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선 부족, 물에선 과잉…'원소번호 15번' 인류에 던진 숙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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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브라질 고이아스 주 파드레 베르나르도에 있는 바르젬 두라다 농장에서 농부가 돌가루를 농경지에 뿌리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비료 수입에 차질이 생기면서 브라질이나 인도, 프랑스 등지에서는 화학비료 대신에 영양분이 풍부한 암석(아그로미네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5월 브라질 고이아스 주 파드레 베르나르도에 있는 바르젬 두라다 농장에서 농부가 돌가루를 농경지에 뿌리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비료 수입에 차질이 생기면서 브라질이나 인도, 프랑스 등지에서는 화학비료 대신에 영양분이 풍부한 암석(아그로미네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여름 국내에서는 '무기질 비료 파동'이 발생했다.
요소(20㎏)는 2019년 8600원에서 지난해 2만8900원으로, 용성인비(20㎏)는 8850원에서 지난해 1만3600원으로 급등했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

중국의 무기질 비료 원자재 수출 제한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비료 수출 제한 조치가 나오면서 그 여파가 국내에도 미친 것이다.
2020년 이후 인광석과 인 비료의 국제 가격은 네 배 수준으로 치솟았다.

문제는 이런 비료 가격 상승이 일시적인 현상인가 하는 점이다.

대기 중의 질소를 원료로 만드는 질소 비료와는 달리 인광석을 원료로 하는 인 비료는 구조적인 문제를 갖고 있어 일시적인 상승으로 치부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지난해부터 쏟아지고 있다.

〈요약〉
-인광석 자원 6개국에 몰려 있어 국제 정세 불안해지면 공급 막힐까 걱정
-농경지 뿌린 인 비료 3분의 1은 강·호수·바다로 가서 녹조 등 수질오염 유발
-하수처리장에서 처리 후 재활용하고, 채식 식단으로 전환해 사용량 줄여야

식물 성장에 꼭 필요한 성분 

인도네시아 아체 지역의 농부가 논에 비료를 뿌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인도네시아 아체 지역의 농부가 논에 비료를 뿌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원소 번호 15번 인(燐, Phosphorus)은 식물 성장에 꼭 필요한 성분이지만, 21세기 인류에게 두 가지 숙제를 한꺼번에 던지고 있다.
농업 생산을 위해 인 비료를 어떻게 하면 원활히 공급할 것이냐, 또 인으로 인한 수질오염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해마다 전 세계 농경지에 뿌린 인 비료 성분 가운데 34%가 빗물에 씻겨 강과 호수, 바다로 들어오고, 부영양화를 일으켜 녹조 발생 원인으로 작용한다.

논밭에서는 부족, 물에서는 과잉.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숙제다.
'쌍둥이 위기'이기도 하다.

지난해 6월 유엔 환경계획(UNEP)의 지원을 받은 영국 생태·수문센터(UKCEH)와 에든버러대학을 비롯한 세계 17개국 40명의 국제전문가팀이 발간한 '우리 인의 미래(Our Phosphorus Future)'라는 보고서는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인광석, 6개국에 85%가 집중

젠 세계 인광석의 국가별 분포 비율. 모로코 등 6개 나라에 85%가 분포하고 있다. [자료: Our Phosphorus Future, 2022]

젠 세계 인광석의 국가별 분포 비율. 모로코 등 6개 나라에 85%가 분포하고 있다. [자료: Our Phosphorus Future, 2022]

인 비료의 재료는 인광석이다. 미국 지질 조사국은 2020년 전 세계 인광석 매장량을 700억 톤으로 추정했다.

지난 50년 동안 인구 증가 등으로 인해 전 세계 인광석 채굴은 4배로 늘었다. 2020년 채굴한 인광석은 2억2300만톤이다.

현재 추세라면 앞으로 300년 동안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는 양이고, 신기술이 개발하면 고갈 시기는 더 늦춰질 수 있다.

문제는 인광석의 85%가 모로코·중국·알제리·시리아·브라질·호주 등 6개 나라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모로코 한 나라가 전 세계 인광석의 70%를 갖고 있다.

일부 국가는 정정이 불안해질 수 있고, 안정적인 인광석 공급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 2008년 에너지·식량 가격이 요동치고, 수출 통제 등이 맞물리면서 인광석 가격이 일시에 800%나 급등했다.

일부에서는 여러 요소를 고려하면 50년 후, 빠르면 20~30년 후부터 수급이 불안정해질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국가별 인광석 채굴량 추세 (단위: 100만 톤/년). 2000년대 후반부터 급격하게 늘어났던 중국의 채굴량이 최근 크게 줄어들었다. [자료: Our Phosphorus Future, 2022]

국가별 인광석 채굴량 추세 (단위: 100만 톤/년). 2000년대 후반부터 급격하게 늘어났던 중국의 채굴량이 최근 크게 줄어들었다. [자료: Our Phosphorus Future, 2022]

중국의 인광석 매장량은 5%도 안 되지만, 2019년 전 세계 인광석 생산의 52%를 차지했다.

중국의 채굴량은 최근 빠르게 줄고 있고, 매장량이 작은 미국·러시아에서는 향후 46년 이내에 자체 인광석을 소진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인 오염, 기후위기보다 더 심각

지난해 7월 10일 낙동강 합천창녕보에서 관찰된 짙은 녹조. [자료: 대구환경운동연합]

지난해 7월 10일 낙동강 합천창녕보에서 관찰된 짙은 녹조. [자료: 대구환경운동연합]

2015년 '사이언스' 저널에 발표된 한 논문에서는 기후 변화에 앞서 지구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로 인 오염을 꼽았다.

이미 농지에 인이 과잉인 경우도 많지만, 해마다 많은 양을 농지에 투입하고 있다. 사용 효율이 낮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동안 전 세계에서 강·호수로 들어가는 인의 양이 연간 500만 톤에서 900만 톤으로 거의 두 배로 늘었고, 현재 추세라면 2050년까지 다시 두 배로 늘어날 수도 있다.

토양의 인 농도. 하늘색과 파란색은 인이 부족한 곳, 노란색과 빨간색은 인이 과잉인 곳을 나타낸다. 한국도 인 과잉 지역에 속한다. [자료: Our Phosphorus Future, 2022]

토양의 인 농도. 하늘색과 파란색은 인이 부족한 곳, 노란색과 빨간색은 인이 과잉인 곳을 나타낸다. 한국도 인 과잉 지역에 속한다. [자료: Our Phosphorus Future, 2022]

인 성분이 하천·호수로 들어가면 남세균(cyanobacteria) 등의 녹조를 불러온다.

남세균이나 조류(algae)도 광합성을 하는 생물이어서 농작물처럼 비료가 들어오면 성장이 촉진된다.

남세균 중에는 간 독성 등을 가진 마이크로시스틴 등 독소를 생성하기도 한다.
남세균은 지오스민과 2-메틸이소보르네올(MIB) 등 물에 흙냄새를 내는 물질도 생산한다.

전 세계 해양 400곳에 '데드 존'  

산소 고갈로 발생한 해안의 수산 양식장 물고기 떼죽음. [자료: Our Phosphorus Future, 2022]

산소 고갈로 발생한 해안의 수산 양식장 물고기 떼죽음. [자료: Our Phosphorus Future, 2022]

담수 부영양화와 녹조는 기후변화로 인해 심화할 전망이고, 늘어나는 댐 건설로 인해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보고서를 쓴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남세균은 다른 조류보다 높은 온도에서 잘 자라고, 댐에 의해 수층이 성층화·안정화돼도 떠오를 수 있어 잘 견딘다.
공기 중 질소를 고정해서 양분으로 이용하는 남세균도 있어 인만 보충되면 다른 경쟁자는 따라갈 수도 없다.

미국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인간 활동으로 인해 강은 전체의 72%가, 호수는 79%가 인 농도가 배경 수준을 초과했다.

부영양화와 유해 조류 녹조로 인해 미국 경제에 연간 22억 달러(약 2조8000억 원)의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한 연구도 있다.

담수로 배출하는 인의 양. [자료: Our Phosphorus Future, 2022]

담수로 배출하는 인의 양. [자료: Our Phosphorus Future, 2022]

지난 2018년 7월 적조주의보가 발령된 전남 여수시 남면 화태도 해상에서 양식장 피해 방지를 위해 바다에 황토를 뿌리고 있다.[뉴스1]

지난 2018년 7월 적조주의보가 발령된 전남 여수시 남면 화태도 해상에서 양식장 피해 방지를 위해 바다에 황토를 뿌리고 있다.[뉴스1]

바다에 들어간 인은 적조 등 식물플랑크톤의 대발생을 일으킨다.

식물플랑크톤이 사멸하고 분해될 때는 수층의 산소가 고갈돼 '무산소층'이 나타난다.

무산소층은 물고기 등 동물이 사라지는 '데드존(dead zone)'이다.
전 세계적으로 400곳이 넘는 해안 생태계가 '데드존'으로 보고됐다. 다 합치면 한반도 면적보다 조금 더 넓은 24만5000㎢이나 된다.

한편, 인광석 속에는 사람이나 자연 생태계에 해로운 오염물질도 포함돼 있다.

인광석 처리 과정에서 연간 최대 2억 톤에 이르는 인산 석고가 발생하는데, 여기에서 침출된 오염물질이 환경과 지역사회의 건강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인 소비 줄이고 재활용해야

비료 형태로 처리 완료된 음식물 쓰레기. 음식물쓰레기를 퇴비로 재활용할 경우 인 수요를 줄일 수 있고, 오염도 예방할 수 있다. 인천 부평구 부평동에 위치한 한 아파트에서 업체 관계자가 음식물 쓰레기 처리 기기를 점검하고 있다. [중앙포토]

비료 형태로 처리 완료된 음식물 쓰레기. 음식물쓰레기를 퇴비로 재활용할 경우 인 수요를 줄일 수 있고, 오염도 예방할 수 있다. 인천 부평구 부평동에 위치한 한 아파트에서 업체 관계자가 음식물 쓰레기 처리 기기를 점검하고 있다. [중앙포토]

'우리 인의 미래' 보고서는 전 세계 정부가 2050년까지 인 오염을 50% 줄이고, 영양소 재활용을 50% 늘리는 "50, 50, 50" 목표를 채택할 것을 촉구했다.

농지에서 사용하는 인의 사용 효율을 높이고, 하수처리장 등에서 인을 따로 모아 비료로 재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과 관련된 '쌍둥이 문제', 즉 인 공급 문제와 지표수 부영양화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책이다.

'우리 인의 미래' 보고서 표지.

'우리 인의 미래' 보고서 표지.

보고서는 ▶가축 분뇨 속의 인을 비료로 활용 ▶육식을 줄인 지속가능한 식단 채택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오·폐수 처리시설 확충과 개선을 통한 인 재활용 등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노력을 통해 개인과 자연 생태계의 건강을 개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기 탄소를 토양에 되돌려 줌으로써 토양 비옥도를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 1kg으로 생산할 수 있는 농축산물의 양. 인 1kg으로 감자 3333kg을 생산할 수 있지만, 소고기는 16kg만 생산할 수 있다. [자료: Our Phosphorus Future, 2022]

인 1kg으로 생산할 수 있는 농축산물의 양. 인 1kg으로 감자 3333kg을 생산할 수 있지만, 소고기는 16kg만 생산할 수 있다. [자료: Our Phosphorus Future, 2022]

한편, 국내 농지는 양분 수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로 꼽힐 정도로 과잉 영양 투입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농업 생산에 사용된 비료 성분 중 작물에 흡수되지 못하고 유출되는 비료 성분을 양분 수지라고 하는데, OECD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양분 수지는 ㏊당 질소가 212㎏으로 세계 1위, 인은 46㎏으로 세계 2위 수준이다.

국내 단위 면적당 무기질비료 사용량(성분량 기준)이 최근 5년간 연평균 0.5%씩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환경단체 관계자가 지난해 8월 4일 낙동강 하류지점인 경남 김해시 대동면 김해어촌계 대동선착장에서 녹조가 창궐한 낙동강 물을 와인잔과 손으로 받아 보여주고 있다.연합뉴스

환경단체 관계자가 지난해 8월 4일 낙동강 하류지점인 경남 김해시 대동면 김해어촌계 대동선착장에서 녹조가 창궐한 낙동강 물을 와인잔과 손으로 받아 보여주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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