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힌남노’의 최대 고비라 여겨진 6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이 머무른 용산 대통령실의 불은 밤새 꺼지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전날부터 집무실과 위기관리센터를 번갈아 오가며 24시간 철야 대기를 했다. 김대기 비서실장과 김성한 안보실장을 포함해 수석과 비서관들은 물론 대통령실의 모든 행정관도 함께 밤샘 근무를 했다. 윤 대통령은 5일 자정쯤 위기관리센터를 찾아 유희동 기상청장에게서 보고를 받은 뒤 6일 오전 5시에 태풍 상륙 상황을 점검했다.
윤 대통령은 힌남노가 오전 7시 10분 울산 앞바다로 빠져나가자 7시 25분에 다시 국가위기관리센터를 찾아 피해 상황을 보고받았다. 그 뒤 청록색 민방위복을 입고 지하1층 구내식당으로 내려와 직원들과 함께 줄을 서 아침을 먹었다. 식사 후에는 예고 없이 기자실을 찾아 “태풍 중심부가 울릉도와 독도 쪽으로 가고 있지만, 아직 사후 관리나 안전 대책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 상태”라며 즉석 질의응답을 했다. 윤 대통령은 “각 지자체와 소방청, 경찰이 모두 동원돼 주민 대피가 적시에 이뤄졌다”면서도 “오늘 내일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피해가 심각하면 현장에 가봐야 하지 않겠나”고 말했다. 이날 예정됐던 국무회의도 태풍 피해상황 점검과 추가 대비를 위해 7일로 연기했다. 다음은 기자단과의 일문일답
- “오늘 현장 방문 예정인지.”
- “상황을 챙겨본 뒤 피해가 심각하면 저와 국무총리, 행정안전부 장관이 현장을 가봐야 하지 않겠나. 일단 상황은 챙겨봐야 할 것 같다.”
- “지난달 집중호우보다 이번 태풍 때 강력 대응 기조를 세웠는데.”
- “지난 집중호우는 사실 예측불허였다. 강남 몇 개 지역에 비가 집중적으로 왔는데 그건 예측불허였고 이번은 괴물 태풍이라고 할 만큼 위력이 알려져 있었다. 어제 저녁부터 오늘 오전까지가 굉장히 중요한 상황이라고 다들 인식하고 있었다.”
- “취임 후 첫 24시간 대기인데 소감은.”
- “소감이 어디 있나. 중요한 상황이라 이제 가서 또 챙겨봐야 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에도 힌남노 피해상황 점검 회의를 주재하고 “이제는 신속한 복구의 시간”이라며 “가용행정력을 총동원해 복구와 피해 조사를 빠르게 진행하고 실효적 지원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이날 포항 아파트 주차장에서 7명이 실종된 사건과 관련해 “경위를 파악하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해병대의 고립된 시민 구조 활동에 대해선 해병 1사단장과 통화하며 격려를 보냈다.
이번 윤 대통령의 힌남노 대응은 지난달 집중호우 당시 사저에서 전화로 지시해 ‘폰트롤타워’ 논란이 일었던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윤 대통령은 주말부터 연이어 힌남노 관련 회의를 주재하고 지시를 내리며 선제적 대응과 선조치 후보고를 강조했다. 5일 저녁 한덕수 국무총리가 “군과 경찰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건의하자 윤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과 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인력 투입을 지시했다. 윤 대통령의 지시로 해병대 장갑차와 고무보트가 포항 피해 현장에 투입돼 시민을 구조했고 포스코 화재현장에도 진입했다.
‘사저 지시’ 논란 당시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새벽까지 호우 대응 지시를 내렸다”며 야당의 비판에 적극 반박했었다. 윤 대통령이 이날 언급했듯 “예측 불허의 상황이었다”는 해명도 나왔다. 하지만 내부적으론 “같은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추석을 앞두고 재난 대응에 빈틈이 있어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며 “지금 지지율에선 추가적인 논란을 감당할 여유가 없다”고 했다.
석재왕 건국대 안보재난관리학과 교수는 “윤 대통령에겐 지난달 집중호우가 일종의 학습효과로 작용한 것 같다”며 “여론의 질타를 받은 뒤 재난 대응에 있어 윤 대통령의 태도와 대응 방식 모두 나아졌다”고 평가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태풍 피해가 추석 민심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일단 차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