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개국 정상회담 19일 파리서 개막/새 질서 찾는 유럽: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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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탈전쟁… 「신대장전」선언/인권ㆍ경협 등 공존원칙 재확인/새집단 안보기구 구성엔 이견
19일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파리정상회담 개막에 앞서 프랑스 대통령궁인 엘리제궁에서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군축조약으로 평가되는 유럽재래식무기감축(CFE) 조약이 체결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16개국과 바르샤바조약기구 6개국등 22개국 수뇌가 서명하게 되는 이 조약은 양진영의 유럽배치 재래식전력을 동일한 수준으로 대폭 줄여 어느쪽에 의한 선제공격도 불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사실상 동서유럽간 부전조약이 체결되는 셈이다.
이와 함께 이들 22개국 정상들은 양진영은 더이상 서로 적이 아니며,어떠한 경우든 영토적ㆍ정치적 목적으로 무력사용을 하지 않는다는 상호불가침선언에 서명,전쟁포기를 선언케 된다.
전후 유럽 냉전질서의 두 주역인 이 양대군사기구 수뇌들이 전쟁포기선언과 부전조약에 도장을 찍게 됨으로써 대립과 불신이 지배해온 유럽의 구질서는 이날로서 구시대의 장이 종결되고 희망과 불안이 공존하는 「신시대」의 새로운 장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신시대에 어울리는 유럽의 신질서를 모색키 위한 회담이 바로 이번 CSCE 정상회담으로 22개 CFE 조약국을 포함한 34개국 정상이 엘리제궁에서 멀지않은 파리 국제회의장으로 장소를 옮겨 같은날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개막연설을 듣는 것으로 사흘간의 회의를 시작하게 된다.
이 회담에서는 유럽 신질서의 기본이 될 원칙들을 정리ㆍ확인하고,그 원칙들을 실현키 위한 제도적 장치를 논의하는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여기서 확인된 원칙과 합의사항은 회의 마지막날인 21일 채택될 예정인 「파리선언」의 주요내용을 포함하게 된다.
앞으로 유럽 신질서가 바탕을 두게 될 원칙들로는 이미 75년 헬싱키선언에서 확인된 바 있는 ▲인권 ▲경제 및 기술협력 ▲환경 ▲문화협력 등외에 지난 1년반 동안의 동구 대변혁을 통해 확인된 ▲자유선거 ▲시장경제 ▲다당제 ▲사법권 독립 ▲법의 지배 등이 될 걸로 알려지고 있다. 또 안보면에서 ▲무력 불사용 ▲국경 불가침 ▲영토보전 등의 기존원칙이 재확인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 원칙들에 대한 각국의 엄숙한 약속이 이번 파리선언의 대강을 이루게 된다. 대처 영국 총리가 말하는 유럽의 신마그나카르타(권리대장전)가 이번 회담에서 마련되는 셈이다.
이러한 원칙의 실현을 위해 이번 회담에서 마련될 여러가지 제도적 장치에 대한 설명이 파리선언의 각론을 채우게 되는데 우선 CSCE 회원국간의 정상회담 등 고위협의회가 정례화될 전망이다.
34개 회원국 수뇌 모두가 참가하는 정상회담은 2년에 한번씩 열고,외무장관회담은 매년 1회 또는 2회씩 개최한다는 것이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 이와 함께 이들 회원국간의 각종 회담을 조정하고,그 결과를 지속적으로 챙기기 위한 소규모 상설사무국 설치가 확실시 되고 있다. 체코의 프라하가 사무국 소재지가 될 걸로 보인다.
또 회원국간의 긴밀한 군사정보교환을 통한 분쟁의 사전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분쟁방지센터 설치가 합의될 전망인데 소재지로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이 유력시되고 있다.
이밖에 모든 회원국에서 실시되는 선거의 자유ㆍ공정성 여부를 감시키 위한 선거감시기구가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설치될 예정이며,회원국 국회의원들간의 모임도 정례화될 전망이다.
이번 회담에서는 또 동구민주화와 함께 중ㆍ동부 유럽에서 민족주의적 감정이 크게 고조되고 있는 점을 중시,소수민족간의 분쟁 및 여기서 비롯되는 국경분쟁을 초기에 원만히 수습키 위한 「평화적 분쟁해결기구」설립도 검토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CSCE의 장래와 관련,가장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은 CSCE의 안전보장기구화 여부이다. 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간의 세력균형을 바탕으로 유지돼온 유럽의 안보구도가 붕괴되면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집단안보기구화 가능성 여부에 많은 관심이 CSCE에 쏠리고 있는 것이다.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실질적 해체를 눈앞에 둔 소련이 이러한 구상에 가장 적극적인 걸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NATO의 존속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미국과 영국은 당연히 부정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장차 유럽 대통합을 통해 미소를 배제한 유럽의 독자적 안보체계구축을 꿈꾸고 있는 프랑스 또한 미온적이다.
이처럼 각국별로 서로 다른 입장 때문에 CSCE의 안보기구화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게 일반적 관측이다. 더구나 소련의 국내사정이 매우 불확실한 상태에 있다는 점도 CSCE의 본격적 위상변경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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