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憲, 8촌이내 근친혼 금지 합헌…"이미 6촌간 사실혼, 무효 안돼" [가족의자격⑪]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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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촌 이내 혈족 사이의 결혼은 무효 사유가 된다는 민법 조항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 만큼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다만 8촌 이내 결혼을 금지한 건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근친혼을 금지하자는 법의 취지는 맞지만, 이미 혼인이 이뤄졌다면 그 상황을 무효화시키는 것까지는 과도하다는 취지다.

여러분의 8촌은 누구입니까?.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여러분의 8촌은 누구입니까?.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8촌 이내 혼인금지 합헌…이미 이뤄진 근친혼 무효는 헌법불합치”

헌재는 27일 이미 6촌간 배우자와 사실혼 관계인 이혼 소송의 당사자 A씨가 제기한 헌법소원을 일부 받아들여 헌법불합치로 결정했다. 민법 815조 2호 “8촌 이내끼리 결혼할 때는 혼인 무효의 사유가 된다”는 조항의 위헌성을 확인해달라는 취지다.

헌법불합치는 법 조항의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즉각 무효로 하면 벌어질 혼란을 막기 위해 한시적으로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입법부가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이 조항은 2024년 12월 31일 이후 효력을 잃는다.

재판관들은 “근친혼을 금지하는 이유는 근친혼으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가까운 혈족 사이의 상호 관계 및 역할 지위와 관련한 혼란을 방지하고 가족제도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봤다. 8촌 이내 혼인을 금지한 민법 809조 1항은 “근친혼으로 인해 가까운 혈족 사이의 상호 관계 및 역할 지위와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방지하고 가족제도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5대 4로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헌재는 이날 8촌 이내 혈족 사이의 혼인을 금지하고 이를 혼인무효 사유로 규정한 민법 조항에 대해 혼인 금지는 합헌, 혼인 무효는 위헌 판단을 내렸다. 뉴스1

헌재는 이날 8촌 이내 혈족 사이의 혼인을 금지하고 이를 혼인무효 사유로 규정한 민법 조항에 대해 혼인 금지는 합헌, 혼인 무효는 위헌 판단을 내렸다. 뉴스1

그런데 이미 근친혼이 이루어진 상황을 무효화시키는 것은 재판관 전원이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봤다.

8촌 이내 혼인금지 조항을 합헌이라고 본 다수 재판관들(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이미선 재판관)은 근친혼 무효화에 대해 “가족제도의 기능 유지라는 본래의 입법목적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부부간의 권리와 의무가 지켜지고, 아이를 낳는 경우 가족 간의 신뢰나 협력에 대한 기대가 발생한 뒤이기 때문이다.

또 “당사자가 서로 합의 하에 혼인의 외형을 유지하고 있다가도 일방의 혼인무효 주장만으로 혼인관계가 손쉽게 해소될 수 있다고 한다면 한 당사자가 다른 당사자로부터 일방적으로 유기를 당하는 등의 이른바 ‘축출 이혼’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고 짚었다.

8촌 이내 혼인금지 조항 자체도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 4인의 재판관들(유남석‧이석태‧김기영‧문형배)은 “8촌 이내 혈족 사이의 혼인을 금지한 이 사건 금혼조항이 그 금지 범위의 광범성으로 인해 헌법에 합치되지 않으므로 혼인을 전부 무효로 한 이 사건 무효조항도 무효”라는 취지로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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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은 4촌도 결혼한다는데 결혼의 자유 침해”?

헌법소원을 낸 A씨의 배우자는 합의 이혼에 실패하자 두 사람이 6촌 사이임을 들어 혼인 무효 확인 소송을 냈다. A씨는 1·2심에서 모두 혼인 무효 판결이 나자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앞두고 접 민법 조항의 위헌성을 가려달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다.

‘8촌 이내 혼인금지’를 정한 민법 809조는 2005년 민법이 바뀌면서 생겼다. 8촌은 ‘나’의 부계를 기준으로 볼 때 고조할아버지가 같은 자손이다. 그 전에는 동성동본(同姓同本) 사이 결혼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었다. 1997년 헌재가 이 조항이 헌법불합치라고 결정하며 민법을 바꿔야 하자 8촌 이내 혈족으로 금지 범위를 정했다는 것이다.

A씨 측은 지난 2020년 공개 변론에서 8촌까지 혼인을 금지하는 것은 외국 입법례와 비교했을 때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세웠다.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는 3촌까지만,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일본은 4촌까지만 혼인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A씨 측은 8촌 이내 사람들 사이의 결혼은 유전질환이 발생할 위험도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법무부 측은 “국가마다 근친혼에 대한 인식이 다른 만큼 근친혼을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는지는 해당 공동체의 구성원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입법자의 재량사항이라고 맞섰다. “혼인의 자유가 우리 민족 고유의 혼인풍속과 친족 관념의 전통을 이어받아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는 공익보다 우월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펼쳤다.

이날 A씨측 장샛별 변호사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헌법소원을 진행하면서 비슷한 형태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사회의 흐름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금혼 규정에 대해 5대4로 합헌 결정이 나와 아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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