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美대사관 부지 빨리 마련해 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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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주한 미국대사관이 건물을 신축하려 매입했던 옛 덕수궁터의 일부(옛 경기여고터)에 대한 지표조사 결과가 신축이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나왔다. 연합조사단은 지난 6월부터 해당 부지 1만3천2백여평을 정밀 지표조사한 결과, 이곳에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면서 사용했던 조그마한 길과 문(門)의 초석(礎石) 등이 남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 이곳은 원래 임금의 어진을 모신 선원전(璿源殿)과 임금이 돌아간 뒤 왕의 혼백과 시신을 모셨던 흥덕전(興德殿) 등이 자리했던 '덕수궁의 가장 신성한 공간'이었기 때문에 '반드시 보존'해야 하며 '시굴(試掘)이나 발굴도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물론 이는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권고의견이다. 대사관 신축에 관한 최종 결과는 앞으로 열릴 문화재위원회 매장문화재분과와 사적분과의 심의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연합조사단의 지표조사 발표 결과에 따라 미 대사관의 옛 덕수궁터 신축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특히 지난해 촛불시위 이후 미묘해진 반미감정들을 고려할 때 굳이 이런 장소에 대사관을 지을 이유도 없다. 한.미 양국 모두 이 점에 대해서는 이해를 같이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미국대사관의 신축을 무한정 연기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현재의 세종로 대사관 건물은 우리가 내줄 것을 요구했고, 또 안국동 미 대사관 직원 숙소도 곧 비워줘야 할 처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새 대사관과 숙소의 신축은 양국의 다급한 과제가 돼 있다.

정부는 새로운 대체부지를 적극적으로 물색해 미국과 우리 국민 모두를 만족시키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특히 현재의 신축부지터가 우리 정부의 요청에 의해 미국 측이 구입했던 터였다는 점과 1883년 이래 1백19년 동안 미국의 외교시설이 이곳 정동에 위치해 있었던 점, 러시아 등은 대사관을 정동에 새롭게 지어 들어오는 데 미국은 이 지역에서 밀려나는 듯한 분위기 등을 감안해 합리적인 대안이 나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