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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 피해, 2조 손해 준 '힌남노 1년'...포항 냉천은 아직 공사중 [물난리 그곳 그후 1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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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W아파트 1단지 지하주차장 입구에 차수판이 설치돼 있다. 김정석 기자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W아파트 1단지 지하주차장 입구에 차수판이 설치돼 있다. 김정석 기자

지난 12일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W아파트 1단지. 단지 내 유일한 지하주차장 입구에 종전에 볼 수 없던 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스테인리스 강판 재질(폭 6.2m, 높이 1m)로 만든 차수판(遮水板)이다. 이 시설은 폭우가 쏟아지면 지하주차장 안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가지 않도록 15초 안에 입구를 막는다. 주차장 입구 위에 설치된 차수판은 경비실에서 스위치를 누르면 밑으로 내려온다. 설치 비용이 8500만원가량인 이 차수판은 서울 지역 차수판 생산 업체에서 무상으로 설치해줬다.

이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지난해 9월 6일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왔을 때 주민 7명(1단지 6명, 2단지 1명)이 목숨을 잃은 곳이다. 주차장이 순식간에 물에 잠기면서 빠져나오지 못해 변을 당했다. 이날 지하주차장 내부는 벽면과 바닥이 깔끔하게 도색돼 있어 언뜻 보기에는 지난해 침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주차장 가장자리 배수로에는 진흙이 쌓여 있었고 배수관에 감아둔 포장도 군데군데 찢어진 모습이었다.

지난 12일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W아파트 지하주차장 가장자리 배수로에 진흙이 쌓여 있다. 지난해 태풍 힌남노 당시 인근 하천이 범람해 지하주차장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왔던 흔적이다. 김정석 기자

지난 12일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W아파트 지하주차장 가장자리 배수로에 진흙이 쌓여 있다. 지난해 태풍 힌남노 당시 인근 하천이 범람해 지하주차장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왔던 흔적이다. 김정석 기자

지난해 9월 6일 제11호 태풍 '힌남노'에 직격탄을 맞은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W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침수된 모습. 사진 경북소방본부

지난해 9월 6일 제11호 태풍 '힌남노'에 직격탄을 맞은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W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침수된 모습. 사진 경북소방본부

주민 역시 지난해 참상을 잊지 못한 분위기였다. 지하주차장 얘기를 꺼내기만 하면 손사래를 치며 자리를 피했다. 이 아파트에 사는 김모(55)씨는 “차수판이 지난해 있었더라면 사고도 없었을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설치돼 다행”이라고 씁쓸해했다.

이 아파트에서 직선거리로 약 1㎞ 떨어져 있는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2문과 3문 주변에서 공사가 한창이었다. 갑자기 불어난 물이 공장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차수벽을 세우는 공사였다.

차수판·차수벽…속속 설치되는 태풍 대비 시설들

지난해 포항제철소는 힌남노 때 내린 폭우로 상당 부분 침수됐다. 기록적인 폭우가 강물 만조 시간대와 겹치면서 제철소 인근 하천인 냉천이 범람, 포항제철소를 덮쳤다.

지난 12일 경북 포항시 남구 포스코 포항제철소 남동쪽에 차수벽이 설치돼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태풍 힌남노로 침수 피해가 나 초유의 가동 중단 사태를 겪었다. 김정석 기자

지난 12일 경북 포항시 남구 포스코 포항제철소 남동쪽에 차수벽이 설치돼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태풍 힌남노로 침수 피해가 나 초유의 가동 중단 사태를 겪었다. 김정석 기자

침수 탓에 포항제철소 창사 54년 만이자 첫 쇳물 생산 49년 만에 처음으로 쇳물 생산이 중단됐다. 이로 인해 제품 170만t을 생산하지 못했고, 매출 감소액은 2조400억원에 달했다. 포항제철소 직원들은 물론 광양제철소, 서울 포스코센터, 그룹사, 협력사 임직원이 합심해 복구에 노력한 끝에 침수 135일 만인 지난 1월 19일 제철소는 정상화했다.

포스코는 지난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선 냉천과 가까운 포항제철소 남동쪽에 2m 높이 차수벽을 세우고 있다. 정문부터 2문을 거쳐 힌남노 때 범람한 냉천 옆 3문까지 약 1.9㎞ 길이다.

지난해 9월 8일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침수된 공장 내부에서 물을 뺴내는 모습. 사진 포스코

지난해 9월 8일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침수된 공장 내부에서 물을 뺴내는 모습. 사진 포스코

태풍 피해 키운 하천 범람…정비·복구는 하세월
W아파트와 포항제철소 공통점은 인근에 ‘냉천’이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냉천은 포항시 남구 오천읍에서 발원해 영일만을 통해 동해로 빠져나가는 지방하천이다. 이 하천은 평소에 바닥이 보일 정도로 수량이 적어 ‘마른 하천’으로 불린다. 그런데 기습 폭우를 만나 무섭게 불어났고, W아파트 지하주차장과 포항제철소 공장으로 물이 쏟아졌다. 힌남노로 포항에 큰 수해가 난 직접적인 원인은 기록적인 폭우(509.5㎜)지만, 냉천 범람이 태풍 피해를 증폭시킨 셈이다.

이날 찾은 냉천은 ‘마른 하천’ 답게 바닥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그 위를 굴삭기와 덤프트럭 등 장비가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힌남노 때 집중호우로 훼손된 냉천 제방 등 복구작업을 하고 있었다. 포항시는 냉천이 발원하는 오어저수지부터 순차적으로 복구하고 있지만, 속도는 더디다. 냉천과 이어진 지류 공사는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

지난 12일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냉천에서 복구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김정석 기자

지난 12일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냉천에서 복구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김정석 기자

지난 12일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한 아파트. 지난해 태풍 힌남노로 아파트 뒤편 지상주차장과 도로가 휩쓸려 갔다. 여전히 복구 공사가 이뤄지지 않은 모습이다. 김정석 기자

지난 12일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한 아파트. 지난해 태풍 힌남노로 아파트 뒤편 지상주차장과 도로가 휩쓸려 갔다. 여전히 복구 공사가 이뤄지지 않은 모습이다. 김정석 기자

냉천 지류인 남구 오천읍 신광천 일대는 하천 경사면에 임시로 쌓은 흙 포대가 성벽처럼 쌓여 있었다. 지난해 태풍 당시 급류에 휩쓸려 유실된 신광천 인근 Y아파트 뒤편 도로도 복구하지 못했다. 다른 하천인 남구 동해면 상정천은 더욱 심각했다. 하천 주변 옹벽 곳곳이 무너져 있었고 산책로 곳곳도 움푹 파여있었다.

“태풍 오면 또 범람 뻔해…주민 걱정 덜어달라”  

신광천 인근에서 제조공장을 운영하는 안태환(55)씨는 “공사 안내 현수막만 내걸 것이 아니라 서둘러 작업해야 한다”며 “장마철에 하천이 범람할 가능성이 있는데 언제까지 걱정하며 살아야 하나”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지난 12일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신광천. 경사면에 흙 포대들을 임시로 쌓아둔 모습이다. 김정석 기자

지난 12일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신광천. 경사면에 흙 포대들을 임시로 쌓아둔 모습이다. 김정석 기자

지난 12일 경북 포항시 남구 동해면 상정천 주변 산책로. 지난해 태풍 힌남노 여파로 부서졌던 산책로가 그대로 방치돼 있다. 김정석 기자

지난 12일 경북 포항시 남구 동해면 상정천 주변 산책로. 지난해 태풍 힌남노 여파로 부서졌던 산책로가 그대로 방치돼 있다. 김정석 기자

이와 관련, 경북도는 지난달 말부터 포항과 경주 지역 지방하천 재해복구공사에 착수했다. 유실된 제방과 파손된 하천 구조물을 정비하고 범람을 유발하는 노후 교량을 다시 짓는 작업이다. 복구에는 약 2년이 걸릴 전망이다.

포항시도 대송면·청림동·동해면 등 상습 침수지역 정밀진단과 복구계획을 세우고 항구적 침수 예방이 불가능하면 주민 이주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박동엽 경북도 건설도시국장은 “장마철을 앞두고 선제적 대응과 조속한 재해복구사업 추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도록 할 것”이라며 “주민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재해복구사업을 신속히 추진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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