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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 “우크라의 나토 가입 반대했지만 이젠 찬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

“(러시아와의) 전쟁 전에는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반대했지만, 이젠 나토 가입이 적절해졌다.”

미국의 외교 원로이자 국제정치학자인 헨리 키신저(99·사진) 전 미 국무장관이 최근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한 자신의 과거 입장을 번복했다. “러시아와 대화는 계속 필요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중립은 더는 의미가 없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키신저는 미 국무장관으로 일하던 1970년대에 미·중 수교를 성사시켰고, 미·소 냉전 시대를 종식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외교가의 ‘산 증인’으로 평가받는다.

17일 AFP 통신에 따르면, 키신저는 이날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 연차 총회에 화상으로 참석해 “전쟁 전에 나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반대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과정들이 시작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말한 뒤 “우크라이나의 중립에 대한 생각은 (전쟁이 계속되는) 지금 상황에서 더는 의미가 없다. 이제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적절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앞서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9월 30일 나토에 신속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유럽 주요국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우크라이나를 가입시켜 러시아를 자극하기보다 현상 유지가 낫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천연가스의 약 40%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유럽 국가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기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전문가 시각도 바뀌고 있다.  옛 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통합하려던 미국 시도를 “신중하지 못하다”고 비판했던 현실주의자 키신저의 입장 변화에 “의미심장하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다만 키신저는 신중론도 함께 폈다. 그는 “러시아를 궁지로 몰아서는 안 된다”며 “거대한 핵무장 국가의 불안정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키신저는 “러시아가 지난해 2월 침공 이후 점령한 영토를 우크라이나가 모두 되찾을 경우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기존 주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면서도 “우크라이나가 개전 직전 이상 영토를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2014년 이후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키신저는 갈수록 갈등이 깊어지는 미·중 관계 개선을 위해 “제한적이고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대만 문제와 관련해 “양국은 결전이 임박한 듯한 행동을 피하고, 위협적인 언사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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