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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안중근의 덤덤함, 봉준호가 꽂힌 SF…연휴 순삭, 소설 5권 [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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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추석 연휴에 가족과 모이든, 혼자서 보내든 휴식과 충전의 시간은 필요하다. 그런 시간에 읽을만한, 최근 나온 소설책 다섯 권을 소개한다.

귀성·귀경길 읽을 만한 소설 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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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지음
문학동네

'기염을 토하는' 익숙한 김훈의 귀환이다. 현대물보다 역사물(그의 역사소설이 현대 배경 소설보다 더 사랑받는다), 출판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한국인이라면 잊을 수 없는 안중근의 1909년 하얼빈 거사, 그 이후 신문과 공판 과정을 다뤘지만 정작 출간 직후 인터뷰에서 "역사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청년 안중근, 거창한 대의명분이나 실제적인 거사 준비 없이 그야말로 가볍게 세계의 야만성에 맞섰던 청년의 에너지를 그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단행본(『안중근 전쟁, 끝나지 않았다』), 안중근 자료집 등을 고스란히 인용해 복원한 일본 판검사들과의 문답 공방도 또 하나의 소설 백미다. 아예 두려움이라는 감정 항목이 마음에서 삭제된 것 같은, 시종일관 당당했던 법정의 안중근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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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사 1·2

장강명 지음

은행나무

재미와 교양을 겸비한 장편소설이다. 다재다능한 소설가 장강명이 범죄소설 혹은 경찰소설의 외피 안에 한국 사회의 병적인 풍경, 그 기원에 대한 탐구라는 묵직한 주제를 담았다.

치명적인 미모의 연세대생이 칼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된다. 정액까지 검출됐지만 결국 미제로 남는다. 22년 전 신촌 여대생 살인 사건이다.

2022년 현시점에서 경찰의 범인 색출이 1·2권 합쳐 800쪽이 넘는 소설을 끌고 가는 동력원인데, 장강명은 범인 신분은 고난도 퍼즐로 남겨 놓은 채 그의 내면을 일찌감치 공개한다. 범인은 이를테면 '믿을 수 없는 화자'다. 현대사회를 '사실-상상의 복합체'로 진단하고, 거기서 각종 문제가 생겨났다고 믿는다. 그래서 살인은 불가피했고, 처벌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냉·온탕, 재미와 교양 사이를 셔틀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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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의 소설

정세랑 지음

안온북스

짧다. '미니픽션'이라고도, 옛말로 '엽편소설'이라고도 하겠다. 작가 정세랑이 데뷔 초인 2011년부터 최근까지 쓴 짧은 소설들을 모았다.

주로 젊은 세대인 인물과 그 일상을 통해 문학계를 포함한 이 세상을 종종 신랄하게, 때론 경쾌하게 그린다. '아라'는 여러 작품의 주인공인데 같은 인물은 아닌 것 같다. 연애소설 못 쓰는 소설가일 때도, 미니멀리즘의 생활 방식을 고수하는 밀레니얼 세대일 때도 있다. 젊은 독자만 아니라 젊은 세대를 보는 내부의 시선이 궁금한 독자에게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소설마다 집필 계기 등 후일담이 있어 작가와 대화하는 기분도 든다. 문학잡지만 아니라 패션지, 미술 전시, 음악 프로젝트 등 다양한 원고 발주처와 교집합을 이루며 평소 하고 싶던 이야기를 써온 작가의 역량이 감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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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7
에드워드 애슈턴 지음
황금가지

이 SF소설 속 다른 사람과 달리 '나'에겐 '죽음'이 다른 의미다. 임무 수행 도중 숨지면, 매번 몸을 다시 만들어 기존에 업로드 한 기억을 다시 입힐 수 있기 때문.

한데 이번엔 죽는 줄 알았는데 무사 귀환한다. 문제는 그새 '나'(미키7)와 똑같은 '나'(미키8)가 벌써 만들어졌다는 것. 이런 '중복'은 식량도 부족한 이 행성 개척 기지에서 자원 낭비이자, 중대 과실로 여겨진다. 게다가 '나'는 과학자도, 조종사도 아니다. 불멸의 존재로 추앙받기는커녕 익스펜더블(expendable, 소모품)로 불린다.

복제인간 얘기인 만큼 '테세우스의 배'처럼 정체성과 관련한 철학적 모티브도 나오는데, 무엇보다 이야기 자체가 술술 잘 읽힌다. 과연 미키7과 미키8은 어떻게 될까. 비관은 이르다. 봉준호 감독이 만들 SF영화의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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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행복한 이유
그렉 이건 지음
허블

테드 창에 비견된다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SF작가 그렉 이건의 중·단편집. 한국에 기존에 번역된 그의 작품은 장편 데뷔작인 3부작 '주관적 우주론'의 1부 『쿼런틴』(1992)뿐이었던 터라 사실상 본격적 소개의 물꼬를 트는 책이라 할 수 있다.

표제작을 비롯해 특히 뇌와 관련해 최첨단 과학기술과 맞물려 도전적 상황을 경험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많다. 뇌의 작용과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관계, 물리적·신체적 상태와 인간의 본질의 관계 등에 대해 극단적이고도 예리한 문제를 제시하곤 한다. '100광년의 일기''무한한 암살자' 등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접근도 흥미롭다.

작품마다 유전공학, 뇌과학, 수학 등 뚜렷한 과학적 설명을 펼치는 것은 기본. SF영화 장면을 보는 듯 상상력을 자극하는 전개와 묘사도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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