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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저수지가 위험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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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손해용 기자 중앙일보 경제부장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지난 9월 경주시 권이·왕신 저수지 하류 지역 주민 1800여명에 긴급 대피령이 내려졌다. 태풍 힌남노로 인해 둑 일부가 떠내려가면서다. 다행히 응급 복구됐지만, 여차하면 수십만t에 이르는 물이 쏟아져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권이 저수지는 올해로 58년, 왕신 저수지는 47년 된 시설이다.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공사가 관리하는 전국 3421곳 저수지 가운데 88.1%(3014개소)가 건설한 지 30년 이상 된 노후 저수지다. 50년 이상 된 저수지가 75.2%(2572개소)로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런 저수지가 점점 심화하는 기후변화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한국의 저수지는 주로 100~200년 빈도의 최대 강수량을 계산해 지어졌다. 100~200년 동안 내릴 가능성이 있는 가장 큰 비의 양을 예상해 이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의미다. 가난하던 시절 예산을 아끼기 위해 필댐(암석·흙·자갈 등으로 쌓은 댐) 형식으로 저수지를 지었는데, 저장 공간을 초과하면 저수지 붕괴 위험이 급격히 커진다.

하지만 최근 기후변화로 이런 계획빈도를 뛰어넘는 강우가 발생하고 있다. 올해 태풍 힌남노와 전국적인 집중호우는 5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최대 강수량이었다는 게 농어촌공사의 분석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특히 한국의 저수지는 대부분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이수(利水) 기능에 집중돼 지어졌기 때문에 홍수 등을 조절하는 치수(治水) 기능이 부족하다. 예컨대 댐은 방류량을 조절하기 위해 큰 수문이 달렸지만, 저수지는 저장 기능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배수구(요수로)가 작다. 저수지 관리 주무 공공기관인 농어촌공사는 정밀안전진단 등을 실시해 보강이 필요한 저수지에 보수 작업을 시행 중이다. 또 내구연한(70년)이 지난 저수지는 전면 재구축도 추진한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보강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둑을 높여 저수량을 늘리거나, 저수지에 홍수 조절 기능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가능최대 홍수량(PMF·극심한 호우로 발생할 수 있는 가장 큰 홍수)을 저수지에도 적용해 설계하고 비상 수문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최경숙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학장·한국농공학회장)는 전문가의 의견이 많다.

이상기후 시대에는 노후한 저수지가 농촌 지역의 안전을 위협하는 폭탄이 될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9월 왕신 저수지를 찾아 “기왕 복구할 거면 비용을 좀 들여서 부가가치를 올리자”고 주문했다. 전문가의 말처럼 저수량을 늘리고 치수 기능을 강화하면 해당 지역에 필요한 생활용수 등까지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물 자원이 더욱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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