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법 권위 스스로 훼손하는 법·검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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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론스타 관계자들에 대한 서울중앙지법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촉발된 법원과 검찰 간의 갈등이 양측 모두 한발씩 물러섬으로써 봉합되는 분위기다. 대법원이 어제 공보관을 통해 "스스로의 과오라 생각하고 정당한 판결을 통해 신뢰를 쌓겠다"고 밝혔고, 정상명 검찰총장도 "부족한 부분을 돌아보고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지켜본 국민의 심정은 착잡하고 무겁다. 영장 기각을 놓고 서로가 인분(人糞)에 빗대는 등 감정적 언사로 상대를 공격하더니 급기야 론스타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 간부들과 영장전담 판사 등이 외부에서 만났던 사실까지 드러났다. 법정이 아닌 밀실에서 판사와 검사가 구속영장 발부 문제에 관해 협의한 꼴이니 법원.검찰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심지어 대법원장마저 변호사 시절 외환은행의 소송을 대리한 것과 관련한 야당 의원의 의혹 제기에 "대법원장을 위협하는 세력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일반 국민 입장에선 뭐가 뭔지 혼란스럽다.

법원과 검찰은 법치국가에서 법을 적용하고 집행하는 두 기둥이다. 개인이나 단체, 혹은 국가기관 사이에 분쟁이 생겼을 때 잘잘못을 가려주는 최종 판단자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사법기관의 생명은 무엇보다 권위와 국민의 신뢰다. 권위와 신뢰가 있어야만 분쟁 당사자들도 사법부의 판단이나 결정에 승복할 것이다. 그럼에도 법원이나 검찰 구성원들이 뒷골목 언어로 서로를 깎아내리는 등 극단적인 감정싸움을 계속한다면 권위와 신뢰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이다.

법원.검찰이 갈등 봉합에 나섰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갈등의 밑바닥에는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는 공판중심주의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3개월째 이어져 온 이번 갈등의 발단도 9월 공판중심주의에 관한 대법원장의 발언이었다. 수사 기록보다 법정 진술 위주의 재판 제도가 도입되면 양 기관의 역할과 위상 변화가 불가피하다. 자신들의 존립과 직결된 문제여서 언제든 재연될 불씨를 안고 있는 것이다.

공판중심주의가 시행되려면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 판사와 법정부터 늘려야 한다. 현재 2000명인 법관을 2만 명으로 증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플리 바게닝(유죄협상 제도)'과 거짓말하는 참고인 처벌을 위한 사법방해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재판의 장기화와 고비용 등 부작용도 문제다. 법원과 검찰은 이제 감정싸움을 집어치우고 공판중심주의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세부 대책과 합리적인 구속 기준 마련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