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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부와 만나라" 그 보살은 형부였다…처제에 반해 아내 살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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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제와 연인관계로 발전하고자 사실혼 관계이던 아내를 살해한 40대 남성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평소 보살 행세를 하며 아내를 가스라이팅(심리 지배)해 온 정황도 드러났다.

전주지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이종문)는 지난달 29일 살인과 사체은닉 혐의 등으로 기소된 남성 A(43)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동시에 15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했다.

A씨는 지난 5월 18일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 있는 자택에서 사실혼 관계에 있던 40대 여성 B씨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와 B씨는 2019년 실내 골프장에서 알게 된 후 교제를 시작했고 곧 동거하게 됐다. 이듬해부터 A씨는 보살을 믿는 B씨에게 ‘용한 보살’을 소개한 후 자신이 원하는대로 B씨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B씨는 보살이 자신과 주변 사람을 뛔뚫어보자 영적 능력이 뛰어나다고 믿고 자주 연락을 주고 받았으며, 보살이 시키는대로 행동했다. 그 보살이 A씨고, 보살의 연락처는 A씨의 또 다른 내연녀 명의 휴대전화였다는 건 까맣게 모른 채.

보살은 B씨에게 “A씨가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다”거나 “어머니가 병환이 심각해 곧 사망할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되면 A씨가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을 거다”고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신체 여러 곳에 ‘타투’를 해야 하고, 얼굴과 몸을 성형수술해야 한다”고 지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B씨가 특정 행동을 하도록 유도할 때도 보살 행세를 했다.

B씨는 보살의 정체를 모른 채 2년 간 A씨에게 조종당하며 살았다. 그러던 중 지난해 11월, B씨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평소 연락이 뜸했던 가족들과 장례식장에서 만나게 됐다.

장례식장에 참석한 A씨도 이후 B씨 가족들과 가깝게 지냈는데, 이 과정에서 A씨는 B씨의 둘째 여동생 C씨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A씨는 C씨가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고, 모친의 사망으로 심신이 매우 지친 상태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또 다시 보살로 위장해 C씨에게 접근했다.

A씨는 보살인 척 하며 C씨에게 “형부님 얼굴을 많이 보시고 가까이 하십시오” “기대고 의지하십시오” “스킨십을 많이 하십시오”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내년 2월28일까지 그 누구와도 성관계를 맺으시면 안 됩니다”라며 다른 남성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A씨는 B씨만 사라지면 C씨와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에 살해를 결심하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사건 발생 이틀 전인 5월 16일, 다시 보살 연기를 한 A씨는 B씨에게 “오늘 휴대전화를 바꾸고 큰 가방 두 개를 사라” “그 가방에 엄청난 금액이 들어갈 것이다” “집이 구해지면 왕비님(B씨)께서 깊은 잠에 빠져 부처님과 어머님을 보시게 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 말을 믿은 B씨는 자신이 살해당할 곳이라는 사실을 상상도 못한 채 A씨와 함께 집을 구하고 자신의 사체 은닉에 사용될 캐리어를 구매했다. 다음 날 A씨는 B씨가 도주한 척 꾸미기 위해 졸피신정이 포함된 약을 처방받고 B씨 소유의 차를 팔았다.

사건 당일인 5월 18일, A씨는 새로 구한 집에서 B씨에게 수면제를 탄 음료를 마시게 했다. B씨가 잠자리에 들려고 하자 A씨는 B씨의 목을 졸라 그를 살해했다. B씨는 수면제 탓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이어 A씨는 B씨의 사체를 이불에 감싼 뒤 B씨가 산 캐리어 가방에 넣었다. 이후 B씨가 사라진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리기 위해 B씨인 척 C씨와 그 가족들에게 “내가 형부를 배신했다” 등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C씨와 남녀관계로 발전하기 위해 “네가 형부랑 더 맞아” 등의 메시지를 보내는가 하면 또다시 보살 행세를 하며 자신과의 만남을 유도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C씨는 언니에 대한 배신감과 걱정, 죄책감에 극단적인 선택까지 시도했다.

하지만 A씨의 엽기적인 행각은 결국 세상에 드러났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B씨 가족은 사흘 뒤 경찰에 B씨의 실종 신고를 했고, 경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다.

“B씨가 내 돈을 갖고 도망갔다”며 범행을 부인하던 A씨는 증거가 드러나자 재판에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 수법은 충분히 잔혹한 데다 범행 이후 태도는 기만적이고 악랄하기까지 하다. 피고인은 미성년자간음죄 등으로 징역 8월, 특수강도죄 등으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은 것을 포함해 여러 차례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고, 피고인에 대한 심리 분석 결과 반사회적 성향이 관찰되고 폭력 범죄의 재범 위험성도 높다고 판단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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