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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서 가장 때깔 고운 단풍…이 흘림골 비경, 7년 기다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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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청봉과 양양 송전해변이 보이는 등선대는 남설악에서 가장 전망이 빼어난 곳으로 꼽힌다. 2015년 낙석 사고가 벌어진 뒤 흘림골 탐방로가 폐쇄됐던 탓에 7년간 오를 수 없었다. 이달 10일 첫눈이 내린 대청봉이 구름에 덮여 있다.

대청봉과 양양 송전해변이 보이는 등선대는 남설악에서 가장 전망이 빼어난 곳으로 꼽힌다. 2015년 낙석 사고가 벌어진 뒤 흘림골 탐방로가 폐쇄됐던 탓에 7년간 오를 수 없었다. 이달 10일 첫눈이 내린 대청봉이 구름에 덮여 있다.

"몇 주 뒤면 동네 공원 단풍도 멋질 텐데 굳이 지금 설악산까지?"
벌써 단풍 산행에 나서는 산꾼이 유난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데 올해는 다르다. 설악산 흘림골 탐방로가 7년 만에 열려서다. 흘림골은 대청봉 코스에 비하면 험하지 않으면서도 풍경은 뒤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설악산에서 가장 때깔 고운 단풍도 볼 수 있다. 지난 10, 11일 흘림골을 가봤다.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으로 마스크 벗고 단풍 산행을 할 수 있어서인지 산꾼들 표정이 유난히 밝았다.

흘림골의 기구한 사연

이만큼 팔자가 사나운 계곡이 있을까. 1970~80년대만 해도 흘림골이 있는 설악산 오색지구는 신혼여행 일번지이자 수학여행 명소였다. 수려한 산세,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와 폭포를 구경하고 오색약수를 마신 뒤 온천을 즐기는 코스가 인기였다. 그냥 유원지로 놀러 가는 분위기였다. 지금처럼 환경을 생각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사방에 쓰레기가 나뒹굴었고 탐방로 훼손도 심각했다. 과잉 관광의 폐해였다. 결국 국립공원공단은 1985년 흘림골 자연휴식년제를 선언했고, 무려 20년 뒤인 2004년 9월 개방했다.

국립공원공단은 흘림골 폐쇄 기간 탐방로를 정비하고 안전 터널, 낙석 방지망 등을 설치했다.

국립공원공단은 흘림골 폐쇄 기간 탐방로를 정비하고 안전 터널, 낙석 방지망 등을 설치했다.

20년 만에 열린 흘림골은 신혼부부 대신 등산 매니어를 매혹했다. 사람 손길 닿지 않은 계곡은 옛 모습을 회복했다. 11년 뒤인 2015년 8월에는 예기치 않은 사태가 벌어졌다. 17톤 중량의 바위가 떨어져 등산객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다시 탐방로를 걸어 잠갔고, 7년만인 지난달 8일 재개방했다.

단풍이 조금씩 내려오고 있는 흘림골 저지대의 모습. 데크로드를 곳곳에 설치해 걷기 편해졌다.

단풍이 조금씩 내려오고 있는 흘림골 저지대의 모습. 데크로드를 곳곳에 설치해 걷기 편해졌다.

계곡 폐쇄 기간 국립공원공단은 위험 구간에 우회로를 만들고 안전 터널, 낙석 방지망 등을 곳곳에 설치했다. 사고 발생 전, 가장 붐빌 때 하루 1만3000명이 찾았는데 이번에 재개방하면서 하루 5000명으로 인원을 제한했다. 전국 국립공원 최초로 시간제 예약 시스템도 도입했다. 그렇다고 낙석 위험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다.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 정춘호 탐방시설과장의 설명이다.

"설악산은 사람 나이로 치면 70세쯤 됩니다. 오래된 협곡과 암반지형이어서 어디서든 낙석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최대한 안전시설을 보강했지만, 탐방객 스스로 안전에 유의해야 합니다."

여심폭포 안내문이 바뀐 이유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에 첫눈이 내린 10일, 흘림골을 찾았다. 한글날 대체공휴일이었지만 궂은 날씨 탓에 탐방객은 많지 않았다. 흘림골탐방지원센터를 지나자마자 새로 설치한 나무 계단이 나왔고 "낙석 발생 위험" 경보음이 울렸다. 흘림골에만 낙석 위험 지점이 22곳인데, 그중 다섯 곳에서 안내 방송이 나온다.

흘림골 초입에 있는 여심폭포. 1970~80년대 신혼부부의 필수 방문 코스였다.

흘림골 초입에 있는 여심폭포. 1970~80년대 신혼부부의 필수 방문 코스였다.

20분쯤 걸으니 여심폭포가 나왔다. 과거 신혼부부가 이 폭포 앞에서 아들 낳기를 빌었단다. 독특한 모양 때문에 여성, 모성과 연관 지었다. 그래서 이름도 여심(女深)이다. 2015년 탐방로 폐쇄 전까지만 해도 "여성의 깊은 곳을 연상케 한다"는 민망한 안내문이 있었는데 그 문구는 사라졌다. 새 안내판에는 "바위와 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여심폭포라고 한다"고 쓰여 있다. 여성 혐오로 보일 만한 표현이어서 바꿨을 텐데 문장이 좀 어색하다.

 등선대에서 바라본 서부능선과 한계령. 설악산 고지대는 제법 단풍이 들었다.

등선대에서 바라본 서부능선과 한계령. 설악산 고지대는 제법 단풍이 들었다.

폭포를 지나자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산행을 시작한 지 약 40분 만에 등선대에 닿았다. 마지막 계단에 발을 딛고 돌아서자 기막힌 장관이 나타났다. 희끗희끗 눈 덮인 대청봉, 울긋불긋 단풍 든 한계령과 서북능선, 짙푸른 양양 송전해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똑바로 서 있기 힘들 만큼 강풍이 불었지만, 탐방객 대부분이 하산을 서두르지 않았다. 7년 만에 열린 비경을 한참 눈에 담았다.

탐방객 이경수(56)씨는 "몇 해 전 흘림골 대체 탐방로였던 만경대를 갔다가 실망했다. 등선대 전망이 훨씬 압도적"이라며 "다음 주에 한 번 더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흘림골을 개방하면서 만경대 탐방로는 폐쇄했다.

10월 20일께 단풍 절정 예상

등선대에서 내려가는 길. 듬성듬성 붉게 물든 단풍나무가 보였다.

등선대에서 내려가는 길. 듬성듬성 붉게 물든 단풍나무가 보였다.

등선대에서 용소폭포로 가는 길은 완만한 내리막길이었다. 등선대처럼 입이 쩍 벌어지는 장관은 없어도 다채로운 풍광이 펼쳐졌다. 가느다란 물줄기가 길게 떨어지는 등선폭포, 탐방로와 나란히 이어지며 세찬 물소리를 내는 십이폭포와 옥빛 용소폭포, 곳곳에서 툭툭 나타나는 기암괴석. 새빨간 단풍이 어우러졌다면 더 기막혔을 테다. 기상청은 이달 20일께 설악산 단풍 절정을 예상했다. 가벼운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주전골, 그러니까 남설악 저지대에서도 단풍을 볼 수 있는 만산홍엽(滿山紅葉)이 일주일 남은 셈이다.

흘림골 끄트머리에 있는 용소폭포. 그림자가 없는 오후에 가야 옥빛으로 반짝이는 물을 볼 수 있다.

흘림골 끄트머리에 있는 용소폭포. 그림자가 없는 오후에 가야 옥빛으로 반짝이는 물을 볼 수 있다.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에 따르면, 이달 23일까지 주말 예약은 거의 마감됐다. 마지막 주 주말은 12일 현재 예약이 가능하다. 단풍철은 평일도 북새통이지만, 그나마 덜 번잡하게 산행을 즐기고 싶다면 오전 시간을 피하는 게 상책이다. 오전 9~11시, 전국 각지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온 단체 산악회가 몰린다.

흘림골 탐방지원센터에서 용소폭포 탐방지원센터까지는 3.1km 길이로 약 3시간, 용소폭포에서 오색약수까지는 2.7km 길이로 약 1시간 걸린다. 흘림골 쪽에서 출발하길 권한다. 일부 산행객이 용소폭포에서 등선대 방향으로 걷는데 오르막길이 길게 이어져 힘들고 탐방객이 많을 때는 피차 불편할 수 있다.

여행정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흘림골 탐방로는 예약 필수다.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보름 단위로 예약을 받는다. 13일 현재 10일 31일까지 예약할 수 있고, 11월 예약은 이달 17일부터 가능하다. 예약자 1명이 동행 10명까지 예약할 수 있다. 용소폭포부터 오색약수까지, 주전골 탐방로는 예약하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다. 설악산은 기온 변화가 심하고 바람도 세다. 방풍·보온 재킷, 장갑을 챙기는 게 좋다. 흘림골 탐방로는 입구와 출구가 다르다. 오색지구에서 택시를 타고 흘림골탐방지원센터까지 이동해 걷길 권한다. 택시비는 1만5000원 정액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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