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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보다 더 잔인한 촉법소년…14→13세 낮추면 줄까요 [가족의자격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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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인 2001년, 경기 고양시. 초등학교 6학년 이모군을 비롯한 9명(12살 또는 13살)은 같은 학교 1학년 일곱 살 여학생을 평일 오후 학교 뒤편 공원 등에서 주먹과 돌로 폭행해 항거불능 상태에서 성폭행한 혐의로 고소됐습니다.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낮시간대에 벌어진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사건을 수사한 의정부지검(당시 의정부지청)은 2002년 3월 가해자들이 처벌하지 못하는 14세 미만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라는 이유로 죄가 안 된다며 불기소처분했죠.

넷플릭스 ‘소년심판’의 한 장면. 배우 김혜수가 주인공을 맡았다. ⓒ넷플릭스

넷플릭스 ‘소년심판’의 한 장면. 배우 김혜수가 주인공을 맡았다. ⓒ넷플릭스

20년 전 헌재, 형사 미성년자 규정 합헌 내린 이유는? 

피해자 쪽은 형사미성년자 나이를 규정한 형법 제9조의 위헌 여부와 검찰의 소년부 불송치 결정의 부당성을 가려달라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습니다. 당시 피해자 쪽 청구인은 “경제적 발전과 생활의 풍족에 따른 신체적 성장, 문화적 발달과 교육여건의 호전, 매스미디어의 발달, 나아가 인터넷의 발달 등으로 정신적 성장이 매우 빨라진 점을 고려할 때 만 14세를 기준으로 그 미만을 벌하지 않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헌재 전원재판부(주심 주선회 재판관)는 14세 미만인 자의 행위를 처벌하지 않도록 한 형법의 형사 미성년자 규정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2002헌마533)

당시 헌재는 “형사 책임이 면제되는 소년의 연령을 몇 세로 할 것이냐의 문제는 소년의 정신적·신체적 성숙도, 교육적·사회적·문화적 영향, 세계 각국의 추세 등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해야 할 입법 정책의 문제로 현저하게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것이 아닌 한 입법자의 재량에 속하는 것”이라며 “형사 미성년자의 연령을 너무 낮게 규정하거나 연령 한계를 없앤다면 책임의 개념은 무의미하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이 연령이 지나치게 높다고 할 수 없다면서요.

또 헌재는 “어린아이들은 감수성이 강하고 상처받기 쉬운 정신상태에 있고 반사회성도 고정화되어 있지 않다”며 ”교육적 조치에 의한 개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형벌 이외의 수단에 의존하는 것이 적당하다는 형사정책적 고려를 가미한 규정“이라고도 했죠.

소년범들이 대전소년원 생활관에서 TV를 보고 있다 [중앙포토]

소년범들이 대전소년원 생활관에서 TV를 보고 있다 [중앙포토]

다만 이례적으로 보충 의견이 있었습니다. “국가가 12세 미만의 범죄행위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은 범죄피해자의 생명·신체에 대한 보호 의무를 완전히 저버리는 것이며, 범죄행위자의 나이를 근거로 피해자를 부당하게 차별하는 것”이라며 “형법 및 소년법규정을 재검토하고 이를 보완하는 입법적 시정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전효숙 재판관의 의견입니다.

이후 지난 2017년 ‘인천 초등생 납치 살인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소년범을 혐오한다”는 소년형사합의부 판사가 등장하는 드라마 ‘소년심판’이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10대들의 범죄가 흉악해진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국회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낮추는 법안이 발의됐죠.

소년범들, 늘어났고 잔인하다?…통계 보면 ‘갸웃’

우선 대법원이 발간한 ‘2022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법원에서 보호처분을 받은 이들은 총 2만2144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가운데 지난 2020년 보호처분 결정을 받은 촉법소년(만 10~13세)이 전년보다 700명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4000명 이상이 보호 처분을 받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죠. 그러나 범위를 좀 더 넓혀 만 10살 이상, 19살 미만의 소년보호사건으로 보면 3만8590건으로 2011년 4만6497건에 비해 조금 줄었습니다.

다른 통계를 보더라도 ‘흉포한 소년범이 늘었냐’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경찰청의 ‘최근 5년간 촉법소년 소년부 송치 현황 자료’를 보면 절도 범죄를 제외한 강력범죄(살인‧강도‧폭력‧성범죄)는 2017년 1750명, 2018년 1391명, 2019년 2545명, 2020년 421명, 2021년 3014명으로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전 국가의 법률 기틀을 닦던 1953년, 국회 속기록에서도 등장합니다. “현재 피해를 주고 있는 쓰리(소매치기) 관계는 대개 열두살, 열세살, 열네살이 주가 되고 있다”며 “13세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백남식 의원)이 발언했죠. 어쩌면 시대를 막론하고 공유하는 고민인 셈입니다.

한동훈 “이제는 건설적 답 내야”…‘회복적 사법’ 이란

현행법상 촉법소년은 범행 당시 연령이 ‘만 10세~만 14세 미만’인 청소년을 말합니다. 형사 미성년자인 이들은 범죄를 저질러도 소년법에 따라 형사처벌 대신 사회봉사·보호관찰·소년원 송치 등 보호처분을 받게 되죠.

법무부는 이미 지난 6월 촉법소년 연령 기준 현실화 태스크포스(TF)를 구축해 법 개정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5일 국회에서 촉법소년 범죄에 대해 “분명히 흉포화된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여야 모두가 법안을 낸 상황에서는 건설적으로 답을 낼 때가 됐다”고 발언했습니다.

이와 관련 ‘회복적 사법’이란 개념도 거론됩니다. 가해자를 징벌하고 엄벌하는 쪽이 아닌 당사자(피해자)가 원하는 상태로의 회복이나 보상이 이루어지게 하거나 관계의 회복이 이루어지도록 돕는 관점입니다.

‘소년범의 대부’ ‘호통 판사’로 유명한 천종호 대구지법 부장판사는 2010년부터 8년간 소년재판을 맡아오면서 1만2000여 명의 소년범들을 재판했다. 중앙판사

‘소년범의 대부’ ‘호통 판사’로 유명한 천종호 대구지법 부장판사는 2010년부터 8년간 소년재판을 맡아오면서 1만2000여 명의 소년범들을 재판했다. 중앙판사

‘소년범의 대부’, ‘호통 판사’로 불리는 천종호 대구지법 부장판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 연령을 하향하는 것은 촉법소년 문제에 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는데요. 그는 언론 인터뷰나 자신의 칼럼 등에서 ‘회복적 사법’을 여러 번 언급했습니다.

서울소년원장을 지낸 한영선 경기대 교수도 지난 3월 촉법소년 관련 국회 토론회에서 “피해자의 실질적 회복과 가해자가 진심으로 반성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회복적 사법’을 제안했습니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이에 대해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만13살로 낮추면 만12살 범죄자는 어떻게 처벌하냐”며 “결국은 그 너머의 복합적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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