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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 만드는 마이크로시스티스…온난화에 남세균 우점종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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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녹조가 뒤덮인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 추소리 인근 대청호에서 조류제거선을 탄 K-WATER(한국수자원공사) 대청댐지사 관계자들이 녹조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7월 녹조가 뒤덮인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 추소리 인근 대청호에서 조류제거선을 탄 K-WATER(한국수자원공사) 대청댐지사 관계자들이 녹조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구 온난화가 호수에서 녹조를 일으키는 남세균(시아노박테리아)의 종류도 바꿔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독소를 생산하는 종류인 마이크로시스티스(Microcystis) 속(屬)의 남세균이 우점종으로 자리 잡아 사람들 건강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중국 티베트 대학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등의 연구팀은 최근 물 관련 국제 저널인 '워터 리서치 (Water Research)'에 발표한 논문에서 "기후변화 탓에 호수 남세균 군집을 구성하는 종이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중국 호수에서 퇴적토 DNA 분석

연구팀이 퇴적토 시료를 채집한 타이후 호수. [자료:Water Research, 2022]

연구팀이 퇴적토 시료를 채집한 타이후 호수. [자료:Water Research, 2022]

연구팀은 중국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인 타이후(太湖)에서 퇴적토를 채집해 그 속에 지난 100년 가까이 켜켜이 쌓인 남세균의 유전물질(DNA)을 분석했다.

면적이 2338㎢로 서울의 4배 가까이 되는 이 호수는 쑤저우·후저우 등지에 사는 3000만 명 주민의 상수원이다.
부영양화된 탓에 녹조가 자주 발생하는데, 2007년 5월에는 마이크로시스티스의 독성 녹조가 발생해 우시(无锡)시의 200만 주민이 일주일 동안 수돗물 없이 지내야 했다.

금강 하굿둑의 녹조. 하굿둑을 사이에 두고 윗쪽이 금강 하류아고, 아래는 서해 갯벌이다. [사진: 김종술씨 제공]

금강 하굿둑의 녹조. 하굿둑을 사이에 두고 윗쪽이 금강 하류아고, 아래는 서해 갯벌이다. [사진: 김종술씨 제공]

마이크로시스티스는 해외는 물론 낙동강 등 국내 4대강이나 대청호 등에서도 녹조를 일으키는 주요 남세균이며, 일부 변이주(strain)는 마이크로시스틴 등 독소를 생산한다.

연구팀은 "기후변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생태계 변화를 장기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하는데, 기존 방식으로는 장기 모니터링 자료가 부족해 퇴적토 시료의 DNA를 분석하는 방법을 도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근 개발된 '과거 퇴적 DNA' 분석 기술 덕분에 남세균의 천이(遷移, succession), 즉 생태계 구성의 장기적인 변화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부터 독소 남세균 증가

중국 타이후 호수 남세균 군집의 상대적 풍부도. 맨 왼쪽에 표시된 것이 독소 생성 종류인 마이크로시스티스(Microcystis) 종류다. [자료: Water Research, 2022]

중국 타이후 호수 남세균 군집의 상대적 풍부도. 맨 왼쪽에 표시된 것이 독소 생성 종류인 마이크로시스티스(Microcystis) 종류다. [자료: Water Research, 2022]

연구팀은 2019년 10월 타이후 호수의 메일리앙 만(灣)의 수심 2.5m 되는 곳에서 코어 샘플러로 길이 81.5㎝의 원기둥 모양으로 퇴적토 시료를 채취했다.

연구팀은 이를 층별로 나눠 DNA를 분석했고, 납 동위원소(Pb 210)로 해당 퇴적층의 연대를 측정했다.

연구팀 분석 결과, 독소 생성 가능성이 있는 남세균 종류인 마이크로시스티스의 경우 1990년대 이후 점진적으로 증가했고, 이전에 우세했던 시네코코커스(Synechococcus) 종류가 뚜렷하게 감소하는 명확한 패턴이 확인됐다.

낙동강에서 채집된 남세균 마이크로시스티스(Microcystis aeruginosa)의 광학 현미경 사진. 여름철 녹조 발생의 원인 생물이다. 작은 세포가 주머니 속에 들어있다가 주머니가 터지면 하나씩 흩어지게 된다.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낙동강에서 채집된 남세균 마이크로시스티스(Microcystis aeruginosa)의 광학 현미경 사진. 여름철 녹조 발생의 원인 생물이다. 작은 세포가 주머니 속에 들어있다가 주머니가 터지면 하나씩 흩어지게 된다.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마이크로시스티스의 경우 1933년부터 1991년까지 전체 남세균 개체군의 평균 약 7%였으며, 1992~2009년에는 상대 풍부도가 평균 약 19%로 급격히 증가했다.

2009년 이후에도 독소를 생성하는 남세균인 마이크로시스티스의 비율이 오르내렸지만, 전반적으로 평균 상대 풍부도가  약 69%일 정도로 높게 유지됐다.

높은 온도, 약한 바람과 관련  

중국 또 다른 호수인 차오호의 녹조.

중국 또 다른 호수인 차오호의 녹조.

연구팀은 통계학적 분석을 통해 마이크로시스티스의 증가와 호수 인근 기상관측소에서 측정한 연평균 기온 사이에 양의 상관관계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또, 마이크로시스티스 증가와 연평균 풍속과는 음의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온도가 상승할수록, 바람이 약할수록 마이크로시스티스 비율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타이후 호수 녹조에서 독성을 지닌 마이크로시스티스의 상대적 기여도는 1991년 이전과 2009년 이후를 비교하면 4배로 늘었다"며 "호수가 이미 부영양화된 상황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기온 상승과 풍속 약화가 마이크로시스티스 증가의 핵심 원인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온도 상승과 낮은 풍속이 호수 수층의 성층화(成層化, stratification)를 부추긴 탓이라는 연구팀의 설명이다.

호수 수층이 안정화하면서 수직 혼합이 약화하고, 고도의 부력(浮力)을 지닌 덕분에 표면에서 대대적으로 번식해 녹조를 형성할 수 있는 마이크로시스티스의 성장에 이상적인 조건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다른 남세균들도 온도가 높을수록 성장 속도가 빨라지지만, 마이크로시스티스는 다른 남세균에 비해 온도 상승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호수 성층화되면 경쟁에 유리

지난 7월 창원지역의 수돗물 원수를 취수하는 낙동강 본포취수장 앞에 짙은 녹조가 발생했다. [사진:낙동강네트워크 제공]

지난 7월 창원지역의 수돗물 원수를 취수하는 낙동강 본포취수장 앞에 짙은 녹조가 발생했다. [사진:낙동강네트워크 제공]

더욱이 호수 표면에 빽빽한 녹조가 발생하면, 햇빛을 더 잘 흡수해 온도를 약 1.5~3℃ 더 상승시킬 수 있고, 반대로 수층 아래는 그늘이 지면서 다른 남세균을 포함해 부력이 없는 식물성플랑크톤의 성장을 억제한다.

이런 되먹임 작용(feedback mechanism)을 통해 마이크로시스티스의 우세는 점점 더 강화된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이 타이후 호수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마이크로시스티스의 풍부도가 증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연구팀은 "지구 온난화가 타이후 호수에서 독성을 생성하는 남세균 우세를 가속하는 데 기여했다"며 "부영양화 호수에서 독성 남세균의 번성은 온난화 추세로 볼 때 미래에는 더 심각해질 수 있고, 수중 생태계와 식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편, 국내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부산대 생명과학과 주기재 교수팀은 지난 6월 '생물지구과학( Biogeoscience)' 국제 저널에 4대강 사업으로 8개의 보가 건설되면서 강물이 정체된 낙동강에서는 매년 여름 성층화 현상이 나타나고, 이로 인해 남세균 녹조가 더 심하게 발생한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낙동강에 여름철 성층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남세균의 성장에 유리한 조건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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