와 금융 완화 정책으로 ‘아베노믹스(저물가를 탈출하기 위해 유동성을 확대해 경기를 부양하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를 뒷받침했던 인물이다. 새 총재로 우에다 가즈오 전 BOJ 심의위원이 지명됐다. 일본의 금융·통화 정책 지형도에 변화가 예고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첫 학자 총재

우에다 가즈오 전 일본은행 심의위원. 연합뉴스

우에다 가즈오 전 일본은행 심의위원. 연합뉴스

14일 일본 정부는 우에다 전 BOJ 심의위원을 새 총재 후보로 지명했다. 우에다 후보자는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학자 출신이다. 1998년에서 2005년까지 BOJ 정책위원회 심의위원을 지냈다. BOJ 정책위 심의위원은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 위원과 비슷한 성격의 자리다.

우에다 내정자가 총재로 최종 임명되려면 일본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다만 일본 자민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어, 인준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BOJ 총재 임기는 5년이다. 구로다 현 총재 임기가 끝나는 4월부터 새 임기가 시작한다. 일본 의회는 오는 24일 우에다 내정자를 불러 정책 방향을 청취할 예정이다. 우에다 내정자가 차기 총재가 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첫 학자 출신 총재가 된다. 그동안은 일본은행이나 재무성(옛 대장성) 출신이 총재를 맡아왔다.

중도파로 평가…“급격한 변화 없을 것”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교도=연합뉴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교도=연합뉴스

금융 완화 정책을 고수해 ‘비둘기파’로 평가받는 구로다 총재와 달리 우에다 내정자는 ‘비둘기파’와 ‘매파’ 사이에 있는 중도파로 평가받는다. 우에다 내정자는 BOJ 심의위원 당시 제로금리와 양적 완화 도입의 이론적 틀을 제공했다. 하지만 구로다 총재가 펼쳐온 이차원 완화 정책(양적 완화와 질적 완화를 병행하는 것)과 수익률 곡선 통제(YCC·무제한 국채 매입을 통해 10년물 국채 금리를 목표 금리에 맞추는 것) 같은 완화 정책에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가진 인물이다.

특히 YCC 정책에 대해 그는 환투기를 부추기고 미세한 정책 전환이 어렵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우에다 내정자가 차기 총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저금리 정책이 수정될 수 있다는 우려로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일시적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다만 신중한 성격의 우에다 내정자가 급격한 정책 변경을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실제 우에다 내정자도 지난 10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현재 경기와 물가를 볼 때 BOJ 정책은 적절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지난해 닛케이에 기고한 글에서도 성급한 금리 인상을 경계하기도 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우에다 내정자는 유연한 성향을 가진 인물로 BOJ 정책 끝이 YCC 폐지로 갈 순 있지만, 그 과정은 매우 더딜 것”이라고 했다.

정책 수정 불가피…아베노믹스 바뀌나

당장의 급격한 정책 변화는 없어도 아베노믹스로 상징되는 일본의 완화적 금융·통화 정책의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많다. 아베노믹스가 10년간 지속하면서 엔화 가치 하락, 장기국채 금리 왜곡 같은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서다. 특히 최근 물가 상승으로 대부분 국가가 긴축 정책을 펼치는 가운데, 일본만 완화 정책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너무 빨리 출구전략을 찾으면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질 것이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면 시장이 실망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정책 전환과 안정의 딜레마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아줄 인물로 우에다 내정자를 깜짝 발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우에다 내정자 임명으로 일본의 유동성 공급이 단기적으로 줄어들 순 있다. 일본 통화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사라지면서, BOJ가 채권 매입 규모를 축소할 수 있어서다. 최근 일본의 통화 정책 기조가 바뀔 수 있다는 전망에, 일본 10년 국채 금리가 급격히 치솟았다. 이에 금리를 유지하기 위해 BOJ가 국채 매입 규모를 크게 늘리면서 글로벌 유동성도 늘었다. 새 총재 임명으로 정책 불확실성이 줄면, 금리가 안정되면서 일본의 국채 매입 규모도 줄어든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일본 채권시장 안정은 오히려 일본발 유동성 공급 강도를 약화시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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