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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개방압력 “점입가경”/제2차 한미금융정책회의 결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위협적 언사로 「보복」시사/과소비 억제관련 고위당국 문서확인도 요구/광범위한 압력 예고하는 사전 정비작업인 듯
한국에 대한 미국의 개방요구가 상궤를 벗어나고 있는 느낌이다.
협상과정에서 요구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라해도 도가 지나칠 경우 감정적 반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지난 9∼10일 열린 제2차 한미 금융정책회의는 한국측 한 참석자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의 한국경제정책 「청문회」같은 분위기에서 진행됐고 미국측의 위협적 언사는 회의를 마친후 미측대표인 찰스 댈라라 재무차관보가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도 계속됐다.
이번 회의에 대한 미국측의 총평은 「실망과 우려」였고 이에 따른 「보복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다.
한국정부에 대한 불만의 백미(?)는 논제와는 거리가 먼 과소비억제운동에 관한 것이었다.
댈라라 차관보는 『한국의 재무부가 이번 회의에서 과소비억제운동이 수입억제를 뜻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했으나 「보다 고위당국에서 문서로」이를 재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융정책회의(Financial Policy Talk)에서 과소비억제운동이 제기된 것 자체도 합당치 못한터에 「재무부 이상 고위당국의 문서상 확인」을 요청한 것은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
얼마전 주한 미 상공회의소가 이 문제를 제기한 데 이어 공식회의차 온 미국고위관리가 같은 문제에 보다 강력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것은 한미경제관계에 있어 미국이 보다 광범위한 압력을 가하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갖게 한다.
미국은 이번 회의에서 한국에 이미 진출해 있거나 앞으로 진출할 기업에 대한 내국인대우를 강력히 요구했다.
회의결과 미측은 몇가지 분야에서 합의가 이뤄졌지만 ▲원화조달 문제 ▲지점증설 문제 ▲외환규제 철폐 등의 요구에 아무런 확답을 받지 못했고 증권산업 및 자본시장개방에 대해서는 ▲현지법인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증권산업 참여 허용 ▲국내 증권사와 동등한 업무영역 ▲증권거래소의 회원권 부여 등의 요구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결과를 미측은 「개방노력이 보이지 않고 앞으로 내국인과 동등대우를 해주지 않겠다는 태도」라고 규정하고 나섰다.
미국정부는 오는 12월1일까지 한국의 외환정책과 내국인대우 분야에 관한 보고서를 의회에 내도록 돼 있다.
댈라라 차관보는 현재 미 의회가 내국인 대우를 하지 않는 국가에 보복을 할 수 있는 「리글법안」을 심의중이며 통과가 거의 확실하다고 말하고 『한국이 금융시장개방에 뚜렷한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 법안에 의한 보복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게다가 미 재무부가 당초 이 법안에 반대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찬성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여 압력의 강도를 높이는 솜씨도 잃지 않았다.
미국이 제시한 차별대우 중 제도적으로 가시적인 것은 신탁업 전면허용,갑기금증액,ATM(무인금전출납기)의 국내은행과 동등조건의 실질허용 등으로 거의 해소됐다.
문제는 제도적이 아닌 금융관행으로 이뤄지는 것들이다.
미국측은 은행공동전산망 가입,콜시장에서의 차별철폐 등 기존 요구에 증권산업개방과 관련해 증권거래소 회원권 부여를 강력히 요구했고,이에 대해 한국측은 이는 은행 또는 증권사간의 자율적인 회원제 민간기구에 관련된 사항이므로 간여할 성질의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한국의 금융산업이 철저히 정부의 손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고 보는 미측으로서는 제도적 동등대우 뿐 아니라 실질적이고 결과적인 동등대우를 정부가 나서서 해달라는 것인데 이 또한 아전인수격인 해석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여하튼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종결단계에 와 있고 곧 쌍무협상이 줄을 이을 시점에서 미국측이 보여준 경색된 자세는 앞으로의 길이 더욱 험난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박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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