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국내에서는 '무기질 비료 파동'이 발생했다.
요소(20㎏)는 2019년 8600원에서 지난해 2만8900원으로, 용성인비(20㎏)는 8850원에서 지난해 1만3600원으로 급등했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
중국의 무기질 비료 원자재 수출 제한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비료 수출 제한 조치가 나오면서 그 여파가 국내에도 미친 것이다.
2020년 이후 인광석과 인 비료의 국제 가격은 네 배 수준으로 치솟았다.
문제는 이런 비료 가격 상승이 일시적인 현상인가 하는 점이다.
대기 중의 질소를 원료로 만드는 질소 비료와는 달리 인광석을 원료로 하는 인 비료는 구조적인 문제를 갖고 있어 일시적인 상승으로 치부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지난해부터 쏟아지고 있다.
〈요약〉
-인광석 자원 6개국에 몰려 있어 국제 정세 불안해지면 공급 막힐까 걱정
-농경지 뿌린 인 비료 3분의 1은 강·호수·바다로 가서 녹조 등 수질오염 유발
-하수처리장에서 처리 후 재활용하고, 채식 식단으로 전환해 사용량 줄여야
식물 성장에 꼭 필요한 성분
원소 번호 15번 인(燐, Phosphorus)은 식물 성장에 꼭 필요한 성분이지만, 21세기 인류에게 두 가지 숙제를 한꺼번에 던지고 있다.
농업 생산을 위해 인 비료를 어떻게 하면 원활히 공급할 것이냐, 또 인으로 인한 수질오염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해마다 전 세계 농경지에 뿌린 인 비료 성분 가운데 34%가 빗물에 씻겨 강과 호수, 바다로 들어오고, 부영양화를 일으켜 녹조 발생 원인으로 작용한다.
논밭에서는 부족, 물에서는 과잉.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숙제다.
'쌍둥이 위기'이기도 하다.
지난해 6월 유엔 환경계획(UNEP)의 지원을 받은 영국 생태·수문센터(UKCEH)와 에든버러대학을 비롯한 세계 17개국 40명의 국제전문가팀이 발간한 '우리 인의 미래(Our Phosphorus Future)'라는 보고서는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인광석, 6개국에 85%가 집중
인 비료의 재료는 인광석이다. 미국 지질 조사국은 2020년 전 세계 인광석 매장량을 700억 톤으로 추정했다.
지난 50년 동안 인구 증가 등으로 인해 전 세계 인광석 채굴은 4배로 늘었다. 2020년 채굴한 인광석은 2억2300만톤이다.
현재 추세라면 앞으로 300년 동안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는 양이고, 신기술이 개발하면 고갈 시기는 더 늦춰질 수 있다.
문제는 인광석의 85%가 모로코·중국·알제리·시리아·브라질·호주 등 6개 나라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모로코 한 나라가 전 세계 인광석의 70%를 갖고 있다.
일부 국가는 정정이 불안해질 수 있고, 안정적인 인광석 공급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 2008년 에너지·식량 가격이 요동치고, 수출 통제 등이 맞물리면서 인광석 가격이 일시에 800%나 급등했다.
일부에서는 여러 요소를 고려하면 50년 후, 빠르면 20~30년 후부터 수급이 불안정해질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중국의 인광석 매장량은 5%도 안 되지만, 2019년 전 세계 인광석 생산의 52%를 차지했다.
중국의 채굴량은 최근 빠르게 줄고 있고, 매장량이 작은 미국·러시아에서는 향후 46년 이내에 자체 인광석을 소진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인 오염, 기후위기보다 더 심각
2015년 '사이언스' 저널에 발표된 한 논문에서는 기후 변화에 앞서 지구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로 인 오염을 꼽았다.
이미 농지에 인이 과잉인 경우도 많지만, 해마다 많은 양을 농지에 투입하고 있다. 사용 효율이 낮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동안 전 세계에서 강·호수로 들어가는 인의 양이 연간 500만 톤에서 900만 톤으로 거의 두 배로 늘었고, 현재 추세라면 2050년까지 다시 두 배로 늘어날 수도 있다.
인 성분이 하천·호수로 들어가면 남세균(cyanobacteria) 등의 녹조를 불러온다.
남세균이나 조류(algae)도 광합성을 하는 생물이어서 농작물처럼 비료가 들어오면 성장이 촉진된다.
남세균 중에는 간 독성 등을 가진 마이크로시스틴 등 독소를 생성하기도 한다.
남세균은 지오스민과 2-메틸이소보르네올(MIB) 등 물에 흙냄새를 내는 물질도 생산한다.
전 세계 해양 400곳에 '데드 존'
담수 부영양화와 녹조는 기후변화로 인해 심화할 전망이고, 늘어나는 댐 건설로 인해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보고서를 쓴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남세균은 다른 조류보다 높은 온도에서 잘 자라고, 댐에 의해 수층이 성층화·안정화돼도 떠오를 수 있어 잘 견딘다.
공기 중 질소를 고정해서 양분으로 이용하는 남세균도 있어 인만 보충되면 다른 경쟁자는 따라갈 수도 없다.
미국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인간 활동으로 인해 강은 전체의 72%가, 호수는 79%가 인 농도가 배경 수준을 초과했다.
부영양화와 유해 조류 녹조로 인해 미국 경제에 연간 22억 달러(약 2조8000억 원)의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한 연구도 있다.
바다에 들어간 인은 적조 등 식물플랑크톤의 대발생을 일으킨다.
식물플랑크톤이 사멸하고 분해될 때는 수층의 산소가 고갈돼 '무산소층'이 나타난다.
무산소층은 물고기 등 동물이 사라지는 '데드존(dead zone)'이다.
전 세계적으로 400곳이 넘는 해안 생태계가 '데드존'으로 보고됐다. 다 합치면 한반도 면적보다 조금 더 넓은 24만5000㎢이나 된다.
한편, 인광석 속에는 사람이나 자연 생태계에 해로운 오염물질도 포함돼 있다.
인광석 처리 과정에서 연간 최대 2억 톤에 이르는 인산 석고가 발생하는데, 여기에서 침출된 오염물질이 환경과 지역사회의 건강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인 소비 줄이고 재활용해야
'우리 인의 미래' 보고서는 전 세계 정부가 2050년까지 인 오염을 50% 줄이고, 영양소 재활용을 50% 늘리는 "50, 50, 50" 목표를 채택할 것을 촉구했다.
농지에서 사용하는 인의 사용 효율을 높이고, 하수처리장 등에서 인을 따로 모아 비료로 재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과 관련된 '쌍둥이 문제', 즉 인 공급 문제와 지표수 부영양화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책이다.
보고서는 ▶가축 분뇨 속의 인을 비료로 활용 ▶육식을 줄인 지속가능한 식단 채택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오·폐수 처리시설 확충과 개선을 통한 인 재활용 등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노력을 통해 개인과 자연 생태계의 건강을 개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기 탄소를 토양에 되돌려 줌으로써 토양 비옥도를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내 농지는 양분 수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로 꼽힐 정도로 과잉 영양 투입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농업 생산에 사용된 비료 성분 중 작물에 흡수되지 못하고 유출되는 비료 성분을 양분 수지라고 하는데, OECD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양분 수지는 ㏊당 질소가 212㎏으로 세계 1위, 인은 46㎏으로 세계 2위 수준이다.
국내 단위 면적당 무기질비료 사용량(성분량 기준)이 최근 5년간 연평균 0.5%씩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