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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자기 인격의 진솔한 표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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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뚫린 입이라고 해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 다 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소리도 있고 말도 있다. 인격이 깃들이고 무언가 밝힘(설명)이 있고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설득)비로소 말이 된다.
예부터「말다워야 말」이란 말도 전해오는 터이지만 말에 그 주인의 혼이 들어있지 않으면「말다운 말」은 결코 될 수 없다. 걸림이나 막힘이 없어 설사 현하의 변으로 불린다 해도 전인격이 깃들이지 않은「말답지 않은 말」만 쏟아 낸대서야「말 잘하는 사람」이란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없을 것이 말재간으론 천하에 따를 자가 없다던 춘추전국시대의 소진·장의조차 끝내 입 잘못 놀린 죄로 비명에 가고만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우리시대에「말 잘하는 사람」으로 호가 나있는 전영우 교수(58·수원대국문과)가「말같 지 않은 말」들만이 온통 가로 날뛰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다가 이런 잘못된 언어생활을 광정하는 일에 조그마한 힘이나마 보태보자는 뜻에서 최근 책을 한권 펴냈다. 말이 책이지 이건 사실상 곪아터지려는 환부에 들이댄 수술용 칼이다.
『우리 국어교육이 틀려도 한참 틀렸습니다. 입시를 위주로 하다보니 글쓰는 교육뿐이고 말하는 교육은 숫제 제쳐버리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반쪽 교육이에요. 외국어시간에는 발음부터 가르치면서 국어는 이런 기초학습이 생략된 채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제대로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나올리 없지요.』
전 교수는 전에도『국어 화법론』『국어 화법』『표준 한국어 발음사전』등의 화법에 관한 학술서를 써낸 적이 있지만 소수의 지식층만이 수용할 수 있는 현학적 서술로는「말 바로잡기」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서 대중을 위해 좀더 쉽게 풀어쓴 책으로『오늘의 화법』을 펴내게 됐다고 말한다.
『오늘의 화법』은「말은 그 사람이요 그 인격이다」「말은 누구나 잘 할 수 있다」는 등의 평이한 표제를 달고 있는 25개의 꼭지로 이루어져 있다. 말을 할 때 목소리를 어떻게 조화 시켜야하고, 표정과 동작은 어떻게 해야하며, 이야기의 첫마디나 순서는 어떻게, 또 그 길이는 어느 만큼이 좋은가 등등 얼핏 대수롭잖게 보이면서도 실상은 말의 성패를 근저로부터 가름할 수 있는 온갖 요소들을 쪽집게처럼 집어내 자상하고도 친절한 설명을 가하고 있다.
25꼭지 하나하나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이 책 속에서 그가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화법과 인격의 떨어질 수 없는 상관관계」다. 그가 30년 전에 영어의 스피치(Speech)란 말을「화술」이라고 번역해 쓰다가 이를 곧「화법」으로 바꾼 것도「화술」이 인격성이 배제된「말재주」나「말재간」의 부정적 함의를 갖는 말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말은 자기인격의 진솔한 표현이어야 하며 재주나 재간만을 앞세워서는 생명력을 기대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그는 그런 의미에서「대변은 눌」이라고 한 노자『도덕경』의 한 대목은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믿고 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란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잘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요즈음 세태는 자기 말만 내 뱉을 줄 알지 남의 말은 좀처럼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 게 탈이지요.
말이라는 게 상대방이 있어서 말로 성립되는 것인데 이래선 안됩니다. 흔히 대화의 시대 운운하면서도 사람들은 그런 대화 실종의 맹점을 깨닫지 못한 채 제말 만 하거든요.』
그는 근세 이래의 말 잘하는 인물로 도산 안창호·백악준·양주동씨 등을 제일로 꼽는다.
도산은 전인격을 쏟아 붓는 열렬한 웅변가면서 말과 행동이 한치도 어긋나지 않는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백악준은 토론 문화의 본 고장인 미국에서 오래 머물렀던 탓에 말의 씀씀이가 아주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양주동은 동서고금을 종횡으로 누비면서 말속에 지식과 지혜가 마르는 법이 없는 인물이었다는 점에서다.
전씨는 지금의 직분인 국문과 교수로서보다는 뉴스 보도와 토크쇼의 사회를 맡아보던 명아나운서로 더 잘 알려진 사람이다. 지금도60∼70년대 매일 낮 12시만 되면 동아방송 라디오의 전파를 타고 흘러나오던 그의 낭랑하면서도 중후한 뉴스낭송 소리와 일요일 저녘 토크쇼『유쾌한 응접실』을 매끄럽게 이끌어 나가던 그의 범상치 않은 사회 솜씨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소학교5학년 때 일인 담임교사의 부추김으로 아나운서가 되기를 결심했던 전씨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이던 50년 대말 KBS 아나운서직 시험에 응시, 합격하여 어릴 적 꿈을 이뤘다. KBS재직 10년 되던 해 동아방송(DBS)이 개국하면서 자리를 옮겼고, 80년 방송 통폐합과 함께 다시 KBS로가 아나운서 실장으로 일했다.
교수로 변신한 것은 83년 신설 수원대 국문과의 교수 공채를 통해서였다. 아나운서로 일하면서도 성균관대 국문과에서 석사, 중앙대 국문과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는 등 배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던 터여서 그 변신이 아주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후 89년 성신여대 대학원 박사 과정을 또 한차례 수료하면서「근대 국어 토론에 관한 사적연구」란 논문으로 뒤늦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수원대국문과에서「언어학개론」「음운론」「의미론」「화법론」등의 과목을 맡아 가르치고 있는 그는『교육의 일선에 서서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며 사는 일이 여간 보람되고 즐겁지 않다』며 웃는다.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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