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식당 한달 가스료가 75만원…한파보다 계량기가 무섭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지난 25일 오후에 둘러본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군복·군화·침낭 등 각종 군인 용품을 주로 판매하는 ‘군복 골목’ 내 30여 가게 중 문을 연 곳은 5곳뿐이었다. 난로도 없이 길거리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70대 할머니는 “불이 날 염려 때문에 난방기구는 사용하지 못한다”며 “내의를 여러 겹 껴입고, 핫팩으로 버틴다”고 말했다.

체감온도 영하 20도 안팎인 길거리에 나와 서성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가게 안에 있으면 손님이 눈길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인근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이강희(49)씨 역시 롱패딩과 털모자·귀마개·장갑으로 중무장하고 있었다. 이씨는 “오늘은 오후 3시까지 한 벌도 팔지 못했다. 이러다 개시도 못 하고 문을 닫을지도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양말가게의 정모(72)씨는 “이곳에서 20년 넘게 일하는 동안 가장 추운 날씨”라며 “가게 안에서 5분 정도 몸을 녹이고 1시간가량 밖에 서 있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장사가 잘될 때는 하루 매출이 100만원가량 나오는데, 오늘은 10만원어치도 못 팔았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이렇게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요즘 ‘4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한다. 코로나19에 따른 방문객 급감에다 경기 침체를 만났다면, 최근엔 여기에 더해 강추위에 손님 발길이 끊기고 가스·전기 등 공공요금 인상 ‘쇼크’가 겹치면서다.

현재 남대문시장 전체 점포 5126개 중 991개(19.3%)는 비어 있는 상태다. 국내 최대 전통시장 상권으로 꼽히는 곳인데, 점포 5개 중 하나는 문을 닫았다는 의미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하루 평균 10만 명 선이던 방문객은 이달에는 1000명 정도로 100분의 1토막 났다. 남대문시장상인회 관계자는 “지난해 여름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영향으로 손님이 늘어나는가 싶더니 연말부터 다시 썰렁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오후 3시까지 하나도 못 팔아” 남대문시장 상인의 한숨

최강 한파가 기승을 부린 지난 25일 손님을 기다리는 서울 남대문시장의 상인들. 최선을 기자

최강 한파가 기승을 부린 지난 25일 손님을 기다리는 서울 남대문시장의 상인들. 최선을 기자

여기에다 다락같이 오른 전기·가스·수도 요금도 시름거리다. 가뜩이나 고금리·고물가로 어려움을 겪던 와중에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서울 관악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유덕현(68)씨는 지난달 가스요금으로 75만원을 내라는  고지서를 받았다. 평소(30만~35만원)보다 40만원가량 많은 액수다. 유씨는 26일 “최근에 상당히 추워져 수도가 동파될까 봐 온수를 조금씩 열어 놓았다. 이달엔 (요금이) 더 많이 나올 것 같다”며 “요새 음식 재료값에 인건비·금리도 올라서 결국 음식값 인상밖에 남은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경기도 수원에서 5년째 사우나를 운영하는 박두복(65)씨도 며칠 전 관리비 고지서를 받고 깜짝 놀랐다. 평소 난방비를 포함해 관리비가 월 1500만원쯤 나왔지만, 지난달엔 300만원 가까이 더 나왔다. 박씨는 “사우나는 겨울 장사라 그나마 요새 하루에 손님이 70~80명 오는데 난방비가 급등해 남는 게 거의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은 최근 같은 기습 한파 때는 난방비를 절약하기도 어렵다고 호소한다. 따뜻한 실내 공간을 바라는 손님을 잃을까 봐서다. 손님이 없을 때는 난방을 끄고 전기장판·핫팩·방한모 등을 ‘총동원’하지만 절약에 큰 도움은 안 된다는 얘기다.

자영업자들이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에서도 한탄이 이어진다. “가스비만 40만원 냈고 관리비가 73만원 나왔다. 이런 고지서 처음 받아본다”(1인 찜닭집 운영자)거나 “손님도 줄었는데 차라리 겨울 5개월간은 객실 운영을 중단하는 게 나을 것 같다”(숙박업소 운영자)는 푸념이 쏟아진다.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은 통계치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014조원에 달한다. 2019년 말(685조원)과 비교해 48%(329조원) 늘었다. 지난해 노란우산공제 폐업 공제금도 9862억원으로 집계됐다. 노란우산공제는 자영업자나 소기업인 등이 폐업할 때 퇴직금 용도로 운영하는 제도로, 이전까지 최고액이었던 전년(9040억원) 기록을 넘어섰다.

정동식 전국상인연합회장은 “최근 강추위에 손님도 줄었는데 갑자기 오른 전기요금·난방비 고지서를 받아 들고 깜짝 놀랐다는 상인이 많다”며 “할인 행사와 온누리상품권 할인율 확대 등 실질적인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정책홍보본부장은 “가스와 전기는 소상공인 영업에 필수 요소인 만큼 손에 잡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뒷북 지원방안을 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취약계층 난방비 지원을 위해 예비비 1000억원 등 1800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