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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경유지 추가, 누구 맘대로"...경남도-버스 회사 소송전 결말은 [그법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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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법알 사건번호 95] '터미널 경유' 둘러싼 경남도-버스 회사 간 법적 다툼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연합뉴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연합뉴스

지난 2019년, 경상남도는 두 개의 시외버스 회사에 노선을 바꾸도록 주문합니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출발해 창원시 진해구 용원터미널까지 가는 노선인데, 중간에 마산 남부시외버스터미널을 들르라고 한 거죠. 이러면 두 개 회사가 합쳐 하루에 9번 마산 남부 터미널을 경유하게 됩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마산 남부터미널 인근 인구수는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해양신도시가 들어설 계획인데 서울을 오가는 시외버스는 하루에 3번뿐이었습니다. 그나마 인접한 마산 고속버스터미널까지는 차로 20분을 더 가야 하고, 마산역도 차로 25분 거리입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겠죠. 그래서 2015년부터 마산 남부터미널 인근 주민들은 서울 행 버스 운행 횟수를 늘려달라는 민원을 제기해왔다고 합니다.

이에 주민들의 바람대로 하루에 12번으로 버스를 늘렸는데, 경상남도는 소송전과 직면하고 맙니다. 문제를 제기한 쪽은 다른 고속버스 회사 두 곳. 서울 남부터미널이 아닌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마산 고속버스터미널까지 노선을 운영하는 곳들입니다. 두 회사가 이 노선을 운행하는 횟수를 합치면 하루 64회입니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마산 고속버스터미널, 서울 남부터미널~마산 남부터미널. 각각 노선은 다르지만 어쨌든 서울~마산 노선이 늘어난 셈이므로 기존 회사들은 손해를 입었겠죠. 마산 남부 주민들도 기존에는 마산 고속버스터미널을 많이 이용해야 했을 테니까요.

이 회사들은 경상남도의 '여객 자동차 운송 사업 계획 변경 개선 명령'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냅니다. 출발지인 서울 고속버스터미널과 서울 남부터미널이 불과 2.83km 떨어져 있는 점, 또 도착지인 마산 고속버스터미널과 마산 남부터미널이 6.29km 떨어진 점 등을 들었죠. 마산 일대에는 수요보다 충분한 수송력이 이미 공급된 상태라고도 했습니다.

관련 법령은?

경상남도가 시외버스 회사들에 경유지를 추가하라고 한 법적 근거는 무엇이었을까요?

여객자동차법 제23조 제1항은 '국토교통부 장관 또는 시·도지사는 여객을 원활히 운송하고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운송사업자에게 사업계획을 변경하도록 명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노선 연장·단축·변경, 요금, 운송시설 개선 등도 명할 수 있게 돼 있죠.

법원 판단은?

1심과 2심은 서로 다른 결론을 냈습니다. 쟁점은 도청의 재량권을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1심 재판부는 "마산 남부 지역 인구수 증가에 따른 서울 행 수요 증대에 대처하고, 주민의 교통 편의를 증진해 마산 남부와 서울 간 접근성을 제고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했습니다. 고속버스 회사들이 입게 될 영업이익 감소 등의 사익에 비해 이런 공익이 절대 작지 않다는 겁니다. 경상남도의 손을 들어준 것이죠.

1심 재판부는 또 "마산 남부터미널에서 서울로 운행하는 시외버스 운행 횟수는 1일 12회가 되었는데, 이는 1시간당 1대에도 못 미치는 것이라 운송수요 등에 비춰볼 때 과다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고속버스 회사들과 시외버스 회사들의 출발·도착 터미널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노선 일부가 겹친다고 고객층이 동일하다고 볼 수 없다"라고도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고속버스 회사들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고 봤습니다. 경남도청이 개선 명령을 내릴 때는 목적과 경위, 관련 사업자들의 수익변동에 미치는 영향 등 공익과 사익을 충분히 비교 형량했어야 한다는 겁니다. "단순히 일부 지역 주민들의 교통편의 증진이 기대된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사업개선 명령을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경상남도는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꾸준히 제기됐다고 주장했지만, 막상 민원 건수를 따져보니 4년간 10건에 불과했다고 하고요. 해양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소송 수요가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재판부는 경상남도가 이를 구체적으로 검토한 것은 없다고 판단했죠. KTX 개통으로 인해 버스 수송수요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했고요.

재판부는 또 마산 남부터미널이 경유지로 추가되면 종점인 진해 지역 주민들이 불편을 겪지 않는지 살폈습니다. 노선이 돌아가게 되니 이들은 15분~20분 정도 버스를 더 타야 하게 됐거든요. 경상남도가 충분히 해결 방안을 검토하고 이익형량을 해야 했는데, 관련 자료는 없다는 겁니다.

대법원. 중앙포토

대법원. 중앙포토

대법원 판단은 어땠을까요?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이 2심 판결을 파기해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다고 12일 밝혔습니다. 대법원은 경상남도가 이익형량 과정을 충분히 거쳤다고 봤습니다.

경상남도는 이전에도 비슷한 소송을 당한 적이 있거든요. 지난 2016년, 서울 남부터미널과 경남 함안의 군북버스터미널을 오가는 버스 노선에 마산 남부터미널을 경유하도록 개선 명령을 내렸을 때였습니다. 고속버스 회사들은 이때도 소송을 냈는데, 당시에 경상북도지사와 협의하지 않은 점이 드러나 경상남도가 일부 패소했습니다.

대법원은 이 소송을 끝낸 경상남도가 이번 처분을 내릴 때는 고속버스 회사들의 운행현황과 수익에 대해 충분히 고려했을 것으로 봤습니다. 또 마산 남부 지역의 소송 수요가 늘어나는 것을 고려해 결정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진해 주민들의 불편에 대해서는 어떻게 봤을까요? 대법원은 "운행 거리와 시간이 다소 늘어나게 되는 등 교통상 불편이 발생할 수 있으나, 이 처분으로 증대되는 마산 남부 주민들의 교통 편의에 비하면 참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경상남도가 구체적으로 조사하지 않더라도 쉽게 예상해 고려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도 했죠.

진해 주민들이 겪을 불편함이나 고속버스 회사들의 손해 등을 다 고려하더라도, 경상남도가 이익형량을 한 과정에 정당성이나 객관성이 결여됐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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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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