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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장관을 언니라고 부른다며, 이정근 2000만원 요구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업가 박모씨(62)로부터 10억원의 불법 자금을 받아 구속 기소된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의 검찰 공소장엔 이 전 부총장이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한 정황이 생생히 담겼다. 이 전 부총장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친하다”, “유력 정치인의 측근이며, 대통령 비서실장과도 친하다”고 말하는 등 정계 유력 인사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박 씨에게 돈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소장엔 문재인 정부 당시 장관급 인사 3명, 민주당 국회의원 2명, 식품의약품안전처장, 남동발전 사장, 한전 감사 등 청탁 대상 인사 10여명의 실명이 적혔다.

“특가법·정치자금법 위반” 이정근 檢 공소장

사업가로부터 청탁을 빌미로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의혹 등을 받는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사업가로부터 청탁을 빌미로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의혹 등을 받는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27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이 전 부총장의 공소장을 보면 이 전 부총장과 박 씨가 처음 알게된 건 2019년 11월 말경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박 씨는 벤처펀드를 운용하는 중소기업창업투자사를 인수하려고 했지만, 이 회사의 감사가 인수를 반대해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중 해당 감사가 이 전 부총장과 친하다는 사실을 알고 감사를 설득하기 위해 이 전 부총장을 만나 청탁했다.

이에 이 전 부총장은 “투자사 운용 자금이 중소벤처기업부 자금이라 장관을 움직여야 한다”며 “장관을 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친한 관계이니, 장관과 감사에게 인사할 돈으로 2000만원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돈을 요구했다. 이 전 부총장은 이후에도 “밥도 사고 해야한다”며 1000만원, 이듬해 박 씨가 지분 양수계약을 체결한 후 감사 인사 등 명목으로 1000만원 등 이 건과 관련해 총 4000만원을 받았다.

“靑비서실장 친하다”며 조카 전세금 받아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이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에 출석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이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에 출석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검찰에 따르면 이 전 부총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계속해서 알선수재 명목의 돈을 받았다. 박 씨는 2020년 4월 포스코건설이 갖고 있던 구룡마을 개발 1순위 우선수익권을 매수하기 위해 “대통령 비서실장의 도움을 받고 싶다”며 또다시 청탁을 했고, 이 전 부총장은 “실장님이 도와주신다고 했다. 국토교통부 장관과도 친하다”며 조카의 전세자금을 요구, 총 2억원을 받았다.

이 전 부총장은 2억원을 받은 이후에도 돈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전 부총장은 박 씨에게 비서실장과 청와대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며 “그동안 비서실장에게 돈을 주지 않았는데 이제 비즈니스 관계로 전환하려 한다”고 말해 1억원을 추가로 받는 등 이 건과 관련해 총 3억1500만원을 수수했다.

박 씨가 2020년 7월 다른 기업의 수주 업무를 대행하면서 한국남동발전에 소수력발전 설비를 납품하려고 할 때도 이 전 부총장이 나섰다. 이 전 부총장은 국회 중기벤처위 소속 의원에게 부탁, 해당 기업 관계자들이 남동발전 사장을 직접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해 준다는 대가로 성공보수를 포함해 총 6500만원을 받았다.

2번 낙선 후 도전한 총선, “스폰 해달라”

3·9 국회의원 서울 서초갑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이정근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지난 2월 17일 서울 방배본동 인근에서 유세운동을 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스1.

3·9 국회의원 서울 서초갑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이정근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지난 2월 17일 서울 방배본동 인근에서 유세운동을 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스1.

이 전 부총장은 자신의 선거자금을 요구해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혐의도 받았다. 이 전 부총장은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와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 나섰다가 연이어 낙선했는데, 자금이 부족해진 이 전 부총장이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다시 도전하면서 앞서 청탁을 들어준 박 씨에게 돈을 요구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 전 부총장은 경선일이 다가오자 박 씨에게 “어른들에게 인사해야 하는데 돈이 급하다”며 5000만원을 받았고, 이후 공천이 확정된 후 민주당 부대변인으로 임명된 후에도 “내 뒤에 이런 분들이 있다. 나를 도와주면 나중에 사업적으로 많이 도와줄 테니 후원해달라”고도 말했다. 선거비용을 받은 대가로 박 씨에게 산업통상자원부, 국토부 장관 알선도 청탁받았다.

검찰이 특정한 이 전 부총장의 불법자금 수수액은 총 10억원. 이 중 9억4000만원은 부정청탁 및 알선수재, 3억3000만원은 불법 선거자금으로 봤다. 2억7000만원은 알선수재와 불법 선거자금에 모두 해당하는 것으로 봤다.

선거운동원 수당 대납 혐의로도 기소 

이 씨는 이 씨와의 돈거래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급하게 필요할 때 빌렸고 이를 갚는 중에 박 씨가 허위사실을 퍼뜨리며 법적 분쟁을 일으켰다”는 입장이다. 이 씨는 “저에게 제기된 여러 의혹은 사실과 다르다”며 박 씨에게 청탁을 받거나 로비한 적이 없다고 밝혔었다.

한편 이 씨는 3·9 서초갑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와 관련해 선거운동원들에게 기준치 이상의 수당을 지급하고 이를 회계책임자에게 대납시킨 혐의(공직선거법·정치자금법 위반)로도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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