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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안정, 영국식 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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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혜란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강혜란 국제팀장

강혜란 국제팀장

중국 시진핑 3기 지도부 교체 기간, 서구에서 가장 오래된 현대 민주주의 국가인 영국도 새 지도자 선출 중이었다. 44일 만에 단명한 리즈 트러스 총리의 후임자를 뽑는 작업은 초스피드로 이뤄졌다. 집권당 대표가 총리를 맡는 의원내각제에서 핵심은 당 대표를 어떻게 뽑느냐다. 리더십 공백 혼란을 줄이기 위해 불가피했다지만, 임의로 바뀐 경선 룰에 따라 단독 출마한 리시 수낵은 후보 등록만으로 총리가 됐다. 벌써부터 영국에선 조기 총선을 실시하란 요구가 빗발친다. 그랬다간 노동당에 다수석을 잃을 위기의 보수당은 못 들은 척 “단결해서 국난 극복”만 외치고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 파동 속에 2015년 5월 이후 7년새 총리가 5번째(데이비드 캐머런→테리사 메이→보리스 존슨→트러스→수낵)다. ‘감세안 후폭풍’ 위기가 다급했다곤 해도, 수낵이 지난 9월 트러스와 경선에서 당원들의 표심을 얻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트러스 시절 핵심 장관을 대거 유임한 것도 좋게 보면 ‘빅텐트’ 탕평 내각이고 달리 보면 ‘그 밥에 그 나물’이다. 총리직만 물러났을 뿐 존슨도, 메이도, 트러스도 모두 현역 의원으로 건재하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치란 이미 엘리트들에게 접수됐고, 진짜 민의는 대변되지 않고 있다는 의구심이 나올 만하다.

25일 새 영국 총리로 확정된 리시 수낵이 총리관저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서 기자회견 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25일 새 영국 총리로 확정된 리시 수낵이 총리관저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서 기자회견 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이를 당분간 잊게 한 게 시진핑의 3연임 대관식이었다. 입장 순서가 서열 순서이고, 공개된 대회장에서 만장일치로 당헌 변경을 추인하는 중국식 ‘권력의 극장’은 21세기에 걸맞지 않게 그로테스크했다. 무엇보다 1인자의 눈짓에 끌려가듯 퇴장당한 후진타오 전 주석의 모습은 상징적이었다.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새로운 장을 쓰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을 실현”하자는 시 주석의 3연임 일성은 최소 5년간 중국이  일사불란하리란걸 예고했다.

“우리(서구 민주진영)에겐 문제가 많고 지도자들도 흠결투성이다. 사회 경쟁력도 많이 쇠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브렛 스티븐스는 지난 18일 이렇게 고백했다. 흔들리는 서구의 대의정치, 확산하는 포퓰리즘을 보면 기우도 아니다. 하지만 신랄한 풍자 칼럼 제목은 ‘땡큐, 시진핑’. 시 주석의 지난 10년간 반대파 숙청과 1인 통치 강화 과정을 조목조목 짚으며 그가 자유세계와 반자유세계의 경쟁에서 무의식적으로 전자의 주장을 돕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질문했다. “이런 중국에 하루라도 살고 싶은가.” 시장이 먼저 답했다. 절대 안정을 선언한 중국에서 투자금이 빠지는 ‘차이나 런’ 동안, 42세 초짜 총리가 맡은 영국 국채 금리는 안정세로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