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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장 이어 '비핵화 선언 파기' 꺼냈다…北에 강수 두는 與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의 핵 위협이 본격화되자 여당에서 ‘대북 강경론’이 거세게 분출하고 있다.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반도체 인력양성의 대전환! 강원도가 시작합니다' 토론회에서 축사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반도체 인력양성의 대전환! 강원도가 시작합니다' 토론회에서 축사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2일 오전 페이스북에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파기돼야 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1991년 12월 남북이 합의한 선언문으로, 핵무기의 시험ㆍ제조ㆍ생산ㆍ접수ㆍ보유ㆍ저장ㆍ배비(배치하여 설비)ㆍ사용의 금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정 위원장은 “(선언)30여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플로토늄, 우라늄 핵폭탄을 핵무기고에 쟁여놓고, 대륙간 탄도미사일까지 보유했다. 전세계에 핵ㆍ미사일을 판매하는 ‘핵무기 백화점’이 됐다”며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북한에 의해 휴지조각이 됐다”고 주장했다.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일에 전술핵 운용부대를 공개하며 대한민국의 항구 등이 타격 목표라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우리만 30여년 전의 남북간 비핵화 공동선언에 스스로 손발을 묶어놓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제 결단의 순간이 왔다.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문재인 정부 시절 체결된 9ㆍ19 남북 군사합의는 물론 1991년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역시 파기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ㆍ여당 내부에선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이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로 사실상 사문화 됐다고 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전임 정부에서 사용하던 ‘한반도 비핵화’란 표현 대신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정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우리만 전술핵을 다 물리치고 핵 없는 나라가 됐지만 북한은 정반대로 핵을 개발하고 핵무장을 완성했다. 더 이상 그 선언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며 “당연히 폐기돼야 마땅하고, 이미 폐기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국민의힘에선 최근 전술핵 재배치, 나토(NATO)식 핵공유나 자체 핵무장 등의 주장도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전술핵 재배치는 한반도에서 철수한 전술핵을 주한미군에 다시 들여오는 방안이고, 나토식 핵공유는 한ㆍ미 양국이 핵무기 공유협정을 체결해 유사시 전술핵을 우리 공군 전투기에 실어서 투하하는 방안이다. 5일 홍준표 대구시장이 페이스북에 “대북 핵전략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라며 “철저한 군사 균형을 통한 무장 평화”를 주장한 데 이어, 유승민 전 의원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핵공유, 전술핵 재배치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기 전당대회 후보로 거론되는 나경원 전 의원은 11일 페이스북에서 “이 시점에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할 이야기는 한미동맹, 한ㆍ미ㆍ일 안보협력, 총체적 확장억제 만으로 과연 북한의 핵 공격을 억지할 수 있는가다. 전술핵 재배치, 나토(NATO)식 핵공유, 자체 핵무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들을 테이블 위에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여도 모자랄 판”이라고 말했다. 김기현 의원도 12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도 우리를 지키기 위한 자위적 수단을 강구해야 된다. 핵무장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가지고 가야 된다”고 주장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도 새로운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고 있다. 1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기호 의원은 “북한이 핵무력 법제화를 하고 훈련을 했다고까지 얘기하는데 우리가 전술핵 재배치 문제를 검토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고 말했다. 성일종 의원도 사견을 전제로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이에 대한 대비책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국민의힘에서 분출하는 대북강경론이 최근 북한의 잦은 미사일 도발에 대응하는 한편 한반도 비핵화를 내세워 평화 협상을 지속했던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를 위한 전략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당내에선 이 같은 발언들이 대통령실과의 교감 속에서 나온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11일 윤 대통령은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에서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우리나라와 미국 조야의 여러 의견을 잘 경청하고 따져보고 있다”고 답했는데, 전술핵 재배치를 배제한다고 했던 과거 입장과 달리 가능성을 다소 열어둔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이 때문에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여당 의원들이 선제적으로 전술핵 재배치 주장을 펼치면서 이에 대한 여론의 움직임을 살피는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다만 전술핵 재배치 등은 엄청난 국제적 파장을 불러올 사안인 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7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비핵화선언은 지켜야하고, 무역국가로서 NPT(핵확산금지조약)를 어기면 해악이 이익보다 너무 크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윤상현 의원도 12일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을 준수할 의무가 사라지고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비핵화 공동선언을 파기하자는 건 북한 비핵화를 주장하는 우리 명분을 약하게 만들고, 국제사회에 무책임하게 비춰질 수 있다. 한미간 충분한 대화와 협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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