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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에는 핵' 전술핵 재배치론 불붙는다...주변국 반발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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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이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함(CVN 76)'이 동원된 한미 연합훈련에 대응해 포병과 비행대들의 합동타격훈련을 실시했다. 노동신문은 10일 "조선인민군 전선 장거리포병구분대들과 공군 비행대들의 화력 타격 훈련이 10월6일과 8일에 진행되었다"라고 전했다. 노동신문=뉴스1

북한이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함(CVN 76)'이 동원된 한미 연합훈련에 대응해 포병과 비행대들의 합동타격훈련을 실시했다. 노동신문은 10일 "조선인민군 전선 장거리포병구분대들과 공군 비행대들의 화력 타격 훈련이 10월6일과 8일에 진행되었다"라고 전했다.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골화한 무차별 핵위협이 결국 한반도내 ‘전술핵 재배치론’에 불을 붙였다. 이동식발사차량(TEL)과 잠수함, 열차를 활용한 미사일 발사에 이어 저수지에서까지 전술핵을 장착할 수 있는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북한이 핵 임계치인 ‘레드라인’을 넘으면서 ‘핵은 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논의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1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포함해 핵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전술핵 재배치론이 등장한 배경은 북한의 핵공격에 대비해 설계된 현재의 선제 타격(킬체인),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대량응징보복(KMPR) 등 재래식 무기를 활용한 ‘3축 체계’로는 고도화된 북한의 핵 능력을 억제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남한 전지역의 지휘체계와 항만, 공항 등 주요 시설을 목표로 한 사실상의 ‘선제 전술핵 공격’ 훈련을 공개 지휘하면서 외교가에선 이미 “유사시 북한의 대남 핵 공격은 말 뿐인 위협이 아니라 실질적 위협”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표적인 비대칭 전력인 핵을 억제하는 실질적 수단은 핵밖에 없는 만큼 전술핵 재배치도 카드에 포함시켜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정원식 국무총리가 1991년 2월 19일 총리집무실에서 김종군 대통령외교 안보수석비서관과, 임동원 통일원차관등 남북고위습회담대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문에 서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정원식 국무총리가 1991년 2월 19일 총리집무실에서 김종군 대통령외교 안보수석비서관과, 임동원 통일원차관등 남북고위습회담대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문에 서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기존의 방법으로는 빈틈이 생길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북핵 능력이 고도화된만큼 기존의 북핵 대응 선택지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의 핵을 최대한으로 억제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전술핵 재배치는 검토 가능한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은 한반도에 전술핵을 보유했던 적이 있다. 미국은 1958년부터 주한미군 기지에 전술핵을 배치했고, 1967년엔 950기로 정점을 찍었다. 그러다 냉전이 끝나면서 한반도내 전술핵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1991년 주한미군의 전술핵은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그해 12월 18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이 순간 대한민국에는 단 하나의 핵무기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공식화했다.

전술핵 재배치가 현실화되기 위해선 미국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한국은 핵 보유가 불가능한 만큼 미군 전술핵을 들여와야 한다. 하지만 그간 역대 미국 행정부는 전술핵 재배치에 극히 신중했다. 미국 입장에선 한반도만 아니라 국제 사회 전체를 염두에 두고 전술핵 재배치를 판단해야 한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전술핵이 재배치되면 핵확산금지조약(NPT)상 논쟁을 초래할 수 있다”며 “전술핵은 주한 미군기지 내에서 미군이 운용하지만, 비핵국인 한국에 핵무기가 배치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다수 비핵 국가들이 우려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전술핵 재배치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필요나 국익에 따라 결정되는 사안”이라며 “정치적 판단에 따라 전술핵 배치가 추진되더라도 미 의회에서 필요성과 비용 등의 문제를 면밀히 검토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미국 공군의 B-52 전략폭격기. 지난 2월 영국 페어포드 공군기지에 도착한 모습. 영국 국방부. 로이터. 연합뉴스.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미국 공군의 B-52 전략폭격기. 지난 2월 영국 페어포드 공군기지에 도착한 모습. 영국 국방부. 로이터. 연합뉴스.

30년 넘게 유지해온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미칠 영향도 변수다. 북한은 스스로 ‘핵보유국’임을 주장하며 이미 공동선언을 파기했다. 그럼에도 전술핵 재배치를 명분 삼아 북한이 핵 폐기를 거부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한국은 비핵화 협상에 나설 때마다 1991년 비핵화공동선언을 강조해왔다”며 “만약 한국이 이를 공식 파기할 경우 북한에 비핵화를 주장할 근거가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현실적 난제에도 불구하고 북핵의 심각성이 임계점을 넘고 있는 만큼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조치에 나서야만 한다는 위기감도 커지는 게 사실이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작아질수록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더 많이 등장하게 된다”며 “핵 비확산 기조를 가진 미국이 동의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이런 논의가 이뤄지는 자체가 북핵 위협의 심각성을 일깨워주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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